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예순다섯 번째 생일, 모처럼 친정 식구들이 모이기로 했다. 삼 년 전 막내 민정이가 결혼한 이후로는 엄마 생일 말고 다 같이 모일 일이 없었다.
칠 년 전 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가고, 엄마는 아빠의 사망 보험금과 몇 마지기 안 되는 논밭을 처분해 도심 주공 아파트로 이사했다. 우리 세 자매의 권유이기도했고, 엄마의 뜻이기도 했다. 엄마는 그제야 고된 농사일에서 벗어났고, 남을 위해 삼시 세끼 밥을 차리는 일에서 해방됐다. 그때부터 엄마는 민자 아줌마네 분식집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보면 그때부터가 엄마의 전성기였다.
젊어서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분식집을 운영하며 재기에 성공한 민자 아줌마. 다행히 민자 아줌마와 엄마는 죽이 잘 맞아서 친자매처럼 지냈고, 지금까지도 민자 아줌마는 엄마의 거의 유일한 친구로 남았다.
엄마의 생일 장소는 나의 집이었다. 벌써 육 개월째 엄마는 감염병으로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을 돌봐주느라 나의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내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기도 했고, 엄마도 무릎이 아파서 분식집 일을 쉬고 있었다. 그런 이유 말고도 언젠가부터 가족 모임은 자연스레 나의 집에서 이뤄졌다.
현정 언니는 직업이 변변치 않은 형부 때문에 결혼 생활이 늘 불안정했고, 민정은 아직 신혼이었다. 무슨 일이든 무심하고 무던한 편인 남편의 성격도 이유가 됐을 것이다. 거꾸로 시댁 식구들은 친정 식구들이 자주 들락거리는 나의 집에 애초부터 발길을 하지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남편은 그 때문에 더 자주 시댁에 불려 다니는 것 같았다.
나는 모임 이틀 전부터 카드 빚으로 꾸역꾸역 장을 봤고, 대청소는 물론이고 가족들의 이부자리에 신경을 썼다. 대식구들이 모이는 자리는 언제나 좋기도 하고 귀찮기도 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친정 식구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나는 약간 들떠 있었다.
생일 당일에 민정은 제부와 함께였고, 현정 언니는 언제나처럼 막내 아이만 데리고 혼자 왔다. 언니에게는 아이가 셋이나 있었지만, 언니는 분리불안이 덜 끝난 막내만 데리고 다닐 때가 많았다. 무능력한 것도 모자라 술고래가 되기를 자처한 형부는 가족 경조사에 툭하면 빠졌다.
나의 아이들은 막내 이모가 온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 들떠 있었다. 민정은 언제나 가족들을 위해 선물을 바리바리 싸 왔고, 조카들을 특별히 예뻐했다. 민정에게도 아이가 생긴다면 나도 민정처럼 챙겨줄 수 있을지, 나는 자신이 없었다.
6인용 식탁 위에는 엄마가 아침부터 공들여 준비한 음식들이 차려졌다. 홍어 무침, 겉절이, 아귀찜, 엄마 생일에 엄마가 음식을 차리는 진기한 풍경이었지만, 엄마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한바탕 저녁 식사가 끝나고 오랜만에 마주 앉은 세 자매는 민정이 공수해 온 진기한 물건들을 구경하며 신이 났다. 민정은 서울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며 화장품 리뷰어로 활동하고 있었다. 덕분에 현정 언니와 나는 평소에도 화장품 샘플을 쌓아놓고 쓰는 호강을 누렸다.
어른들이 얼굴에 화장품을 찍어 바르며 소란을 떨자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때마침 민정은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게 따로 있다며 새로운 보따리를 가져왔다. 보따리에서는 먼저 내 딸아이에게 줄 액세서리와 공주풍의 옷들이 풀려나왔다. 딱 봐도 예쁘고 앙증맞은 민정의 패션 감각이었다. 그다음은 현정 언니의 막내에게 줄 고급스러워 보이는 원목 입체 퍼즐이 나왔다. 아이들은 산타클로스를 만난 것처럼 즐거워했다.
마지막으로 민정은 나의 둘째 아이에게 준다며 제법 큰 선물 박스를 내밀었다. 식구들의 관심 속에서 아이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포장지를 뜯자 움직이는 레고 기차놀이 세트가 나왔다. 민정은 신제품이 나오는 날 백화점에서 우연히 구했다며, 세일해서 샀으니 별것 아니라고 말했다.
현정 언니의 아들도 손에 있던 퍼즐을 내려놓고 레고 기차에 몰두했다. 격이 다른 선물에 민망해진 내가 다 같이 가지고 놀자고 말하며 상자를 뜯었고, 놀란 둘째 아이가 자기 선물이라며 아무도 못 만지게 했다.
“승기야! 이거 네 것 맞는데, 같이 가지고 놀아야지”
“싫어, 내 거야!”
아이는 장난감 위에 몸을 웅크리며 고집을 부렸다. 찰나에 현정 언니의 아들이 제 사촌 동생을 힘으로 제압해 장난감을 뺏으려 했다. 한 살 터울인 두 아이의 대결 구도가 가관이었다. 결국 현정 언니의 막내가 악을 쓰며 울기 시작했고, 둘째 아이도 따라 울기 시작했다.
우리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주변의 장난감 가게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간신히 전화 연결이 된 가게들은 하나같이 신상품이라서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대답했다. 아이들 사이에서 진땀을 흘리는 현정 언니의 눈치를 보느라 우리는 민정의 경솔함을 탓하지도 못했다.
“민준아, 엄마가 내일 똑같은 거 사줄게, 너 이렇게 울면 엄마 집에 갈 거야, 아니면 지금 집에 갈까?”
현정 언니가 말하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급기야 언니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언니 가지 마, 엄마 생신인데, 애들은 내가 다른 걸로 꼬드겨볼게, 엉?”
내가 말했지만 현정 언니는 들은 척을 하지 않았고 아이에게 외출복을 갈아입히기 시작했다. 나는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민정이의 옆구리를 찔렀다.
“민준아, 이모가 미안해, 내일 백화점 가서 똑같은 거 사줄게, 이모는 다 같이 가지고 놀라고 꺼낸 건데…….”
민정이가 말했고, 엄마는 오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 들었다.
“민준아, 할미가 이 돈 줄게, 내일 백화점에 가서 똑같은 것 사면 안 될까? 오늘은 이모네서 놀자, 응?”
아이는 대꾸하지 않았고, 현정 언니는 그사이 신발을 꿰신었다.
“엄마, 먼저 가서 죄송해요. 얘들아, 다음에 보자.”
현정 언니는 잠시 특유의 상심한 표정을 짓다가 현관문 밖으로 사라졌다.
언니가 빠져나간 자리에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남편은 멋쩍은 얼굴로 서 있다가 레고 놀이를 하자며 아이들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철부지 아이들은 금세 기분이 좋아져서 제 아빠를 따라 들어갔다.
“맥주 마실 사람?”
내가 물었고, 남은 사람들은 조용히 식사 자리를 정리했다. 방안에서는 곧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났다. 밥상이 다시 술상으로 바뀌었고, 남은 사람들은 멀뚱멀뚱 술상에 둘러앉았다. 상위에는 아직 뜯지도 않은 엄마의 생일 케이크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러니까, 선물 준 거는 고마운데, 좀 나중에 주지 그랬어?”
내가 제부의 눈치를 보며 민정에게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내가 정신이 나갔지, 진짜. 큰언니 많이 서운하겠지? 나는 큰언니 이번에도 못 오는 줄 알았어. 저 블록도 원래는 승기 거야.”
방바닥에는 환영받지 못한 원목 블록이 나뒹굴었다.
“그렇겠지, 그러잖아도 자격지심이 많은 사람인데, 거꾸로 너였다고 생각해 봐. 네가 자식이 있으면 이해가 될 텐데……. 평생 우리하고 비교당하며 살았는데, 자식 문제로 넘어가니까 언니도 이성을 잃은 것 같아.”
내 딴에는 민정을 위로하려고 한 말이었다.
현정 언니의 어린 시절 주요 일과는 동생들 돌보기였다. 사시사철이 바쁜 부모는 그런 큰딸을 예뻐해 주기는커녕 자신들의 고된 삶의 분풀이 대상쯤으로 여겼다. 더군다나 툭하면 밭일에 끌려다니느라 성적이 좋았을 리가 없었는데, 언니는 성적 문제로 끊임없이 나와 민정과 비교당하며 자랐고, 재수까지 하다가 간호조무사 시험을 보고 곧바로 취직해 버렸다. 언젠가부터 언니는 가족 안에서 점점 작은 존재가 되어 갔다.
“내버려 둬라, 그래도 선물을 준 게 어디니? 그런 걸로 삐치고, 제 아들 하나 단속을 못 해서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어이구, 내가 이 꼴 저 꼴 안 보고 살아야지. 아니 저는 누구 선물 하나 준비해 봤니?”
가만히 있던 엄마가 결국 한마디 했다. 엄마의 말을 듣고 보니 현정 언니는 이번에도 빈손으로 온 게 확실했다. 때마침 현정 언니에게서 문자가 왔다.
‘이제 민준이가 다시는 둘째 이모 집에 안 가겠대. 이모도 할머니도 다 싫대.’
나는 문자 내용에 기가 차서 공개적으로 낭독했다.
“세상에, 나이가 한두 살이니? 문자가 그게 뭐니? 설사 애가 그렇게 얘기했다고 해도, 그걸 동생들한테 왜 얘기하는 거야? 제 팔자 속을 알아달라는 거야 뭐야, 제가 안 오겠다는 거지, 그게. 아이고, 애들이 뭘 안다고…….”
엄마가 큰소리로 중얼거렸다. 엄마와 언니는 여전히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언니의 형편이 안 좋아질수록 두 사람 사이의 골은 깊어졌다. 엄마는 언니의 불행을 자꾸만 자신의 과거와 연관 지었다. 술주정뱅이 사위의 꼴통 짓을 무능력했던 아빠와 비교했고, 순해 터진 언니의 성미와 우유부단함을 젊은 시절 자신의 어리석음과 비교했다.
우리는 각자 생각에 잠긴 채 맥주를 마셨고 조금씩 취해갔다.
“언니는 아마 오늘 일 말고도 서운한 일이 많았을 거야. 엄마가 우리 집에서 아이들 봐주는 것도 사실 질투 날 거고…….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만날 우리 집에서 모이는 것도 언니는 스트레스일 거야. 형편이 되면 이런 행사도 언니가 직접 주관하고 싶을 텐데……. 가끔 언니가 너무 힘들게 사니까 도와주고 싶다가도, 아니 언니 얘기라도 들어주고 싶은데, 같이 있으면 나도 같이 힘이 빠지니까 잘 안 되는 것 같아……. 언니가 한창 힘들다고 매일 같이 우리 집에 올 때가 있었는데, 나도 이기적이라서 다 받아줄 것처럼 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귀찮아지더라고. 그럴 때는 아무래도 표시가 났겠지? 그럴 때마다 언니가 더 상처받았던 것 같아.”
나는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길게 말했다.
“말 나온 김에 나도 언니한테 서운한 거 있었어, 말해도 돼?”
그새 얼굴이 발그레해진 민정이 물었다.
“저기, 민정 씨 그건 이따 얘기하지 그래?”
옆에 있던 제부가 말했다.
갑자기 나는 긴장했다. 민정은 지난 일을 들춰내 잘잘못을 따져가며 상대방을 꼼짝 못 하게 하는 버릇이 있었다.
“뭐? 말해봐, 무슨 일인데?”
용기 내어 내가 물었다.
“그래, 이런 자리에서 서운한 거 풀어라들.”
엄마가 말했다. 엄마가 내용을 알고 있는 눈치여서 나는 더 기분이 나빴다.
“저번 어버이날에 곰곰 생각해 봤어…….”
민정은 두 달 전 얘기를 꺼냈다.
그날은 살면서 처음으로 엄마가 내게 대놓고 화를 낸 날이었다. 어버이날이 돌아오는 줄 알면서도 나는 엄마의 선물을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 퇴근길에 케이크나 꽃을 사 올 생각이었다. 그래도 그날 아침 집을 나오면서 엄마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는 걸 잊지는 않았다.
“엄마, 우리 파티는 저녁에 합시다. 내일이 주말이기도 하고, 미안해 엄마. 이따 봐, 우리 애들 오늘도 잘 부탁해요.”
“그래라.”
나는 엄마 얼굴에서 분명 서운한 기색을 읽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출근했다가 점심시간에 잠깐 나와서 같이 식사라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남편도 출근하면서 그날의 스케줄을 물었었고, 나는 알아서 챙길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날 공교롭게도 회사 상사와 점심을 먹게 됐다. 오후 네 시쯤에는 저녁 약속이 잡혔다. 피할 수 있는 자리였지만 나는 끝내 어버이날 저녁 시간을 밖에서 보냈다. 다음 날이 쉬는 날이니 하루쯤은 흐트러지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주말에 충분히 만회할 시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밤 열 시가 넘어서야 나는 집에 들어갔다. 그때는 이미 엄마 방에 불이 꺼진 상태였고, 남편과 아이들도 모두 다 자고 있었다.
다음날 내가 늦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 남편은 이미 당직 근무를 나가고 없었다. 엄마는 아침부터 몸이 좋지 않다고 했다. 엄마의 퉁퉁 부은 얼굴을 보고서야 나는 지난날을 상기해 냈고, 산책하러 나간다는 핑계로 서둘러 아이들을 챙겨 집을 나왔다.
하루 늦었지만, 엄마를 위한 케이크와 꽃이라도 준비하려는 계획이었다. 늦었지만, 늦었더라도,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했으므로, 나는 아이들과 꽃집으로 향했다.
불행히도 집 근처 꽃집 어느 곳에도 카네이션은 없었다. 어떻게 하루 만에 꽃이 없을 수가 있냐고 따지며 나는 꽃집을 몇 군데 더 돌았고, 허탕을 치고 빵집을 향해 가고 있을 때 엄마에게 문자가 왔다.
‘몸이 안 좋아, 집에 갔다가 월요일에 다시 올게, 급한 거 없어 보이니까.’
나는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어버이날, 엄마에게 선물은 고사하고 꽃 한 송이를 챙겨드리지 못했다. 전날 먹은 술 때문에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갑자기, 집으로 가버리면 어떡하나, 나는 되레 엄마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가 나에게 서운하더라도, 엄마는 엄마니까 자식에게 효도를 강요할 수도, 서운하다고 말할 수도 없어야 했다.
그때 나는 실제 엄마의 무지막지한 도움을 받으면서도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내 집에서 지내며 육아와 살림을 도맡기로 했을 때, 나는 엄마에게 내 월급의 오 분의 일을 용돈으로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직장을 잃은 엄마도 생활비가 필요한 시점이었으므로 거절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어버이날 선물을 미루고 엄마에게 소홀했던 건 사실 고의였다. 나는 그때쯤 무언가에 계속 화가 나 있었다. 아이 둘을 돌보며 일을 하는 것도 벅찼고, 엄마의 도움을 받는 게 아니라 모시고 산다고 생각할 정도로, 거의 강박에 가깝게 나는 엄마에게 잘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처음 엄마가 나를 도와주러 왔을 때는 진짜 축제 분위기였다. 나는 돈 아까운 줄 모르고 고급 음식 재료를 사다 날랐고, 엄마는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 근사한 밥상을 차려냈다. 평일에도 마트든, 가까운 유원지든 엄마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잠깐씩 콧바람을 쐬러 나갔다. 엄마도 새로이 펼쳐진 삶에 흥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일주일, 한 달, 시간이 갈수록 안 보였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 집에 돌아가겠다는 규칙을 어겼다. 엄마에게는 차가 없으니까, 기차역까지 택시를 타고 나갔다가, 다시 기차를 탔다가, 내려서 다시 버스나 택시로 갈아타야 하는, 한 시간이 넘는 이동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엄마가 있는 주말과 퇴근 후의 시간이 점점 불편해졌다. 남편도 그런 것 같았다. 아무리 무던한 남편이라지만 남편은 장모를 어려워했고, 엄마는 도와주는 입장이면서도 사위 눈치를 봤다.
엄마는 점점 더 지쳐갔다. 아이들과 온종일 집에만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엄마에게 기동력이 없다는 것,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하다는 것, 감염병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갈만한 곳이 없다는 것 등의 이유가 상황을 더욱 나빠지게 했다. 환갑을 넘긴 할머니가 제한된 공간에서 에너지 넘치는 손주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아이들은 내가 없는 낮시간에 텔레비전을 많이 보는 것 같았다. 어린이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엄마가 좋아하는 드라마와 예능까지 아이들은 줄줄이 꿰고 있었다. 아이들은 내가 퇴근하면 온종일 나만을 기다린 것처럼 반색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엄마에게 뭔가 서운했다.
급기야 엄마는 언젠가부터 우리 부부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욕구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밥을 차려주고는 방으로 후딱 들어가 버렸다. 그러고는 시위라도 하는 것처럼 방에 들여놓은 텔레비전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점점 뚱뚱해졌고,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다는 말을 달고 지냈다.
제일 견디기 어려웠던 건 엄마가 자꾸만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거였다. 아이들은 공포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잠자기 전에 살포시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할머니가 무섭다고.
나는 지친 엄마에게 화가 났다. 아니 그런 상황을 만든 나 자신에게, 아니 내가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에게. 그래봐야 나는 공공기관의 계약직이었고,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교육청에서 교육사가 주는 서류를 정리하고 은행에 다녀오고, 주변 학교 행정실에 다녀오고, 말 그대로 그들이 시키는 일만 하면 되는 잡부였다. 교육청에서 시청으로, 시청에서 경찰청으로, 필요에 따라 이동이 가능하다고 했다. 거의 십 년 동안 전업주부로 지내다가 무려 8대 1의 경쟁을 뚫고 차지한 일자리가 겨우 그랬다.
사 년제 대학을 나오고 호주에서도 잠깐 살다가 온 이력이 무색하게도 나는 끝내 전문 직업을 갖지 못했다. 영어 학원 강사를 하다가 결혼하고, 두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는 남편처럼 아침 아홉 시부터 여섯 시까지 일하는 일반 직장을 꿈꿀 수 없었다. 그나마 아침마다 예쁘게 차려입고 갈 곳이 있다는 것, 4시까지만 일하면 4인 가족의 식비 정도는 벌 수 있다는 것, 일이 비루한 만큼 크게 책임질 일이 없다는 것 등에서 나는 의미를 찾고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당장 엄마의 손길이 아쉬웠다.
엄마를 그렇게 보내고, 나는 어지러운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실내 놀이터에 갔다. 놀이터에 들어가서야 아이들은 나 혼자 조용히 커피 마실 시간을 줬다. 몸이 편해지니까 마음이 절로 너그러워졌다.
‘엄마, 미안해. 명예 회복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제 맛있는 점심도 사드리고, 꽃도 사드리고, 그러려고 했는데, 서운했지? 원래 사람이 소소한 거에 더 서운한 건데, 제일 가까운 딸이 어버이날 하나 챙기지 못했네. 엄마, 다시 한번 죄송해요. 너무 노여워 말고, 푹 쉬다가 월요일에 봬요.’
나는 냉커피를 홀짝이며 엄마의 답문을 기다렸다. 한 시간 후쯤 전화를 건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민자 아줌마였다.
“은정이니? 아줌마야. 엄마가 하도 서운하다고 해서 전화했다. 엄마는 잘 오셨어. 답답했는지 오자마자 가게로 오셨더라.”
나는 상냥하게 전화를 받았지만, 속으로는 엄청난 짜증이 일었다. ‘무슨 권리로 내게 이러는 거지? 아직도 내가 아이로 보이나? 당신들이 뭔데? 내 복잡한 마음을 당신들이 알기나 해?’라는 말들이 짧은 시간 내 안에서 아우성쳤다.
“은정이는 아줌마가 믿어,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알아서 척척 엄마 비위 맞춰가며 잘하는 애가 오죽 바빴으면 그랬겠냐고, 내가 되레 엄마한테 뭐라 그랬어.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은정이 네가 신경 쓸 게 한두 가지니? 원래 나이 들수록 서운한 것만 많아지는 거야. 마음도 몸도 약해지니까. 은정아,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다음에 엄마 마음 풀어드려라, 응?”
이마를 짚고 이야기를 듣던 나는 “네, 알겠습니다.”라고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에너지를 다 소진했을 즈음에는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는 잔뜩 흥분한 목소리였다.
“내가 정말, 이런 말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어버이날이라고 해서 내가 꼭 대접을 받겠다는 게 아니야. 어쩜 그렇게 두 부부가 똑같이 무심할 수가 있나, 혼자 아무리 생각해도 잠이 안 오는 거야. 사위도 나를 무시하는 건가…….”
엄마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카네이션 한 송이면 돼, 많은 걸 바라지도 않아, 그거 하나 마련할 정신이 없니? 네 신랑도 그래, 너는 약속이 있다고 안 오고, 네 신랑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어버이날 그래도 장모가 와 있는데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없고……내가 정말……놀이터에서 애들 종일 보면서, 꽃바구니 배달 오토바이가 왔다 갔다 하는 거 구경하면서, 혹시나 저게 내 건가, 쳐다보는 나 자신이 한심해서…….”
전화상으로도 엄마의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내 눈앞의 풍경이 무너져 내렸다.
“엄마, 미안해, 내가 만회할 시간이 있을 줄 알았어. 애들 아빠도 어제 나한테 점심 맛있는 거 사드리라고 돈도 보냈는데, 내가 바빠서 못 챙긴 거야. 어제 갑자기 약속이 잡히는 바람에 내가 점심 한 끼 못 사드렸다는 걸 그 사람은 몰라. 내가 알아서 한 줄 알고 아무 말 안 했나 봐. 엄마, 미안해.”
반은 진실이었고 반은 거짓이었다.
“아니, 딸이 셋이나 있으면 뭐 하니? 내가 신세 한탄을 하는 거야, 지금. 너한테 이러는 게 아닌 걸 알면서도 그동안 헛살았나 싶고, 그랬어. 서운한 것도 없어. 너희들이 다 바빠서 그러는 거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그냥 마음이 안 좋았어. 네 언니도 연락 한 번이 없고……몸도 안 좋고……내가 너한테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그냥 들어.”
살면서 엄마가 나에게 서운하다고 말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언제나 나는 엄마의 자랑스러운 딸이었고, 가족 중에 그나마 엄마와 가장 통하는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엄마의 진심에 나는 가슴이 아팠지만, 어느 대목에서는 예의 없이 막 대꾸하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다.
엄마와 전화를 끊고 나는 바로 민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버이날을 챙기지 못한 데 대한 변명도 좀 하고 싶었고, 엄마에게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자식으로서 제 어미에게 서운한 마음이 없지 않은, 감정의 공동체로서 말이다. 내가 운을 떼자 민정이 말했다.
“그러게, 언니, 내가 심지어 어버이날 선물을 팔기도 하는데, 그걸 꼭 사달라는 게 아니라, 옆에서 못 챙겼다니 나도 속이 상하네……우리 아이들한테도 가르쳐야 할 것 같아. 특별한 기념일에는 기념일답게 서로 챙겨주는 문화 같은 거, 엄마 진짜 서운했겠다.”
나는 그때 민정에게‘너는? 너는 그래서 뭘 했는데?’라고 묻고 싶은 걸 또 꾹 참았다.
민정은 그때 얘기를 하는 거였다. 그것도 엄마가 있는 앞에서.
“내가 그때 엄마 전화받고 얼마나 서운하던지.”
심지어 그날 두 사람은 내 험담까지 나눈 거다. 엄마와 남편과 제부가 있는 앞에서 나는 다시 한번 대역 죄인이 되었다. 나는 또다시 화가 치밀었지만, 시차를 두고 생각하면 충분히 반성할 만한 이야기였다.
“그래, 그건 인정, 엄마 다시 한번 미안해.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서로를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니야, 엄마도 괜히 그랬어. 너희들 사정 뻔한데, 나이 들어서 주책이다, 엄마가.”
“아니야, 내가 경솔했어, 나도 겉으로는 밝고 상냥한 편이니까, 사람 좋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데, 가끔 내가 막 정신이 없고, 세심하지 못해서 가까운 사람들을 서운하게 할 때가 있는 것 같아.”
나는 불과 며칠 전에도 친구로부터 서운하다는 말을 들었던 걸 상기했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가족 동반 여행을 계획했다가 취소하면서였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구심점 역할을 하는 내가, 여행 장소를 물색하고 기꺼이 돈도 걷으며 추진했던 거였다. 친구들과도 오랜만의 만남이라 나는 들떠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여행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한 친구가 감염병을 걱정하며 여행을 취소하고 싶다고 말했고, 한두 명이 여행을 미루자는데 동조했다. 단체 문자를 보는 순간 내가 어렵게 시간을 내어 추진한 모든 것들이 헛수고처럼 느껴졌다.
나는 곧바로 여행을 취소했다. 화가 났기 때문에 친구들에게는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았고, 거침없이 돈도 바로 환급해 주었다. 감염병 사태가 하루 이틀이 된 문제도 아니었고 겨우 일 년에 한 번 모일까 말까 한 모임이었다. 내 딴에는 감염병 사태에 발목이 잡힌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벼르고 별렀던 것이다.
친구는 아무런 상의 없이 바로 일 처리를 해버린 내게 서운하다고 했다. 그것도 직접은 아니었고 다른 친구를 통해서 전해 들었다. 기분이 나빴지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선뜻 나서지 않았을 뿐, 그 친구가 바라던 것도 결국 여행 취소였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거꾸로 그들에게 서운하다는 표시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존심이 무척 상했으므로 꾹 참고 말았다.
“그걸 언니도 느껴?”
민정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꾸했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나 지난번에 강원도로 가족 여행 갔을 때 언니 때문에 울었잖아.”
“어?”
내가 대답했고,
“그래, 여기서 다 풀어라.”
엄마는 또 말했다. 도대체가 끝이 없었다.
“그때 언니가 무슨 이유였는지, 나한테 막 화를 냈잖아. 애들 챙기면서 여유가 없었는지, 갑자기 짜증을 막 냈는데, 내가 너무 황당해서, 애들도 있고 말하기가 그래서 그냥 넘어갔는데, 너무 서운하더라고, 이 사람한테 창피하기도 하고.”
민정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었지? 난 기억이 안 나.”
“그것 봐, 언니는 기억도 못 하잖아. 나도 한참 전이라 상황이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아마 언니가 애들 챙기는 중에 아무 생각 없이 나한테 한 말이었을 거야. 언니는 가끔 보면 애들밖에 눈에 안 보이는 것처럼 행동할 때가 있더라. 그래서 남들도 다 애 낳으면 저렇게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언니는 생판 남들한테는 되게 잘하는 것 같은데, 가까운 사람한테는 함부로 할 때가 있는 것 같아. 예전부터 그런 걸 느꼈어. 봐봐, 아까도 나한테 언니가 그랬잖아. 너는 애를 안 낳아봐서 모를 거라고, 언니는 애를 낳았으니까 모두 다 언니 중심으로, 아이 중심으로 상황이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언니 보면서 안 좋은 말인 거 알지만, ‘맘충’이라는 말이 만들어졌나?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어. 언니는 자기 전에 항상 생각해. 오늘은 누구한테 또 상처를 줬는지 복기해야 할 성격인 것 같아.”
민정은 휴지로 눈물을 찍으며 긴 이야기를 끝냈다. 나도 적절한 장단에 뭔가를 대꾸하고 싶었지만 우선 울고 있는 민정을 달래줘야 했다. 그리고 그날은 엄마의 생일이었다.
나는 신혼인 민정 부부의 특수한 상황과, 뭘 해도 불만이 많은 엄마를 챙기며 멀리 강원도까지 갔던 그 여행을 찬찬히 복기했다. 자세한 건 기억에 없었지만 어쨌든, 그때 나는 무언가에 짜증이 나 있었고 가족끼리의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는 말을 새삼 경험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누구한테 상처만을 주는 사람인지는 변명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민정아, 미안해. 상처를 주려고 한 건 아닌데, 어쨌든 상처를 받았다면 내가 뭘 잘못한 거겠지. 사과할게.”
“사과 들으려고 한 말은 아니야. 그냥 언니가 먼저 언니 성격을 얘기하니까, 언니를 아끼니까 앞으로 비슷한 실수를 할까 봐 얘기한 거야.”
“그래, 여기서 다 풀어라. 애를 낳고 살다 보면 여자들이 항상 정신이 없어. 내가 그건 알지. 애들 챙기면서 일하러 나가는 것 보면, 진짜 내가 여기 없으면 어쩌나 싶다니까? 나중에 너도 알게 될 거야. 언니가 일부러 그러니? 그러니까 서로들 이해하고 살면 돼.”
잠잠하던 엄마가 중재에 나섰다. 갑자기 나는 진심을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민정이 네 말대로 사람들한테 별로 관심이 없어. 사실 하루하루 내 고민하며 살기에도 벅차다고 해야 하나? 어딜 가나 사람들을 대하는 내 태도가 상냥한 편인데, 그게 끝이야, 내 딴엔 최선을 다해 공감해 주는 척을 하는 거지. 공감을 진심으로 하는 건 아니야. 근데 그 공감의 깊이 때문에 상대방이 상처받는다면 어쩔 수 없잖아? 안타깝지만 그것까지 나는 생각할 여력이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 그냥 그게 나야.”
나는 이렇게 말하면서 엄마가 신경 쓰였다. 결국 어버이날에 엄마의 서운함 따위는 사실 안중에도 없었다는 말, 엄마에게 또다시 상처가 되는 말이었다.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말이네요. 나이가 들면서 점점 저도 그렇게 변해온 듯해요.”
지금까지 남의 집 손님으로서 조용히 자리만 지키던 제부가 동조했다.
“사실 민정 씨는 사람들한테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것 같아요. 남들이 다 민정 씨 같지 않은데, 사람들을 쉽게 믿고, 관계 맺기에 너무 최선을 다한다고 해야 하나? 기대치가 크니까 그만큼 실망감도 크고, 기대를 저버리는 사람들과 절교도 자주 하는 편이에요.”
제부는 민정의 눈치를 보며 말하다가 웃었다. 눈물이 가득한 민정이 주먹으로 제부의 등을 때리며 마주 웃었다.
“그래, 맞아. 민정이 너는 그런 것 같아.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깊이 교감을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게 안 되면 자주 싸우잖아. 나도 그것 때문에 몇 번 네 고민 상담을 들어준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나는 네가 가끔 그런 고민을 털어놓을 때도 최선을 다해 듣는 척을 했다고 할까? 그냥 들어주는 게 답이니까. 심지어 다른 생각을 하면서 듣기도 해. 나의 그런 태도 때문에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게 된다면 그것도 할 수 없고. 어떻게 모든 사람한테 좋은 사람일 수가 있어? 나는 내게 소중한 사람 몇 명한테만 이해받으면 되는 것 같아. 더 솔직히 말하면,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 편이야.”
“듣는 게 아니라 듣는 척을 했던 거라고? 진짜 충격적이다. 그래도 우린 가족이잖아, 남이 아니고. 소중한 사람 몇 명 안에 우리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말이야?”
“그건 또 그러네. 미안.”
“그래, 언니는 아쉬운 게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가끔 언니와 있다 보면 약간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언니의 그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과 말투, 그러면서도 내가 언니 집에 자주 들락거리고, 힘든 일이 있을 때 또 언니를 찾게 되는 게 참 아이러니한데, 가끔 언니를 찾아왔다가 돌아가는 날,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든다고 해야 할까? 모르겠어. 어쨌든 나는 모든 관계에는 정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해할 수 없어도, 공감할 수 없어도, 태도, 결국 태도의 문제인 것 같아.”
그날 밤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자꾸만 ‘정성’이라는 말이 신경 쓰였다. 가족 모임을 위해 이렇게 공을 들이고 결국은 ‘정성스럽지 않은 사람’이라는 얘기를 듣다니. 나는 어서 빨리 아침이 되어 모두가 자기 집으로 가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면서도 자꾸만 나에게 서운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운하다고 말한다는 건 아직 나에게 기대할 게 있다는 뜻일까?
나는 휴대전화 속 고등학교 친구 모임 문자창을 열었다.
‘은영아, 늦은 밤에 생각나서 남겨. 지숙이한테 들었어. 이번 여행 계획하면서 내가 세심하지 못했네. 다 같이 보고 싶었는데, 묻지도 않고 성급하게 환급하고 통보하고, 미안해, 많이 서운했지? 나이 들수록 마음은 그게 아닌데 자꾸만 바쁘다는 핑계로 대충 넘어가고, 금방 잊어버리고. 미안 내가 경솔했어. 내가 사랑하는 마음 알지? 잘 자.’
나는 읽음 표시가 사라질 때까지 내가 보낸 문자를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내가 쓴 긴 글의 순수성을 오래도록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