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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구 aGu Jun 23. 2021

팔팔년생 친구들에게

손원평, 『서른의 반격』

서른의 반격 (손원평)


팔팔년생 친구들에게


한 해에 우리나라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이 몇 명이나 될까? 지금은 그 숫자가 많이 줄었겠지? 쌍팔인 라떼는 말이야, 형제자매가 두 명은 기본이었어. 이름은 또 어떻고. 지금은 서준, 서아, 시우, 지안 이름이 인기가 많다며? 촌스럽지 않네. 튀지도 않고. 내 이름은 동진이야. 김지혜만큼 흔하진 않아도 꽤 무난한 편이지. 난 그 무난함이 별로었어. 그래서 희소성 짙은 성이 더 마음에 들었나 봐. 성까지 흔했다면 더 흐릿한 보통 사람이 되었을지도 몰라. 


구리 ‘동’, 보배 ‘진’. 귀한 보배라는 뜻이야. 예전에는 구리가 귀했다 하더라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어. 시대를 잘못 타고났는지 헤매는 날이 많아. 나뿐만은 아니겠지. 어른이 된다는 건, 사회생활을 한다는 건 어느 정도 나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살아가는 일이니까. 하고 싶은 말을 뱉는 거 보다 삼키는 게 더 쉽다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더는 꿈을 가지거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향하지 않아. 회사든, 어디든 버티며 그저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길 바랄 뿐이지. 자주 한숨을 쉬고, 더 자주 재미없다 말하며, 주말이 오기만을 기다릴 뿐이지.


네가 들려준 서른의 이야기 잘 들었어. 반격도 너무 유쾌했어. 같은 나이라서 더 짠하고, 공감됐을까. 왜 그렇잖아. 얼굴도 모르는 사이지만, 동갑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턱대고 친밀감과 동질감이 싹트는 게 사람이잖아. 동년 친구만이 느낄 수 있는 묘한 유대감을 공유해줘 고마워.


그 많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해. 그 많던 친구들은 어디로 갔을까. 고민 없고, 하고 싶은 것 많고, 세상이 재미있는 것들 투성이였던 내 친구들 말이야. 어떤 이야기를 해도 누구도 그거 안 된다고 말하지 않고, 기대와 희망의 눈빛을 한몸에 받으며 자라던 그 친구들 말이야. 할 말을 삼키는 거 보다 뱉는 게 쉬워 궁금한 것은 계속해서 질문하던 우리 친구들 말이야. 


사회가 그렇게 만든 걸까?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튀지 않고 중간만 하라고. 우리도 어느새 무표정한 어른이 되어 버린 걸까? 시나브로 기성세대가 되어 가는 걸까? 이제는 아무도 손들고 질문하지 않아. 스스로에 대한 고민과 질문도 사치스러울 때가 많아. 답이 없는 머리 아픈 이야기일 뿐이지. 반격은커녕 부당해도 참는 게 일상이 되었어. 힘들어도 버티는 게 미덕이 되었어. 왜? 목소리를 내도 달라지는 게 없으니까. 너만 힘든 거 아니고, 너만 외로운 거 아니니까. 더는 철없는 20대가 아니지 않냐고. 정신 차리고 현실을 직시하래. 세상이 원래 그렇다는 거야. 보고도 못 본 척, 모르고도 아는 척하래. 다들 그렇게 가만히, 적당히 살아가는 게 인생이래. 


첫 직장에서 만난 동갑이자 선임인 친구가 내게 그랬어. 우리 회사에서 일 잘하는 건 딴 거 없다고. 퇴근할 때 ‘걔 오늘 출근했나?’ 말이 나오면 근무 잘한 거라고. 해보니 진짜 그랬어.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무탈하게 하루 지나가면 그거만큼 좋은 게 없었어. 사고가 아니라도 민원인과 작은 다툼이 있으면 금세 피곤해졌어. 조용히 지나갈 수 있는 일을 왜 긁어 부스럼 만드느냐고 다그쳤어. 나는 내 목소리를 냈을 뿐인데 되려 욕만 더 먹게 되는 게 회사 생활이었어. 


세상이 그렇더라. 부당해도 불편해도 참고 삼키는 게 동료를 위해, 조직을 위해, 회사를 위하는 일이었어. 누구의 잣대인지는 몰라. 자연스레 그게 편한 길이 되어버렸어. 더 화나는 건 뭔지 알아? 어느새 나도 세상이 원래 그렇지 뭐, 끄덕이고 있더라. 그럴수록 내 존재는 희미해져갔어. 마음의 구김살이 내 표정이 되어버렸어. 먹어도 먹어도 허기짐은 채워지지 않았어.  어느 누가 와도 내 자리를 쉬이 대체할 수 있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릴 수 있는 수많은 사람 중에 한 명이 되어버렸어. 


서른넷의 반격


그럼에도 먹고 사는 게 무서워 회사를 그만둘 수가 없었어. 언제나 그만둘 거라는 말만 달고 살았지. 해보고 싶은 일은 있었지만, 문화 백수가 되기 딱 좋은 일이라 겁이 많이 났어. 회사를 그만둬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니 그제야 겨우 뱉을 수 있었어. ‘먼저 퇴근해 보겠습니다, 회식 참석 안 하겠습니다, 글 쓰면서 살아보려고요’ 하는 내 마음의 소리를. 어려운 말도 아니지? 그 쉬운 말을 왜 그렇게 뱉지 못했나 몰라. 보수적이긴 해도 권위적이거나, 억압적인 회사는 아니었는데 말이야. 


대단한 용기나 뚜렷한 목표가 있는 건 아니야. 더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어. 더는 어두운 거울 속 짜증 가득한 내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어. 먹고 살기 위해서만 일을 하며 왜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을 하며 평생 살고 싶지 않았어. 굶어죽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싶었어. 누가 뭐라 해도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한번 향해 보고 싶었어. 지혜 너처럼 서른에 이런 고민, 결정을 했으면 더 좋았으려나. 그래도 후회하지 않아. 서른의 나도, 서른넷의 나도 다 처음 겪는 시간이니까. 보통 사람이면 누구나 경험하는,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는 일이니까.


작가의 질문처럼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를 생각해. 반격이 먹히지 않아도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심지를 생각해. 무엇보다 ’사람은 누구나 다 그래, 세상은 원래 그렇고 그래’라고 말하는 어른은 되지 않을려고. ‘그거 해서 뭐해’라는 잣대로 모든 걸 판단하지 않을려고. ‘먹고 살기 위해서만 살면 사는 게 무슨 재미가 있니’라고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어. 돈이 되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길을 가고 있는 사람에게, 흔들리면서도 가고 싶은 길을 가고 있는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넬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어. 저마다의 인생만큼 저마다의 길이 있다는 걸 알려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어. 쓸데없어 보여도 무용한 것은 결코 없다는 걸 행동으로 보여주는 어른이 되고 싶어. 


평범한 이름이 싫었던 아이가 이제는 평범함을 좇는 어른이 되어 허황된 소리를 뇌까리는지 몰라.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아버렸거든. 그래도 이따금 존재 이유를 내게 물어보고 있어. 내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반격을 이어 가고 있어. 우선, 회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도 굶어죽지 않는다는 걸 증명해야지. 서른넷의 반격은 이제 시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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