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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소리가 들리는 오후

종로의 작은 방을 나와서 

by 베리티 Feb 17. 2025

도쿄에서 지인이 놀러 왔다.


종로에 숙소를 잡았다며 보낸 메시지에 수송동이라는 주소가 보였다. 늘 뭉뚱그려서 종로였던 그 일대의 정확한 이름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괜찮으면 숙소 구경 오라는 메시지가 이어졌다. 그리고 보니 서울에 놀러 온 누군가의 게스트하우스를 가 본 적이 없다. 두 번 생각할 이유가 없다. 좋아요!


언제부터 종로에 이렇게 빌딩들이 많아졌을까. 광화문 교보문고 근처에서 내려 조금 걷기로 했다. 그랑서울, D타워. 쟁쟁한 랜드마크들을 뒤로하고 큰길을 벗어나 몇 번 골목을 돌고 나니 수수하고 오래된 건물들이 모여있다. 게스트하우스는 짙은 벽돌색 5층 건물이었다. 입구의 유리문 위로 영문 간판이 있었고, 바둑판처럼 일정한 창마다 파란 차양이 팔랑거리고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배어있는 벽돌은 그대로 두고, 내부는 수리해서 어두운 브라운톤으로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복도를 지나자 문을 열고 나온 외국인이 먼저 인사를 건네어온다. 엘리베이터를 지나쳐 계단을 올라가서 방에 노크를 했다. 

"오랜만이죠!"

스프링인형처럼 친구가 툭 튀어나온다. 방은 작고 아담했다. 하얀 이불이 개어져 있고, 작은 TV와 티테이블, 옷장 같은 간단한 가구들이 있는 온돌방. 여행가방이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어서 둘이 앉으니 방이 꽉 찬 느낌이었다. 막상 와보니 그냥 여관이야! 친구는 하하 웃었지만, 나름의 운치가 있는 공간이었다. 포트에 물을 끓이고 선물로 가져온 오렌지시나몬티를 머그잔에 따라서 테이블에 올린다. 찻잔의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오렌지향이 작은 방에 번진다. 종로를 다녔어도 이런 작은 방에 있어보기는 처음인데요. 우리는 차를 마시며 근황을 나누었다. 친구는 미술가이고 서울에서 전시 준비를 하려고 꽤 온 것이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서울에서 대학원을 다녔고, 그 이후 작품활동을 서울에서 10년 넘게 해 왔다. 그러다가, 남편이 일본으로 직장을 잡는 바람에 도쿄로 이사했다. 활동무대가 한국이니 떠나는 것을 너무 아쉬워했고, 그러다가 다시 온 것이다. 찻잔을 들고 작은 방을 서성이다가 창밖을 내다보았다. 옆 빌딩에서 일하다가 잠시 쉬고 있는 직장인들이 보였다.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기도 하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보였다.

찻잔이 비워지자 친구가 옥상에 테라스가 있다며 올라가자고 있다. 10월의 바람이 제법 차가웠다. 종로는 항상 지나가고 움직이는 곳이었지 머물러서 바라보는 동네는 아니었다. 옥상에서 본 종로는 또 다른 표정이었다. 성벽처럼 둘러써인 빌딩 사이 낮은 건물들은 지붕이 벗겨지기도 하고 널빤지 같은 것들로 덮여있기도 했다.  

우리는 같은 시간이 빌 때면 한참을 돌아다니곤 했다. 전에는 서울의 커다란 빌딩 옆에 오래된 건물이 맥락 없이 늘어서 있는 풍경이 대책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유럽의 도시에서 보이는 낮은 건물들이 자연스럽게 모여있는 풍경이 아니라, 여기 큰 빌딩이 있고 그 옆에 또 무너져가는 건물이 있는 모습이 어색하다고 느꼈다. 2천 년대 지어진 빌딩 가까이에 또 7,80년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울퉁불퉁한 스카이라인들. 어딘가 급속하게 도시개발한 흔적 같기도 하고, 압축성장의 일면 같기도 하다. 상처에 밴드를 급히 붙여놓은 것처럼 별로 보여주고 싶은 그림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사진을 찍다가 내게 묻는 것이다. 재미있지 않아요?  

그 친구의 시선에서는 그런 풍경마저도 흥미롭게 보이는구나. 그렇게 볼 수 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라면 얼굴을 찌푸리기보다, 우리만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평소에 무심히 지나치며 놓쳤던 도시 속에 묻혀있는 낡은 시간들, 켜켜이 쌓인 스토리를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매끄럽지 않다고 주인마저 외면한다면 그저 그곳의 시간은 영원히 깨지 못하고 잠들어있을 것이다. 


우리는 종로의 작은 방을 나왔다. 좀 걸어서 도착한 식당가의 입구에는 '피맛골'이라 쓰인 나무간판이 매달려있었다. 1954년 문을 열었다는 오래된 메밀국숫집, 미진. 노란 양은주전자에 따뜻한 메밀차를 내놓는 곳이다. 판메밀과 메밀전병을 시켰다. 짙은 장국에 국수를 말고 속이 꽉 찬 전병을 씹었다. 

종로에 옛 사진첩 같은 거리가 있었다. 말을 피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피맛골. 조선시대에 말을 타고 다니는 고관들을 마주치면 엎드려야 하는 고충을 피하기 위해 피해 다녔다는 후미진 골목이다. 큰 대로변 옆에 난 아주 좁다란 골목. 빽뺵이 들어선 노포들이 몰려있는 그곳을 지날 때면 음식 냄새와 자욱한 연기들, 흐릿한 간판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정취를 빚었다.  서민들이 많이 다니다 보니 작은 상점들이 많았고, 국밥집, 선술집들이 인기를 끌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도로가 확장되고 도시개발이 이루어지면서 피맛골은 뚝뚝 끊겨나갔다. 소문난 맛집들이 이사를 가거나 자리를 옮기도 했다. 지금은 재개발되어 사라지고 D타워와 르메이에르 빌딩 근처에 그 시절 식당들이 조금 남아있다. 그 길을 걷던 어른들은 피맛골을 찌들고 때 묻었지만 훈훈하고 인심 좋던 정신의 고향으로 기억한다. 어린 시절 잠깐 그 거리를 지났을 때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밖으로 나오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 오는 거리는 한산했다. 북적이던 평소의 종로가 가라앉은 듯 차분해졌다. 우산을 펴 들고 발밑으로 얇게 흐르는 물길을 살살 튕기며 걷다가 건널목 신호를 기다렸다. 초록빛을 따라 계속 걷기로 했다. 빗길을 한참 가로질러 도착한 곳은 우리은행 본점. 그런데, 여기 이렇게 멋진 건물이었던가. 근대식 벽돌과 석조 장식이 어우러진 곳이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1909년 지어진 우리나라 은행최초 근대건물이라고 쓰여있었다. '광통관'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고대 그리스의 신전 같은 두 기둥이 현관옆에 버티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흐린 날의 은은한 조명이 아늑했다. 실내는 다 수리해서 깔끔하게 유럽풍으로 디자인되었다. 친구는 환전을 하고 계좌를 개설했다. 종로에서는 동네 은행 가는 일조차 오랜 역사를 마주하는 길이 되는구나. 늘 오가던 종로를 동네로 머물러 보는 것은 다르다는 실감을 했다. 보이지 않던 사대문 안의 품격이라고 할까. 우연히 들른 일상에 역사가 깃들어있다는 것이 신기해지는 시간이었다. 백 년 전 '모던 경성'을 잠깐 엿본 기분이었다.


다시 거리를 걷는다. 꽃은 떨어졌지만 무성해져 가는 나무들, 빗방울을 튕겨내고 있는 빌딩, 젖은 보도블록, 한쪽으로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멀리 보이는 종각의 기와지붕과 단청이 빗줄기 사이 선명해 보였다. 이 거리가 새롭게 다가왔다. 거리 위로 빗물이 흐르는 소리가 음악처럼 들려온다. 서울의 소리가 들리는 오후였다. 아, 서울 같아! 나도 모르게 한마디 튀어나왔다. 정말 서울 같아. 친구도 같이 웃었다. 우리는 별다른 것을 하지 않았다. 그저 잊고 있던 서울의 종로 거리에서 한나절을 보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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