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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님 Nov 17. 2021

취향저격에 실패하기

지구 말로는 그거 기회비용




요즘 나는 세 개의 음악 감상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한다. 멜론과 삼성뮤직(멜론과 연동), 유튜브 뮤직. 이 중에서 요즘 내가 가장 많이 쓰는 건 유튜브 뮤직이다. 그다음은 멜론이고 꼴찌가 삼성뮤직이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내 손가락이 제일 많이 찾는 곳은 삼성뮤직이었다. 멜론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로 이용하는 곡과 내 휴대폰에 저장해둔 mp3 파일의 곡들을 함께 듣는 데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가만히 생각해 본다.


 

아, 취향의 위임.

내 취향의 음악을 찾아 플레이리스트를 꾸리는 일련의 과정을 AI나 알고리즘, 큐레이션 등등 뭐 그런 편리한 말들에 넘겨버린 것이다. 그게 시작이다. 유튜브 뮤직에서는 내가 한 곡만 찾아 눌러도 그다음, 그다음의 다음, 다음의 다음의 다음의 다음의 다음까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다음 재생 곡을 플레이리스트에 끼워 넣어준다. 아마 그 기반에는 내가 클릭한 음악의 장르나 가수, 이전에 들은 음악에 관한 정보들이 반영됐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 나의 출퇴근길에는 순서만 달라질 뿐, 국내 아이돌들의 빵빵 터지는 K팝이 함께한다.

 

가만히 앉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예시 몇 개만 입력하면 ‘취향저격’의 무엇들을 떠먹여 주는 세상이다. 근래의 나는 연극과 뮤지컬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는 커뮤니티에 상주하는데, 재밌는 작품을 추천해 달라는 글을 자주 본다. 지금 공연하는 것 중 재미있는 작품 혹은 부모님, 연인, 친구와 보기 좋은 작품을 추천해 달라는 글들에 함께 고민하다 머리가 띵해지는 글 하나를 읽었다.


글쓴이는 A라는 작품에 관해 직접 찾은 정보(호평받는 이유와 비판받는 요소)를 나열하면서 이 작품이 자신의 취향일지를 물었다. 판단을 부탁하는 근거로는 자신이 그간 좋게 봤던 작품을 나열했다.


나는 그 글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사실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 글쓴이는 이미 A라는 작품의 어떤 점이 칭찬받고 또 어떤 점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는지 알고 있다. 게다가 글쓴이는 공연 작품을 보는 게 처음이 아니고, 다수의 경험으로 자신이 작품을 볼 때 어떤 요소에 흥미를 느끼는지도 알고 있다. 그런데 왜 ‘A를 볼까 말까’ 결정하기를 타인에게 미룬 것일까.

 

그래서 또, 가만히 생각해봤다.


실패의 가능성 차단.

너무 쉽게 내 마음에 들만한 것들을 얻는 세상에서, 그렇지 않은 것을 접할 때 발생하는 거부감 내지는 불쾌감을 느끼고 싶지 않은 거다. 돈과 시간을 상대적으로 많이 들여야 하는 공연 관람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래서 나의 결정에 앞서 내 판단에 타인의 판단까지 곁들여 어떤, 절대 실패할 리 없는 확신의 갑옷을 두르는 것.

그래도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물고. 나는 실패할 가능성을 사전에 막았을 때,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만 골라 얻었을 때, 정말로 놓치는 것이 없는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리고 실패했을 때, 정말 돈과 시간을 잃기만 한 것일지 생각해봤다.


그렇지 않다. 내가 처음 공연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을 때, 나는 엄마 오리 뒤를 쫓는 아기 오리처럼 첫 관람 때 본 배우의 조합으로만 그 작품의 상연기간이 끝나갈 때까지 표를 잡았다. 그러기를 몇 작품, 언젠가 충동적으로 당일 티켓을 잡아갔던 날 여태 한 번도 본 적 없는 배우에게서 여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동을 느꼈다. 스스로 선택의 폭을 좁혔던 지난날이 아까워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의 인생 작품이라는, 거기다 내가 좋아하는 대극장 공연 특유의 화려한 요소들을 다 갖췄다는 모 작품을 보러 갔을 땐 태어나 처음으로 공연 중간에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서 상당히 먼 공연장이었고 좋은 자리를 잡느라 티켓값도 만만찮아 그 당시에는 후회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덕분에 내가 아무리 스토리보다 넘버를 중요시 여긴다고 해도 최소한의 기준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가 하면 연일 혹평받던 소극장 창작 뮤지컬을 호기심에 보러 갔다가 폐막까지 팽팽 회전을 돌기도 했고. 이 작품의 넘버와 캐릭터, 당시 배우들의 연기는 내 인생의 한 페이지에 빼곡히 적어놓고 싶을 만큼 사랑한다. 사람들의 말만 믿고 그 작품을 보지 않았다면 그 계절은 내 생에서 굉장히 불행한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에게 잘 맞을 것’이라는 추천도 결국은 추측일 뿐 내 결정의 근거를 타인 혹은 기계에게 의존하지 말자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까지 결국은 오게 됐다.


멜론을 켜고 현재 재생목록에 아는 음악, 모르는 음악 구분 없이 담은 다음 하나씩 들어본다. 좋은 노래는 화면을 켜서 제목과 가수를 확인하고, 평소 듣지 않던 재즈나 느린 팝 곡에 하트를 누른다. 내 취향을 가두지 않으려고. 취향저격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어느 쪽의 가능성도 차단하지 않으려고.

 

요즘 나는 왓챠를 쓴다. 갤럭시탭을 사고받은 무료 이용권으로 쓰다가 해지할 타이밍을 놓쳐 계속 쓰기로 했다. 처음 가입할 때 본 작품마다 별점을 매기라길래 몇 개 눌렀더니 메인에 나를 위한 추천작이 가득하다.


당연히, 이미 본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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