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케언즈에 온 지 한 달 만에 케언즈를 떠나다
시작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만큼 좋았다. 케언즈 공항에 내리자마자 유일하게 내 캐리어만 시드니 공항에서 넘어오지 않았다는 사실과 - 무게가 1KG 초과했던 탓일까? - 공항 택시를 타고 나서야 그것이 우버보다 훨씬 비싸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그 정도는 이후에 내가 느낄 짜릿함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호스텔에 짐을 옮겨 놓고 바로 인스펙션을 보러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케언즈에서는 시드니에서와 달리 버스를 탈 때 현금을 지불해야 하는데, 이미 알고 간 것이긴 했지만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모두가 빠르게 각자의 카드를 리더기에 댄 뒤 곧바로 착석하는 풍경과 다르게, 케언즈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 동전 혹은 지폐를 기사님에게 건네고 기사님은 일일이 잔돈을 거슬러 준 다음 사람들에게 영수증을 뽑아 나눠 주었다. 얼마 안 가 금방 익숙해질 모습이었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강렬한 경험을 하고 도착지에서 내렸다.
가장 처음으로 인스펙션 일정을 잡은 곳은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집으로, 조건이 가장 괜찮은 곳이었다. 모든 게 갖춰진 독방에 빌 포함 주 200불, 보증금 없고 미니멈 스테이도 아닌 맥시멈 스테이 6개월에 시티에서 집까지 버스로 약 30분 정도 소요되는 곳. 가장 살고 싶다고 생각한 집에서 다행히도 빠르게 답장을 줘서 그곳을 가장 먼저 둘러 볼 수 있게 됐었다. 조건부터 말이 안 되게 좋았는데 실제로 본 집의 컨디션은 정말 상상 이상으로 좋았다. 거실이고 방이고 화장실이고 모두 호텔식처럼 꾸며져 있었고 집 구조도 매우 독특했다. 내가 이런 집에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고? 어떻게 이게 현실이야? 본래 인스펙션은 집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살 만한지 아닌지 잘 따져 보는 일인데 그날 저녁은 집주인 분들 앞에서조차 감탄을 금치 못하며 감상하기에 바빴다.
집 상태만큼이나 집주인 분들도 무척 좋은 인상을 가지고 계셨다. 그들은 은퇴한 노부부로, 자녀 셋 모두 출가하여 그들의 방을 세놓은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인스펙션이 끝나고 나서도 거실 식탁에 앉아 각자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아내인 메리는 정원 관리에 진심이라고 했고, 남편인 폴은 음악을 좋아한다고 했다. 둘은 나의 자기소개서가 매우 인상적이었다며 세입자 후보자가 그 정도로 자세히 자신에 대해 알려 주어야 본인들도 사람을 집에 들이는 것에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 그들과 한 달 넘게 같이 살고 나서야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세입자를 받는 게 아니라 정말 같이 살기 좋은 사람을 구하고자 세입자를 받는 것이었다. - 우리는 버스가 올 때까지 대화를 나누었고, 다른 집은 더 볼 것도 없이 무조건 이 집으로 이사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그 자리에서 호스텔 생활이 끝나는 일주일 뒤에 바로 이사 오겠다고 약속했다.
케언즈에 도착한 지 겨우 3시간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새로운 곳에서 모든 것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모순적이게도 그에 잇따르는 기대감, 그럼에도 곁에 아는 이 한 명 없어 느껴지는 외로움 등 여러모로 복잡한 심정이었는데 그들의 환대로 하여금 케언즈가 단숨에 좋아졌다. 앞으로 이곳에서 벌어질 일들이 더욱 기대되었다. 그들만큼이나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런 좋은 느낌을 한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폴이 이 동네는 위험하다고 나를 꼭 데려다줘야 한다며 정류장까지 함께 가 주었다. 생각보다 일찍 돌아오지 않는 폴이 걱정되었는지 차를 몰고 정류장 근처로 온 메리가 이왕 나온 김에 호스텔까지 데려다주겠다며 우리 둘 다 차에 태우고 내가 묵는 호스텔로 향했다. 새로운 부모님이 생긴 기분이었고, 너무 오랜만에 누군가로부터 챙김 받는 느낌이어서 그날 밤이 더더욱 황홀하게 느껴졌다.
그 다음 날부터 내가 이사 가기로 한 동네를 시작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력서를 돌렸다. 그들이 예상하고 내가 바라던 대로 이사 가기 3일 전에 마침내 트라이얼의 기회를 얻었고 예정대로 이사도 마쳤으며 새로운 집에서의 생활은 기대 이상으로 완벽했다. 평온하고 아늑한 집, 다정하고 유쾌한 집주인 분들, 그 무엇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밤까지. 정말이지 이토록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현실은 꿈처럼 계속해서 달콤할 수만은 없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호주에서의 두 번째 암흑기가 찾아왔다. 그 어떤 예고도 없이, 가장 행복감에 취해 있을 때.
트라이얼은 시티 쇼핑센터에 있는 일식집에서 이루어졌는데 시드니에서 일하던 것에 비하면 매우 쉬운 일이었고 단 한 명의 사수도 없이 나 혼자 알아서 캐셔 및 잡다한 일을 그날 바로 맡아야 했지만 그 역시도 금방 적응했다. 문제는 해당 가게의 경영권이 곧 위임되는 상황이었어서 홀에 있는 직원들을 모두 일본인으로 뽑을 거라는 언질이 있었다는 것이고 실제로 트라이얼 이후 매니저로부터 나 대신 일본 친구가 뽑혔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이후로 자그마치 2주 동안 그 어디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기록용 유튜브도 시작하고, 처음으로 한인 마트에서 장도 보며 나름 케언즈에서 잘 지내는 듯했지만 반절은 맞고 반절은 틀렸다.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일들을 하나둘씩 해 나가며 분명히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자리가 좀처럼 구해지지 않았고, 돌아다닐수록 느끼게 됐던 것은 많은 가게가 이미 구직을 다 끝낸 상황이고 지금 당장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지 않는 이상 정말로 여기서 일할 자리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케언즈는 시드니와 달랐다. 많이 달랐다. 시드니는 대도시고, 케언즈는 소도시다. 내가 아무리 오지잡 두 탕을 뛰었다 한들 케언즈에는 일할 곳조차 많지 않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지난해에 케언즈와 포트 더글라스 각각에서 세컨 비자를 취득했다던 젤라또샵 동료들은 4-5월에 지역 이동을 해서 일 구하기 무척 어려웠다고 했었다. 그들의 말을 고려해서 일부러 일찍, 무려 2월 말에 케언즈로 넘어온 것이었는데, 대체 어째서? 평소보다 성수기가 늦게 시작하려는 걸까? 아니면 이번에 특히 더 워홀러들이 안 빠져 나가는 건가? 어떤 이유에서건 케언즈는 워홀러 과포화 상태였고, 여러 곳을 돌아다녀도 매번 같은 답변만 돌아오는 것을 보고 어느 순간 여기 더 있다가는 정말 일 하나 못 구하고 숙식비로 돈이 다 나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 어떤 것도 그 가치만큼 즐길 수 없는 노릇이었다.
무기력한 상태가 길어지면 육체와 정신 모두 삽시간에 망가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트라이얼을 한 날로부터 2주가 지났을 무렵에는 처음으로 농공장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원래는 그렇게 알게 된 바나나팜에 들어가려고 했다. 정확히는 바나나팜과 연계된 워킹호스텔로.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과 한곳에서 숙박하고 함께 일하며 서비스업으로 88일 채우는 것과 달리 쉬프트 걱정 없는, 전형적인 농공장형 세컨 비자 생활을 할 계획이었다. - 세컨 비자를 취득하기 위한 조건을 채우려면 국가가 지정한 지역, 지정된 직종에서 최소 88일 이상, 그러니까 일주일에 기본 35시간 이상 근무해야 하는데 서비스업의 경우 스케줄을 많이 주지 않기 때문에 일수를 채우려면 실제로 88일보다 더 긴 기간 일해야 한다. - 그런데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대만 친구가 바나나팜이 아닌 치킨 공장에 취직했다고 해서 조건을 비교해 보니까 그쪽이 훨씬 나은 게 아닌가? 친구를 통해 받은 HR 매니저 번호로 연락해 운 좋게도 전화 인터뷰까지 하게 되었고, 좋은 인상을 남긴 것인지 바로 그날 저녁에 합격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다음 주에 바로 인덕션(취임식)이 잡혔고, 마침내 그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다음부터 할 일은 분명했다. 공장 근처의 집을 찾아서 컨택한 뒤, 인스펙션을 마치고, 집을 옮기는 것. 그거면 끝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공장에서 도보로 35분밖에 걸리지 않는 집이 플랫메이트에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했고 여기서 더욱이 다행이었던 점은 집주인 분과 소통이 매우 빠르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결국 화상 전화로 인스펙션을 하게 되었지만 사진에서 보던 것처럼 새로운 집도 무척 좋은 컨디션이었다. 그곳도 모든 것이 갖춰진 독방을 제공했고, 보증금 200불에 방세는 인터넷비 제외 빌 포함 주 200불이었으며 미니멈 스테이가 존재하지 않았다. 해당 치킨 공장은 직원들용 숙소를 따로 제공하지 않아 직원들이 알아서 근처로 집을 구해서 통근해야 했는데 정말 운 좋게도 다시 한 번 내게 커다란 행운이 찾아온 것이었다.
마침 이삿날이 인덕션 다음 날이어서 인덕션 당일 아침 미리 짐의 일부를 이사 갈 집에 옮겨 놓았다. 그리고 나처럼 새로 들어온 대만 친구 두 명과 함께 인덕션을 마쳤다. 해당 치킨 공장은 마리바에 있었는데, 마리바에서 케언즈로 가는 버스는 오후에 단 한 대밖에 없고 심지어 그 버스는 오후 1시 30분에 마리바 도착 예정이어서 - 평일 기준 - 더 둘러볼 것도 없이 인덕션이 끝나는 대로 빠르게 정류장으로 향해야 했다. 그렇게 하루는 빠르게 지나갔고, 이후 무사히 이사를 마쳤으며, 비록 캐리어에 참기름을 쏟긴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성공적인 이사였다.
케언즈를 떠나오기 전, 집주인 분들 그리고 비교적 짧은 시간 함께한 하우스메이트들 두 명과 충분한 작별 인사를 주고받았다. 시드니에서처럼, 이라고 하기에는 케언즈에서 사귄 사람은 시드니 친구들에 비해 턱없이 적었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좋아하는 장소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아쉽게도 케언즈에서는 별 추억을 많이 쌓지 못했다. 여건만 된다면 즐길 수 있는 것이 정말 많은 도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때는 때가 아니었으므로, 큰 아쉬움은 남기지 않고 자못 후련하게 그곳을 떠났다. 언젠가 다른 상황으로 찾아올 날이 있겠지, 하고.
새로운 시작을 앞에 둔 날은 언제나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다시 한 번 홀로 짐을 잔뜩 이고, 이번에는 시외 버스를 타고 산골짜기로 들어갔다. 목표를 향해 단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곳을 척척 걸어나가는 내가 언제나 자랑스러웠지만, 그렇게 어디론가 떠나야만 하는 순간에는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어딘가 질척하고 어두컴컴한 곳에 혼자 갇혀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드는 것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는 것도 아닌, 시간과 주변 사람들 모두 멈춰 있는데 나만 아주 깊고 어두운 심연으로 조용히 침잠하는 느낌이랄까.
그렇지만 그 공허하고 침울한 기운은 새로운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단 한 번도 내게 깃든 적 없던 것처럼 빠르게 자취를 감춘다. 그러면 나는 시작에 앞서, 오직 밝은 감정들에만 기대어 오늘을 마무리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제 정말 모든 준비가 끝났다. 차가 없어도 치킨 공장에 출근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지 않아도 되는 독방도 가지게 되었으며, 퍼스트 비자 만료일까지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 어떤 것도 결국에는 계획하지 않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돌이켜볼 때마다 그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목표한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 이 집에서 살면서 치킨 공장에서 세컨 비자 취득에 필요한 일수를 채우며 돈을 벌면 끝이었다. 결국엔 모든 것이 내 바람대로 이루어진다. 현실은 언제나 달콤할 수 없지만,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자주 달콤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인생은 어쩌면 예측 가능하게 흘러갈 수도 있는 것, 그것이 내 지론이었다.
스물하나에 삶을 논한 것이 화를 불러일으킨 것일까? 머지않아 나는 또 하나의 교훈을 얻게 되었고, 그것은 놀랍게도 내 지론을 완전히 뒤집는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