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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상적인튀김요리 Dec 23. 2021

난 오하늬. 몬스터 차일드야.

열다섯 번째 책 <몬스터 차일드>

<깔끔하게 꽂는 책꽂이>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작품을 선생님의 관점에서 읽고 소개합니다. 주변에 책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지루하다는 이유로 혹은 길거나 어렵다는 이유로 멀리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고 함께 이야기하고 공감하며 천천히 그리고 끝까지 읽어보세요. 그러면 아이들은 분명, 그다음의 책을 스스로 찾아 나설 겁니다.



<페인트>, <앵무새 죽이기>, <원통 안의 소녀>, <담을 넘은 아이>. 이전에도 차별과 혐오에 대한 문제의식을 다룬 책들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페인트>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로, <앵무새 죽이기>는 인종에 관한 이야기로, <원통 안의 소녀>는 장애와 복제 인간에 관한 이야기로, <담을 넘은 아이>는 시대적 요소에 관한 이야기로 좁혀지면서 차별과 혐오에 대한 문제의식이 조금 흐려지는 아쉬움도 없잖아 있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몬스터 차일드>도 차별과 혐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차별과 혐오를 다루었던 기존 작품과는 달리 사회적 차별과 혐오를 이야기 전면에 내세우는 책입니다.


주인공 오하늬는 희귀병을 앓고 있습니다. MCS. 돌연변이종양 증후군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병을 '몬스터 차일드 신드롬' 그러니까 '괴물 아이 증후군'이라고 부르죠. 사람들이 이 병을 그렇게 이름 짓는 이유는 MCS를 앓고 있는 이들이 보이는 공통적인 증상 때문입니다. 온몸에 털이 나고 몸집이 커지면서 힘도 몇 배 강해지는 '변이'가 일어나는 것이죠. 글로 적힌 그 증상은 마치 괴물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MCS 환자들을 정말 괴물의 이미지로 만드는 건 그 증상이 아니라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입니다.


"날고기를 말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그건 가짜 뉴스다. 나는 날고기를 먹지 않는다. 사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아이들이 이미 날 '빨간 고기' 먹는 괴물로 본다는 게 중요했지."


하늬는 또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하늬는 MCS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면, 학교를 옮겨야 했습니다. 그렇게 벌써 일곱 번째 학교죠. 하늬는 전학이 덤덤하면서도 두렵습니다. MCS 환자라는 사실을 들켜선 안된다는 강박에 늘 시달리고 있죠. 그런데 하늬는 이번 학교에서 예상치 못한 아이 한 명을 만납니다. 바로 연우입니다. 연우 역시 MCS 환자였죠. 그러나 변이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변이 억제제를 먹고 있는 하늬와 달리 연우는 약을 먹지 않습니다. 약을 먹지 않는 탓에 연우는 학교에서도 자주 변이를 일으키고 있었죠. 반 아이들은 그런 연우를 자신들과 쉽게 구분 짓고 혐오합니다. 하늬는 연우를 향해 차별과 혐오의 이야기가 습관적으로 오가는 교실이 익숙하게 다가옵니다. 언젠가 그 차별과 혐오가 자신을 향할 거라고 짐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들, 내가 MCS라는 걸 알고 난 뒤에도 지금처럼 다정하게 대해 줄 수 있어?"


하늬가 이곳으로 전학을 온 건 또 다른 이유가 있어서였습니다. MCS 연구로 유명한 의사가 이곳에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죠. 하늬는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동생 산들과 함께 'MCS 자립 훈련소'로 향합니다. 그렇게 만난 강규철은 MCS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MCS 환자를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곳으로 훈련소를 소개합니다. 돕는다니. 그동안 억제제에 기대 살았던 하늬 가족에게는 낯선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하는 소장의 말이 가장 낯설게 들리죠. 적어도 하늬는 여태껏 자신을 사랑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스스로를 사랑하게 된다고?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나는, 내가 밉다. 내 안엔 괴물이 있으니까. 그래서 괴물이 드러나지 않도록 꾹꾹 눌렀다."


그렇게 훈련소에서의 생활과 약을 먹지 않는 연우와의 만남은 그동안 하늬가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던 것에 물음표를 던지게 합니다. 하늬는 그동안 자신이 위험한 존재, 두려운 존재, 주변을 불행하게 만드는 존재로 스스로를 평가했습니다. 주변의 차별과 혐오에 대해 받아들여야 한다고, 내가 고쳐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내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일이 자신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점차 깨달아갑니다. 그리고 주변의 시선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나 자신의 시선을 주목하게 되죠. 


"엄마는 내가 부끄럽고 밉지? 나도 내가 미웠는데... 이제는 안 그러려고. 만약에 고칠 수 없으면? 그런 나는 내가 아니야? 몹쓸 병이 있으면 엄마 딸이 아니야?"  

  



하늬는 MCS를 앓고 있으면서도 괴물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주변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하늬는 스스로를 혐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손거울을 내밀어 변이 후의 얼굴을 보라고 했던 연우의 제안을 거절한 것 역시 스스로를 혐오하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여름 같은 녹색의 눈동자를 지닌 또 다른 하늬의 모습을 처음으로 마주한 순간, 하늬는 비로소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사람들 앞에 날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여전히 두렵다. 가슴이 두근대고 숨이 가빠진다. 그렇다고 평생 숨어 살고 싶지만은 않다. 비록 깨지고 상처 받을지라도, 당당해져야지. 더는 나를 미워하거나 불쌍하게 여기지 않고, 나를 사랑해야지."


하늬는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난 오하늬. 몬스터 차일드야."라고 말합니다. 마치 중대한 선언과도 같은 하늬의 마지막 말은 깊은 감동을 줍니다. 그러나 무분별한 차별과 혐오 속에서 살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하늬와 같은 선언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아마, 동화에서나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몬스터 차일드> 속 하늬를 통해 품어야 하는 건 주변의 하늬들에게 전해야 하는 지지와 공감의 메시지일 겁니다. 하늬가 연우와 소장님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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