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불안과 친구 되는 법을 배우다
몸살 감기에 걸렸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었다. 외국에서 호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병치레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사실과 별개로 레스토랑 일은 내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우스메이트들에게 내 심정을 토로하며 사실은 답정너였지만 친구들의 의견을 물었다. 이 상황을 버텨 내야 하는 거냐고. 아무리 중압감에 사로잡혀 냅다 주저앉고 싶데도 운 좋게 구한 일인데 이렇게 걷어차는 게 맞을까, 힘들기 때문에 더 버텨 내려고 악을 써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을 안 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단호했다. 네가 아니다 싶으면 아닌 거라고. 여기서는 하루만 일하고 튀는 애들 수두룩 빽빽이라고.
결국 그날 밤으로부터 약 이틀이 지나고 내 인터뷰를 봤던 바 매니저에게 상황 설명을 하며 그만둬야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괜찮다고, 미리 말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며 일을 위해 가져갔던 물품들을 돌려 주면 좋겠다는 답을 보내 왔다. 더 버텨야 했을까. 한국에서는 어떻게든 버텨 내던 나였는데, 이렇게 금방 포기해 버리면 앞으로의 일들은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그런 후회가 몰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의 나로서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고, 그것을 모를 만큼 아둔하지 않았다. 더 이상의 의구심은 내려 놓고 건강 회복에 힘쓰기로 결심했다. 몸이 낫는 대로 밖에 나가서 다시 이력서를 돌리자. 그렇게 다짐하면서.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낫겠지 했던 몸 상태가 며칠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한은 며칠 밤 이후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지만 그 무렵 이번에는 목소리가 제 역할을 못하기 시작했다.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친구와 너무 많은 이야기를 나눈 탓일까? 당시 몸 상태가 급속도로 안 좋아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방으로 들어갈 생각 한 번을 못했다. 결국 다음 날 아침 목소리를 잃었고, 그야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졌다. 안 되는데, 나 진짜 빨리 일 구해야 하는데. 이제 정말 내가 밖에 나가서 할 수 있는 일은 아픈 몸을 이끌고 마트에 가서 장을 봐 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 진짜 뭔.
그 어떤 언어도 소리로 변환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 서럽기보다는 두려웠다. 정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될까 봐. 목소리가 쉬어 본 적은 있어도 잃어 본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기에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목은 가히 공포스러웠다. 병원비가 얼마가 나오든 이젠 진짜로 병원에 가는 것밖에는 답이 없다는 생각에 그렇게 무시무시하다는 호주의 병원에 들르게 됐다. 호주에서는 전문의를 만나기 전에 일반의(GP)를 만나야 하는데 일반의를 만나는 것만으로 상당한 값을 지불해야 한다. 나의 경우 10만원이 넘게 나왔었는데 워홀 보험을 들고 간 덕분에 그 돈은 다 돌려 받았다. 그러나 약값은 온전히 내 돈으로 치러야 했기에 마음이 좀 아팠다.
약의 도움도 있었겠지만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목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러나 도저히 집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목이 완전히 회복되기 전부터 다시 이력서를 들고 가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직 활동을 재개했다. 정말 다행이게도 이력서를 돌리기 시작한 지 이틀째 되었을 때 들렀던 젤라또 가게에서 3일차 오전에 전화가 왔다. 나의 현재 상황을 묻더니 다음 주 월요일에 트라이얼을 해 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기억하기로 내가 그날 들렀던 젤라또 가게는 매우 경치 좋은 강을 앞에 둔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분위기도 매우 활발했고, 그곳에서 나온 사람이 이 집 젤라또 정말 맛있다고 말해 주기도 했었다. 어째선지 조짐이 좋은 느낌이었다.
NSW주 주립 도서관에서 슈퍼바이저로부터 받은 젤라또 위치표를 달달 외우며 월요일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대망의 월요일 오후 2시, 두 시간의 트라이얼이 시작되었고 대혼란의 시대가 펼쳐졌다. 한국에서도 베라에서는 일해 본 적이 없었던지라 스쿠핑하는 것이 - 주걱 모양의 기구로 젤라또 푸는 일 -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바로 옆에서 설명도 듣고 시연도 봤지만 매니저가 하라는 대로 따라하는 것은 오늘 안에는 절대 해결될 수 없는 일 같았다. 그 탓에 가게 분위기도 좋고 동료들과 손님들 간의 관계도 굉장히 친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이곳에서 일하게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마냥 아쉽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만큼 당시에는 일의 장벽이 퍽 높아 보였고 트라이얼에서 내가 잘해 보인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웬걸, 그날 오후 슈퍼바이저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연락이 왔다. 그때 깨달았다. 아, 일을 구할 때는 생글생글 잘 웃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손님들을 대하고, 어려움을 느껴도 최선을 다해 해 보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전부구나. 내가 일을 처음부터 완벽하게 해 낼 필요는 없었던 거구나.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 여기서는 빛을 발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체감했다. 그렇게 버려지고 수없이 상처 받았어도 사람의 온기에 쉽게 녹아내리던 성격이 이곳에서는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 되었다. 호주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나라였다.
워낙 직원이 많은 직장인데다 신입이었던지라 첫 주부터 쉬프트가 많이 주어지지는 않았다. 마음이 편치는 않았지만 차차 늘려지겠거니 하고 현재를 즐기려고 노력했다. 제대로 된 일을 구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마음 편하게 무엇을 먹거나, 누구와 놀거나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묵었던 호스텔에서 친해진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공원에서 이야기 나누고, 하우스메이트와 바다에도 가고, 친구가 추천해 준 영화도 보고, 무료로 음식을 나눠 주는 마켓에도 가고, 친구들과 함께 Bondi-Coogee walk도 가고 ••• 현재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다 누리려고 나름 최선을 다했다. 돌아갈 집도 있고 꾸준히 다닐 직장도 구했으니까 잘 지내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뭐가 문제였을까.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아니고 호주를 떠날 생각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어째서인지 자꾸만 내가 있는 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사실 마음이 불안정하다고 느낀 지는 꽤 됐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심장이 빨리 뛰고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괴로움에 몸부림쳐야 했다. 그럴 때마다 가슴을 두드리며 다 괜찮다고, 네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금방 다 나아질 거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그런데도 마음이 괜찮아지지 않는 순간에는 어김 없이 엄마에게 국제 전화를 걸었다. 엄마에게 고통을 호소하고 나면 엄마는 늘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네 안엔 강한 심지가 있어. 네가 선택한 모험이라는 걸 절대 잊지 마. 상황이 무서워졌다고 해서 계속 불안하기만 하면 그 모험은 절대 행복해지지 않을 거야. 그걸 즐기려고 선택한 건데 너무 불안해하기만 하면 그때의 네가 너무 슬퍼할 거야. 상황이 달라졌다고 해서 그때 그 마음을 잊으면 안 돼. 모험을 시작했는데 어떻게 상황이 안 달라지겠어.
그 처음의 마음이 나중에 미련으로 남으니까 잊으려 하지 마. 그때야말로 진짜 슬플 거야. 불안은 별거없어. 그 마음은 발로 한 번 차면 상관없는데 굳건하게 먹었던 마음을 외면하면 나중에 미련과 후회가 남아서 앞으로 갈 때마다 주변을 돌아보게 돼. 불안 때문에 모든 걸 놓치려고 하지 마. 하나씩 외면하다 보면 나중에 가서는 미련이 네 발목을 잡아. 불안 하나로 모든 감정을 덮으려고 하지 마. 나중에 진짜 울게 돼. 후회를 가지게 된다고. 후회는 아무리 빨리 깨우쳐도 늦어. 슬프고 괴롭기만 해.
어떤 상황에서도 불안은 떨칠 수 없는 거야. 걔는 인생의 동반자야. 행복하고 같이 붙어 있는 게 불안이야. 그건 외면할 수가 없어. 그거에 먹히지만 않으면 돼. 그까짓 불안 때문에 인생 말아 먹으려고 하지 마. 너한테는 강한 심지가 있고 즐겁고 호기심 많은 마음이 있었어. 그 마음을 외면하려 하지 마. 마음속을 잘 들여다봐 봐. 다른 일을 시작한다고 해서 불안이 없어지는 게 아니야. 불안을 침구로 삼아. ‘같이 잘 이겨내 보자 내 안의 불안아.’ 이렇게. 네 안의 다른 친구들도 있잖아. 호기심 친구가 네 안의 불안을 잘 다독여 줄 거야.”
엄마는 내가 잊고 있었던 꿈과 원래 내 모습을 계속 상기시켜 주었고 그때마다 아득히 멀어져 가던 나를 가까스로 붙잡아 끌어당겼다. 스쿠핑은 여전히 힘들고, 실전 영어는 더더욱 힘들고, 같은 집에서 사는 친구들은 밤늦게까지 소리 낮출 줄을 모르고. 나를 저 깊은 어둠 속으로 침잠하게 만드는 것들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겨 내야만 했다. 내가 오고 싶어서 왔고, 내가 선택한 호주는 기대 이상으로 아름답고 다정했으며, 무엇보다도 내가 이루고자 하는 꿈이 나를 놓지 못했기에. 이렇게 괴로운데도, 이렇게 간절하게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은데도 결코 멈춰 설 수 없었다. 내 안에는 강한 심지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