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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걸음 Oct 24. 2021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세상 사람들은 다 잘 사는 것 같은데 나는 끝없는 나락 속에 홀로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 심정과 감정에서 헤어 나올 수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크건 작건 그런 순간이 올 수 있습니다.     


내면의 소리를 들어가기


사춘기는 정신적인 불안정함이 커질 때입니다. 왜냐하면 ‘나’라고 하는 정체성이 처음 만들어지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중년에도 또 한 번 위기가 찾아옵니다. 기껏 ‘나’를 열심히 만들고 세상 속에서 살았는데 공허한 마음이 밀려옵니다. 지금까지 산 삶이 어딘가 비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위기는 내가 내 내면의 마음과 어긋났을 때 내면의 마음이 보내는 신호 입니다.


이 과정을 제대로 겪지 못하면 삶에서 계속 미끄러지게 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잃어버리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과 소통하고, 자기 자신을 알아 가는 데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나’라고 생각했던 내 모습은 나에 대해 점차 알아가다 보면 극히 일부의 모습이거나 포장된 모습이었다는 것을 알아갈지도 모릅니다. 점점 더 내면의 나와 가까워 질 수 있을 때, 마음은 조금씩 힘을 찾고 숨을 쉬며 제자리를 찾게 됩니다. 너무 심한 고통 속에 있다면 처음에는 혼자서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움을 받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위해 필요하고 좋은 일입니다. 이때 그 도움을 주는 이의 역량을 알 필요도 있습니다. 누구나 완벽하지는 않고 나를 외부에서 도와주어서 완벽하게 치료해 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나의 삶의 여정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이 여정은 다른 사람이 대신 해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그 여정을 지켜보고 옆에서 함께 걸으며 든든한 동료가 될 수는 있습니다. 친구라면 서로가 서로에게 그런 관계가 될 수도 있고, 심리치료를 받는다면 밀접하게 그 여정을 지켜보아줄 든든한 아군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모두 내가 나 스스로를 알아가고 보듬어 줄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좋은 창구 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도움의 손길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누군가가 선한 의도로 돕고자 시도한다고 해도, 그 결과가 반드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서로에게 더 큰 상처를 안기게 되기도 합니다. 그것은 누군가 일방적으로 나쁘거나 잘못해서가 아니라 둘 다 그런 여정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해주는 조언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책의 조언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 조언이 아무리 나를 위한 것이 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내 마음 깊숙한 내면의 마음을 억누르고 부정하는 것이거나 그래서 결론적으로 나를 부정하는 방향이 된다면 그 도움을 따라가는 것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지금 마음이 필요한 것은 보듬음과 치유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네 마음이 지금 이렇구나. 이래서 네가 그렇게 느끼는 구나. 네가 그렇게 힘들구나.”하는 마음 자체에 가서 닿는 공감과 감싸 안음입니다. 날뛰던 마음은 이러한 이야기를 만나면 그때서야 조금 멈춰섭니다. 날뛰는 것이 안 좋고 멈춰서는 것이 좋기 때문이 아니라, 갈 곳 없이 떠다니던 마음이 저 이야기와 더불어서 있을 자리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발판이 생겼습니다. 발 디딜 곳이 생겼습니다. 숨 쉴 곳이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이 있어도 된다고, 있을 자리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모든 마음에 있을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합니다. 잘못된 마음, 잘못된 감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행위가 때로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상처받은 마음이 갈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그때는 너는 왜 그런 행동을 했냐고 나쁘다고 고치라고 비난을 들을 것이 아니라, 네 마음이 이래서 이렇게 되었구나, 너도 어쩔 수 없었구나 하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 이해와 더불어서 상처받은 마음이 설 자리를 찾고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문제가 되었던 행동은 더 이상 발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혹은 그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도 다르게 반응하게 될 확률도 높습니다. 마음에 힘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우울증이 보내는 신호


우울증은 마음 속 깊은 내면이 나를 좀 다시 봐달라고 힘들다고 보내는 신호일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내면을 보고 치유하고 보듬어 주어야합니다. 내면이 숨을 쉴 수 있게 호흡기를 달아 주어야 합니다.


우울증인 사람에게 억지로 밝아지라고 한다든가 무리하게 뭘 해보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마음이 성장하고 좀 더 나 자신이라는 영혼에 다가가는 과정이고 내 마음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에 힘이 생기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가장 마음이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것은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정하는 것은 다른 누구의 조언도 아닌 내 마음입니다. 마음이 웃는 즉각적인 신호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만큼 직관적으로 전해집니다. 누군가에게는 자연 속을 산책 하는 것이 될 수가 있고, 누군가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글을 쓰는 것, 누군가는 음악을 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이야기를 접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어떤 상태의 누군가에 반드시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각자의 내면이 웃을 수 있는 것은 다릅니다. 마음을 편하게 한다는 명상도 어떤 상태의 누군가에게는 마음을 억누르는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차츰 마음이 채워지는 일들을 하면서 마음에 물을 주면 점차 마음에 힘이 생깁니다. 그것은 억지로 무언가를 해야지 하면서 자신을 다그치거나 조정하거나 애써서 마음을 다스릴 때와는 다릅니다. 마음이 자연스럽게 웃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물을 주어야 합니다. 상처받은 마음을 보듬어 주어야 합니다. 상처받은 마음을 찾아 들어가 그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 이야기는 굉장히 오랫동안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이 구석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들에 하나하나 물을 주고 하나하나 그 마음이 웃을 수 있는 일들을 하며 마음을 채워주어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좋아질 수는 없습니다. 하루아침에 좋아진다면 그것은 진짜로 마음이 힘을 얻었다기보다는 어떤 흉내나 시늉, 혹은 표면적인 약의 화학 작용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화학 작용을 하는 약은 증세를 호전되게 할 수는 있어도 내면을 치유하지는 못합니다. 마음을 보듬는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보듬고 마음에 힘을 기르는 과정은 약보다 더디고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약과 병행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마음을 보듬고 마음에 힘을 길러가는 과정이야 말로 진정으로 나와 만나가는 여정이고 내가 나로서 좀 더 편안하게 존재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입니다. 내 내면 깊숙한 곳의 내 영혼을 점점 만나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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