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매혹적인 대화

자신의 소설에 대해 말하는 법

by 베리티

카프카는 당대에 유명 작가였을까.


야누흐의 기록 <카프카와의 대화>를 읽다 보면, 주변 작가들이 소설 <변신>을 높게 평가하는 이야기들이 보인다. 하지만, 이는 극히 소수였고 대다수의 독자들은 큰 관심이 없었다.

예상대로이다. 하루아침에 벌레가 된 남자의 별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이 크게 반향을 일으키기는 쉽지 않았다. 일부는 그의 천재성을 향해 찬사를 보냈지만, 극소수였다.

야누흐는 친구에게 들은 찬사를 카프카에게 전한다.

'새롭고 보다 심오한, 그 때문에 한층 더 가치 있는 에드거 앨런 포'


야누흐가 이렇게 기록한 것은 스스로가 카프카를 열렬히 숭배하는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주변 반응 -카프카의 카페 문화권이라는 소수의 파장이었다. 그나마 그중 일부는 벌레가 된 남자라는 설정의 신기함에 치우친 정도였다. <변신>에 대해 사람들이 수군거릴 때 카프카는 씁쓸했다.

"그들은 벌레가 된 남자를 보며 자극을 즐길 뿐, 그 속에 담긴 절망은 보지 못합니다."


야누흐가 카프카의 책 이야기를 꺼내면, 그는 편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걸 알면서도, 청년의 호기심은 그 불편을 뚫고 나간다. 조금 무례하더라도 더 알고 싶은 것이다. 흔한 팬들이 그렇듯 야누흐가 <변신>에 대해 자신의 해석을 펼치지만, 카프카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저는 그런 건 모릅니다." 그리고 바로 돌직구로 들어간다.

"사람이 자기 집 빈대에 대해서 말한다면, 그것은 기품 있고 분별 있는 행동일까요?"

청년은 공손히 답한다. "물론 품위 있는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카프카는 웃었다.

"제가 얼마나 무례한지 아십니까?"


같이 웃게 된다. 소설의 블랙유머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자신을 웃음거리로 삼는 것이야말로 아주 높은 수준의 유머 아닌가. 놀라울 만큼의 자기 객관화와 함께.

"<변신>은 결코 고백이 아니에요. 비록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비밀 누설이기는 하지만."


작가 현장 인터뷰를 하는 듯한 흥미로운 대화이다. 두 사람은 그렇게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을 함께 산책했다.

그렇게 프라하의 돌바닥은 닳았고 두 사람의 발자국은 사라져 갔다. 이제 뭉툭해진 돌길을 걷는 새로운 작가가 그 발자국을 알아본다.


최초의 소설가들은 모험을 발견했다. 모험이 그 자체로 우리에게 아름다워 보이고 우리가 모험을 갈망하는 건 그들 덕분이다. 카프카는 비참하게 덫에 걸린 인간의 상황을 그렸다. 지난날, 카프카 전문가들은 카프카가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는지 아닌지를 놓고 많은 논쟁을 벌였다. 아니, 희망은 없다. 다른 게 있다. 카프카는 삶이 불가능한 그런 상황조차도, 기이한, 검은 아름다움으로 발견한다. 아름다움, 그것은 더는 희망이 없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후의 승리다.

-<89개의 말. 프라하, 사라져가는 시>, 밀란 쿤데라


어쩌면 그 논쟁은 속임수이다. 카프카의 소설이 희망인지 절망인지가 더는 중요하지 않다.

덫에 걸린 인간의 그 "기이하고도 검은 아름다움"을 기꺼이 마주할 수 있는 용기의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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