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친구를 만나는 밤

Anthony Hamilton - Freedom

by 베리티

늦은 밤 그 친구를 만났다.

우리가 좋아하는 커다란 스피커가 있는 LP 바의 창가에 자리 잡았다.

바람에 날리는 플라타너스 이파리들을 보며 가을이 오고 있다고 상상했다.

친구는 아마도 겨울이 올 거라고 말했다.

우리는 시시한 말들을 나누고 그냥 크게 웃었다.

한껏 젖힌 창문 불빛 아래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의자 아래엔 낮에 내내 들고 다니던

한복상자 같은 거대한 김박스가 있었다.

어느 영화사 창립기념일 모임에 우연히 꼈다가 받아온 선물인데,

오는 길에 행인들에 여러 번 걸렸다.

그렇다고 선물을 마다할 수는 없었다.

손님을 하나하나 살피는 작지만 큰 마음을.


이 창가 자리가 마음에 든다.

의자에 다리를 걸치고 음악 소리에 귀 기울이며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들을 마구 떠들었다.

듣고 싶던 노래들을 메모지에 꽉꽉 채워 넣어서 전달했다.


오랜만이었다.

목적 없이 누군가를 만나 시간을 정해두지 않고 떠드는 일.

우리의 신청곡이 차례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음악 많이 들으시네요, 주인아저씨가 인사를 건넨다.


낮에 만났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손해 봤지만 끝까지 버텨보겠다는 영화사 대표님과

늦깎이 배우를 걱정해서 서울로 올라왔던 부모님의 표정.

아들이 둘인데 하나만 이 길에 들어와서 다행이라며 웃으셨다.


밤이 깊어 떠나야 할 시간.

김박스를 열어 친구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보니 이 김박스의 역할이 이거였나 보다.

나오려는데 주인아저씨가 마지막 한 곡 더 듣고 가라고 하셨다.


그렇게 아날로그의 밤이 지나가고 있다.



Anthony Hamilton & Elayna Boynton - Freedom

https://www.youtube.com/watch?v=xdOykEJSXIg

좋은 오디오로 들으니 역시, 감탄하며 들었던 그날의 노래.

전주가 흘러나오자 번뜩이던 LP 바 주인아저씨의 눈빛이 기억난다. 이 곡은 타란티노의 영화 <분노의 추적자 장고>의 OST로 쓰여서 주목받았다. 소울풀한 목소리를 받쳐주는 묵직하고 리드미컬한 베이스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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