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향연속나비 Oct 06. 2016

아, 글로벌하다. 정말.

여행 준비 Episode


해외여행을 준비하다 보면 욕심이라는 게 생기지 않는가.

짧은 시간의 관광 수준이라 할지라도 남들 다 보는 중요한 곳을 넘어서서 현지인이 되어 그 정서를 느껴보고 싶은 그런 욕심.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있다.


관광지가 아닌 동네에서 골목가게를 둘러본다던가, 현지인이 추천하는 맛집에 가본다던가.

개인적으로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그들의 문화가 궁금해 한국에서도 독립영화가 아니면 잘 시도하지 않는 혼자 흥행작을 보러 영화관을 간다던가.


이번에 떠오른 건 현지 친구를 만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모색한 방법이 펜팔.

하이 펜팔이라는 잘 차려진 서비스에 바로 달려가 몇 명을 선정해 메일을 남겨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리고 왔다!



답장!


그의 이름은 Mike!

Line으로 대화를 나누며 처음 만난 사람을 알아가는일은 쉽지 않지만 어색한 시간들을 감당해내며 서로에 대한 소개와 이런저런 정보들을 탐색하였다.

준비하고 있는 여행지의 문화가 어떤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이기에 정중함과 특기인 영어단어 철자 틀리기를 반복해가며 잠들기 직전 침대에서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점차 늘려갔다.

운동을 하러 간다는 Mike 답장 속도가 빨라졌고 운동이 끝났냐는 질문과 함께 집에 가는중이냐는 질문을 건넸다. Mike는 이미 집이고 먹는 중이라는 답과 함께 인증샷을 보냈다.


Mike가 보내준 야식 인증샷


신문지를 깔고 하얀 쌀밥에 계란과 슬라이스 치즈가 두장이나 들어간 라면.


사진을 보고 역시 쌀을 먹는 나라구나.

'그래, 망고에 연유+찹쌀이 함께한 간식이 그렇게 맛있다던데.

베트남에 갔을 때도 대만에 갔을 때도 라면을 참 맛있게 먹었는데 이 나라도 역시 라면이 맛있구나. 꼭 먹어봐야지'라는 생각과 함께 훌륭한 선택임을 표현하고 싶은데 라면이라는 음식을 뭐라 부르는지를 도저히 모르겠는 거다.


머리를 굴리고 굴려 'wow! noodle?! it's my cup of tea!'라 답했고 'Yes Cheese ramyeon' 이란 답이 돌아왔다.

"한국음식 같아 보여"라고 표현한 후 사진을 다시 한번 확인했는데


.

.

.

응?

.

.

.




너무 당혹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한국어로

"잠깐 신문도 한국인데?"라 말하니

"웅"

"ㅋㅋㅋ"

라는 한국어가 돌아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눈이 감기던 침대에서 일어나 단어 그대로 미친 듯이 웃느라 잠이 다 깨버렸다.



Mike는 교환학생으로 1년을 부산에서 보냈으며 한국 나이 31, 태국 나이 30, 86년생.

태국에도 오빠 동생의 개념이 있다며

"근데 나랑 말할 때 반말해도 돼"라며 배려 넘치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짱이다'

'웅 잇어'

라며 흔히 귀찮아 쌍받침을 가볍게 쓰는 한국인들의 정서까지 구사해내는 이 상황을 보며 뭐랄까.

이건 뭐 욱하는 마음에 '해외 나가서 살 거야'라는 철없는 발언과 함께 짐을 챙겨 나가버려도 외국인들이 모두 한국어로 반겨줄 것 같은 기분이랄까.







해외여행의 의미는 내가 지니지 못한 그들의 색채 안에 빠지기 위함이지


라고 외치던 모토가 누군가 뒤통수를 치며 "환상이야. 정신 차려!"라고 얘기하는 기분.




아, 글로벌하다. 정말




덕분에 항상 들었던 외국에 대한 두려움과 혼자 여행이라는 불안함이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으로 바뀔 수 있었다.


아침, 출근길. 집 앞 고양이들을 보며니 괜시리 웃음이 나더라.


 오늘 아침엔 오빠라는 의미의 '피'를 붙여 당당히 한국어로 인사했다.




"피 마이크, 좋은 아침이야. 굿모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