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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상적인튀김요리 May 30. 2022

기후 변화, 삶으로 이해하기

서른아홉 번째 책 <폴리네시아에서 온 아이>

<깔끔하게 꽂는 책꽂이>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작품을 선생님의 관점에서 읽고 소개합니다. 주변에 책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지루하다는 이유로 혹은 길거나 어렵다는 이유로 멀리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고 함께 이야기하고 공감하며 천천히 그리고 끝까지 읽어보세요. 그러면 아이들은 분명, 그다음의 책을 스스로 찾아 나설 겁니다.



기후변화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사계절이 뚜렷하다고 배웠던 우리나라의 기후도 이제는 제멋대로 변하고 있죠. 날이 갈수록 미세먼지는 오랜 시간 동안 우리나라에 머물고 있고 북극의 빙하는 점점 따뜻해지는 지구에서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후변화에 대해 행동하지 않습니다. 없어지는 사계절은 온실처럼 알맞게 온도를 맞춰주는 냉난방 기구라면 해결이 되고, 미세먼지는 잠깐 마스크로 입막음하면 되니까요. 북극에 녹고 있다는 빙하도 너무 먼 곳에 이야기이기에 와닿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후변화는 조금씩, 하지만 빠르게 우리의 지구의 삶을 좀먹고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 나니는 기후변화로 진행된 해수면 상승과 이상 기후 현상으로 부모님과 함께 고향을 떠나기로 작심합니다. 기후난민이 되기로 자청한 것입니다. <폴리네시아에서 온 아이>는 나니 가족의 탈출부터 낯선 땅에서의 새로운 시작까지의 이야기를 그리는 소설입니다. 나니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탈출에 함께하지 못합니다. 걷지 못하는 외할아버지 그리고 그런 외할아버지를 두고 갈 수 없는 외할머니는 고향에 그대로 남기로 한 것이죠.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는요? 함께 가시는 거예요?", "아니, 같이 못 가. 외할아버지는 걷지를 못하시잖니? (중략)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를 혼자 두고 떠나실 수 없다고 하시고. (중략)", "그러다 집이 무너지면요? 섬이 통째로 바다에 잠겨 버리면요?" (22-23쪽)


사랑하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의 생이별로 시작된 나니 가족의 생존을 위한 탈출은 시작부터 깊은 슬픔으로 얼룩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고작 시작에 불과하죠. 우선, 구조 선박에 오르는 일부터 비인간적인 순간을 목격하고 견뎌야 합니다. 모두가 생존을 향하는 그곳에는 인정도, 배려도, 양보도 없죠. 넘어진 사람, 팔이 부러진 사람, 그리고 누군가에게 깔려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존재할 뿐입니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모두 힘겹게 오른 선박에서도,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육지에서도 나니 가족의 시련, 기후난민의 시련은 계속됩니다.


"이제 어디로 가요?", "모르지. 어디든 육지로, 안전한 땅이 있는 곳으로, 우리가 편안히 지낼 수 있는 곳으로.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어." (57쪽)


새로운 삶이 시작될 육지가 먼발치에서 보이기 시작한 그때, 나니의 아빠는 오히려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새로운 시작은 늘 그렇듯 두려움과 불안을 안겨주죠. 그리고 무엇보다 나니 가족을 괴롭히는 사실은 더 이상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사실일 겁니다. 어렵사리 육지에 정박한 선박에서 내려, 난민촌에서 힘겨운 삶을 이어나가기 시작한 나니 가족은 다시 한번 새로운 도전 앞에 놓이게 됩니다. 이제 난민촌을 떠나야만 합니다. 언어도 이웃도 낯선 땅으로 나니 가족은 다시 떠나야만 합니다.


"사실 처음에는 학교에서 좀 힘들었어요. 수업 시간에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거든요. 다른 애들도 우리를 이상하게 쳐다보기만 했고요. 그래서 혼자 우는 날도 있었어요.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라이와 함께 집에 있고 싶었지만, 아빠랑 엄마가 강력하게 반대했어요." (120쪽)



지구가 더워지면서 30년 후부터는 세계 3억 명의 사람들이 자기 집을 버리고 다른 도시나 다른 나라로 피난을 가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비로소 전쟁난민의 시대를 지나 기후난민의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몰디브, 폴리네시아 등의 작은 섬나라들에게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의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피부로 느껴지지 않기에, 당장 불편하거나 내가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니기에 예견된 사실들에 대해 머릿속으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외면하곤 합니다. 우리는 기후 변화에 대한 구체적이면서도 통계적인, 혹은 정확한 수치의 이야기를 꺼내기 전, 그들에게 닥친 삶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머리보다 마음을 기울이기 위함입니다.


<폴리네시아에서 온 아이>는 기후난민들의 이야기를 마음으로 그리며 고향을 잃는 아픔, 낯선 땅에서의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 힘겨운 시작마저 방해하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편견 등을 말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는 단순히 해수면이 몇 cm가 상승하고 혹은 지구의 온도가 몇 도 올라가는 문제가 아닙니다. 기후변화는 한 인간의 삶, 한 가족의 삶 나아가 사랑하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망가뜨리는 일입니다. 우리는 기후변화를 머리보다 마음으로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미래가 될 아이들이 환경의 문제를 진심으로 대하는 방법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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