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약 6개월의 시간이 흐르고, 첫 번째 작별 인사
개인적으로 크리스마스에 이를 때까지 치열하게 했던 고민이 있다. 사실 그 고민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해 더 열심히 시티 생활을 한 것도 있었다. 그 고민은 바로, 세컨 비자를 따느냐 마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호주에 온 지 몇 주 지나지 않아서 1년 버티기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사는 것’에 집중하자는 결론에 이르렀었다. 그렇게 두 개의 일을 병행하며 쉼이 주어질 때마다 혼자서 혹은 친구들과 함께 시드니를 최대한으로 즐겼고, 그런 생활을 2개월 정도 하고 나니 호주에 더 오래 머물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물론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2년 동안 쭉 호주에 있을 계획은 아니었고, 나중에 호주에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방편을 마련해 두기 위함이었다.
확신이 들 때까지 혼자서도 많이 고민하고 주변인들에게도 의견을 꾸준히 물었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그리 하기로 결정해 놓았던 것이 틀림없다. 세컨 비자를 획득하지 않고 보내는 일정은 한국에서든 호주에서든 정말 단 한 번도 계획해 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영주권까지는 아직 섣부른 판단일지라도, 비자 1년 연장은 상황이 어떻게 변하건 내가 반드시 원할 무언가라는 생각을 늘 했었다. 호주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나와 잘 맞는 나라임을 확인했고, 지금처럼 꾸준히 노력하면 영어도 문제없을 것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장소,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가 사랑하는 음식 등 호주에서 나를 이루는 것들 역시 빠르게 생겨나고 있었다. 그러므로 언제가 되든 나는 반드시 호주로 돌아온다. 돌아와야 한다. 그 다짐은 기나긴 고민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결정이 난 이후에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젤라또샵 동료들의 조언을 따라 다음 달 케언즈행 비행기 표를 끊었고 가자마자 숙박과 일을 해결하기 위해 일주일 동안 머무를 호스텔을 예약했으며 그곳에서 사람들에게 나눠 줄 이력서를 수정했다. 또한 시드니에서 소꿉친구처럼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에게 작별 소식을 미리 전하며, 최대한 많은 이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끔 계속해서 만남을 가졌다. 지금의 이별이 너무 많이는 아쉽지 않게, 다음의 재회까지 적당한 그리움을 가지며 살아갈 수 있도록.
그러는 동안 내게는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내가 일하던 젤라또샵은 시드니에 총 네 개의 지점을 갖고 있었는데 그중 무려 세 개의 지점에서 일하는 워커가 된 것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눈에 띄게 느리게 일한 탓인지 사실 처음에는 좌천된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다른 지점에서도 일하기 시작하면서 실력이 급상승했고 그 덕분에 또 다른 지점에서까지 쉬프트가 잡혀서 결과적으로 여러 지점에서 일해 본 경력을 가지게 되었다. 한편 직장 동료에게 느닷없이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난데없는 열병을 심하게 앓아야 했다. 누군가를 좋아해 본 기억이 너무 오래되기도 했고 안 그래도 특별한 상황에서 하필 내 취향의, 그것도 가질 수 없는 사람을 만났다는 이유로 호주에서의 여정을 다 마칠 때까지, 그러니까 약 8개월 동안 마음속에 음울한 진분홍빛을 품고 살았다.
황당한 사건 또한 있었다. 이사 간 하우스에도 문제가 많았는데, 그곳에서의 일들은 같이 사는 친구들이 시끄럽거나 너무 잘난 류의 문제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오히려 독특하고 기괴한 쪽에 가까웠다. 기본적으로 거주 환경이 전과 매우 달랐다. 전에는 14명이 사는 다층 주택에서 나의 경우 3명이 하나의 방과 그 방에 딸린 화장실을 공유했는데 이번에는 5명이 사는 2층 주택에서 나의 경우 한 명과 방을 공유했고 4명과 공용 화장실을 썼다. 이전 하우스메이트들은 대부분 또래였고 모두 여성이었는데 이번 하우스메이트들은 3명의 여성, 2명의 남성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대체로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으며 예를 중시하는 성격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전 집에서는 문제없던 것들이 이번 집에서는 큰일 수준의 반응을 일으켰고 알고 보니 이미 그 집 하우스메이트들 간 사이가 삐그덕대고 있던 시기였는데 나 포함 새로운 사람들이 구성원으로 들어가면서 점차 모두가 쉬쉬하고 있던 문제들이 하나둘씩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여러 사건들이 한번에 휘몰아쳤다.
그중 가장 황당했던 사건만 짚고 넘어가자면, 유일하게 내 또래였던 싱가포르 출신의 남성과 나 사이에 있는 갈등이 고조되고 있던 시기에 터진 일이었다. 그날은 케언즈로 떠나기까지 약 한 달이 남은 토요일이었다. 카페 동료 생일 기념으로 시간 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가진 뒤 밤늦게 집에 들어왔는데 닫힌 방문 앞에 샴푸 통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집어든 통에 붙어 있던 포스트잇 한 장.
‘Good Job Thief :)(도둑아 잘했어)’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당최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런 미친 짓을 할 사람은 그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곧바로 같은 방을 쓰던 사람에게 이 얘기를 전했다. 실제로 그 짓을 벌인 작자는 그가 맞았고, 그가 변명하기로는 그날 샤워를 하는데 샴푸 통이 깔끔하게 비워져 있었고 그보다 먼저, 그날 유일하게 샤워실을 이용한 내가 범인일 것이라고 확신해 내게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나는 그의 샴푸를 사용하지 않았고 애초에 그의 샴푸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여전히 진실은 아무도 모르지만 그 이후, 내게 앙심을 품고 있던 그가 나를 골탕 먹이기 위해 자작 쇼를 벌인 것으로 기정사실화되었다. 평소에도 나를 좋게 보지 않았고 허언증까지 있던 집주인은 나와 그를 삼자대면시켰고 결론적으로 내가 세상에서 제일 나쁜년이 되어 2주 안에 집을 구해서 방을 빼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내가 같이 사는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가 부족한 부분도 있었겠지만 소통 오류로 상황이 잘못 흘러간 적도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오해한 부분도 많았는데 그 무엇도 이해받지 못한 채 갑자기 벼랑 끝에 서게 됐다. 아마 지금 그 일을 다시 겪게 된다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으리라. 무엇 하나 제대로 영어로 설명하지 못해 마음에 구멍이 생겼던 그때를 다신 반복하지 않기로 나 자신과 약속했으므로.
그곳에서 받았던 수많은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날려 버리듯 운 좋게도 오프닝 근무를 맡는 카페에서 동료 하나가 몇 주 전부터 딱 내가 떠나고 며칠 뒤까지만 집에 방이 하나 빈다고 해서 그 친구 집에 바로 들어가게 됐다. 딱 2주 동안만 머물 거라 비싼 돈 주고 호스텔 갈 거 아니면 지금처럼 집주인 한 명이 관리하는 집에 들어가야 했는데 미니멈 스테이가 필요 없는 집을 구하는 것부터 굉장히 어려웠다. - 대개 미니멈 스테이는 한 달 이상부터다. - 게다가 오전 8시까지 카페로 출근해야 했으므로 카페와 가까운 지역에 위치하기까지 한 집은 더더욱 찾기 어려웠는데 그런 상황에서 말도 안 되는 행운이 찾아온 것이었다. ‘나는 정말 운이 좋다.’ 그 전까지 내게 벌어지고 있던 일들은 아무렴 괜찮다는 듯 오로지 내가 구원된 상황에만 집중해서 생각했다.
호주 부모님 아래서 호주에서 나고 자란 친구의 집은 내가 호주에서 머무는 동안 지내온 House와는 다른 주거 형태를 띤 Flat이었다. 그 집이 위치한 지역은 에핑으로, 내가 일하는 쇼핑센터에서 나와 메트로 한 정거장만 지나면 바로 도착하는 곳이어서 이전에 살던 집만큼이나 출퇴근이 매우 용이했다. 그때 호주에 와서 처음으로 내 방이라는 것을 갖게 되었었는데, 같이 사는 친구와 나는 활동 시간대가 매우 달라서 집에서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하여 2주 동안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아파트에 나 혼자 사는 느낌을 받으며 살았다. 이것만으로도 이렇게 좋은데, 실제로 집에서 혼자 사는 삶은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자취에 대한 로망이 탄생했다.
처음으로 집에서든 밖에서든 언제나 힐링으로 충만한 시간을 보내며 시드니에 대한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정말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해 놀았다. 가고 싶었던 해변도 빼놓지 않고 들르고 곳곳에서 만난 소중한 사람들과 새로운 추억들도 많이 쌓고 오랜만에 좋아하는 강사님의 댄스 클래스에도 참여하고 머리도 자르고 카페 동료들이랑 송별회도 열고... 행복이란 단어로 다 표현되지 못할 만큼 엄청난 하루하루를 보냈다. 또한 케언즈로의 지역 이동 하루 전날까지 출근을 했다. 그로부터 며칠 전엔 이력서를 다발로 출력했고 이동 전날에는 플랫메이트를 통해 이전처럼 자기PR 메시지를 단체로 발송했다. 덕분에 케언즈에 가기도 전에 인스펙션 일정을 여럿 잡았고 그리하여 모든 게 준비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된다. 준비는 끝났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나는 결정은 그닥 어렵지 않았다. 이미 호주에 온 것부터가 나에게 그런 선택이었고, 한 번 결심한 것에 있어서는 결코 뒤돌아보지 않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물론 떠날 때까지 마음이 싱숭생숭한 부분은 어쩔 수 없었다. 누군가는 고작 6개월이라고 하겠지만 나에게는 내 일생 가장 의미 있는 6개월이었고 그 기간의 배경이 된 시드니는 나의 또 다른 집이 되었으므로. 집을 떠나는 일은 언제나 마음이 심란한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시작이 퍽 기대되기도 했다. 새롭게 구할 직장, 새롭게 만날 사람들, 새롭게 내 배경이 될 풍경들. 어렴풋이 예상해 볼 수 있는 것들과 전혀 가늠되지 않는 것들. 그 모든 것이 날 잠 못 들게 할 만큼 설레게 했다.
이번에는 완전히 나 혼자서 비행을 준비해야 했다. 짐을 꾸리고, 그것들을 이고, 공항으로 향하는 일까지 모두 다. 처음 해 보는 일이었지만 어찌 됐든 시간 안에 해결해야 했으므로 쉴 새 없이 움직였다. 호주에 와서 짐 들고 장소 옮기는 것만 벌써 5번째였기에 예상대로 일은 수월했고 국내 공항에 도착해 백드랍까지 무사히 마쳤다. 공항 내 샌드위치 가게에서 늦은 점심을 구매한 뒤 비행기에 올랐다. 인천에서 시드니로 향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마음가짐으로 창 밖을 바라봤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나는 혼자지만, 이제는 외국에서도 혼자 잘 산다는 걸 안다. 나는, 해 낸다. 그것은 더 이상 믿음이 아닌 자명한 사실이었고, 이번에도 증명할 것이었다. 두 번째 여정이 시작될 차례다. 벅차오르다 못해 흘러넘치는 감격의 파도를 남김 없이 들이마셨다. 그리고 이번엔 영어로 흘러나오는 기내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Ladies and gentlemen, we are now ready for takeoff. Please sit back, relax, and enjoy your flight.(승객 여러분, 이륙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편안하게 앉으셔서 즐거운 비행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