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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상적인튀김요리 Dec 23. 2021

일상이 주는 선물

열네 번째 책 <꽝 없는 뽑기 기계>

<깔끔하게 꽂는 책꽂이>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작품을 선생님의 관점에서 읽고 소개합니다. 주변에 책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지루하다는 이유로 혹은 길거나 어렵다는 이유로 멀리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고 함께 이야기하고 공감하며 천천히 그리고 끝까지 읽어보세요. 그러면 아이들은 분명, 그다음의 책을 스스로 찾아 나설 겁니다.



오늘 글의 시작은 곽유진 작가의 말로 열어볼까 합니다. "세상에는 상처받은 어린이들이 많습니다. 어린이 독자님들도 둘러보면 주변에 그런 친구가 있을 거예요. 친구를 위해 조금 기다려 주세요. 응원해 주세요. 그러면 친구는 어느새 곁으로 돌아올 테니까요." 


<꽝 없는 뽑기 기계>의 주인공 희수는 뽑기를 좋아합니다. 아니, 좋아했습니다. 희수의 뽑기 기계를 둘러싼 알쏭달쏭한 속마음을 읽고 있으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불편하고 애틋한 마음이 듭니다. 그러던 희수가 우연히, 새로운 뽑기 기계를 만납니다. 그 뽑기 기계로 데려간 남자아이는 "이건 꽝 없는 뽑기 기계야."라는 수상한 말을 하죠. 희수는 뽑기를 하고 싶지 않지만 아니, 하면 안 되지만 남자아이의 부추김에 손잡이를 돌립니다.


'1등' 우와, 1등입니다. 그런데 상품이 좀 이상합니다. 1등이라고 하기엔 평범한, 낡은 칫솔 두 개입니다. 희수는 또, 그 뽑기 기계를 찾아갑니다. 이번엔 웬 여자아이가 희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희수는 여자아이와 함께 한 번 더 손잡이를 돌립니다. 또, '1등'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상품이 좀 이상하네요. 평범한 낡은 책과 색연필입니다.


도대체, 이 뽑기 기계는 뭐고, 1등 상품들은 다 뭘까요? 희수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희수는 얼마전,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순식간에 잃었습니다. 뽑기를 하고 싶다는 희수의 투정에 아빠가 차를 돌리자마자 그만, 사고가 나버린 것이죠. 


희수가 뽑기 기계를 하지 못하는,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이 교통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때문입니다. 희수는 교통사고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로 인해 아직, 학교로 돌아가고 있지 못하고 있죠.


그런 희수에게 나타난 꽝 없는 뽑기 기계는 트라우마를 조금씩 이겨내게 할 수 있는 뽑기 기계입니다. 꽝이 없다는 말에, 어렵고 두렵지만 손잡이를 드르륵 드르륵 돌리죠. 희수는 그렇게 조금씩 아픔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낡은 칫솔 두 개로 더러워진 하얀 신발을 닦고 낡은 색연필로 오랫동안 그리지 않았던 그림 일기를 그리고 책벌레 희수가 낡은 책을 오랜만에 읽으면서 말입니다.


베란다에선 빨래가 바짝 마르고 있었어. 우리 집 안에 가득한 햇살 덕분에 언니의 교복도 태권도복도 마르고 내 운동화도 바짝 마르고 있었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저 내일부터 학교 가도 돼요?" (62쪽)



눈치를 채셨는지 모르겠지만, 희수를 꽝 없는 뽑기 기계로 이끈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희수의 엄마와 아빠입니다. 그리고 희수의 엄마와 아빠는 희수에게 대단한 물건이나 위로를 건네는 것이 아니라, 아주 일상적이고 평범한 물건을 선물합니다.


깨끗한 운동화를 닦을 수 있는 칫솔, 희수가 좋아하는 책, 희수가 매일 쓰던 그림일기를 그릴 색연필까지. 상처받거나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대단한 어떤 것들이 아니라 그 전에 일상적으로 소소하게 했던 평범한 일들임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상처받고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이겨내라고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천천히 조금씩 돌아올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한 일임을 깨닫습니다.


머릿글에서 소개한 작가의 말처럼 세상에는 상처 받은 아이들이 많습니다. 수많은 아이들이 일상을 기다리고 있죠. 우리가 해야할 일, <꽝 없는 뽑기 기계>를 통해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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