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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런던일상: 사우스켄싱턴에서 스콘과 함께한 하루

by Daria



먼 동이 터오는 이른 아침, 커피 한 잔과 함께 런던에서의 열네번째 하루를 시작한다. 벌써 2주나 흘러갔다니, 하루하루 지나면 지날수록 남은 날들이 줄어드는 것 같아 무척 아쉽기만 하다.




오늘은 설날을 기념하며 떡국을 먹었다. 머나먼 타국에 있어도 우리나라의 대표 명절은 그냥 흘려보낼 수 없지! 하지만 스톡을 넣어 만든 이 떡국을 먹다 보니, 진하게 우려낸 고깃국에 쇠고기와 만두를 잔뜩 넣고 끓인 우리 엄마표 떡국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오늘은 친구가 추천해 준 스콘 맛집이 있는 South Kensington(사우스 켄싱턴)에 가는 날! 런던에 온 이래로 처음 선글라스를 끼고 외출한다. 하지만 이 선글라스엔 곧 슬픈 사연이 생길 예정이다....




런던의 대중교통 비용은 한국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편이다. 나의 거주지에서 오늘의 목적지까지 가는 경우, 버스를 한 번 탄다고 가정했을 때 (현재 환율 기준) 왕복 6,400원쯤이며, 지하철을 탄다면 왕복 11,000원, 만약 도보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버스와 지하철을 중복으로 이용할 시 왕복 17,000원 정도를 지불해야 한다. 그래도 South Kensington 지역은 집에서 가까운 편이라 이 정도이고 이보다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금액은 훨씬 높아진다. 만약 공항까지 갈 경우에는 One way 버스비만 40,000원이 넘는다. 현실이 이러한지라 보통은 교통비에 대한 부담감으로 인해 도보로 편도 한시간까지는 그냥 걸어 다니지만 오늘은 왠지 버스가 타고 싶어져 오랜만에 이층 버스의 낭만을 즐겨 보았다.




Holland St. 정거장에서 내려 'The Muffin Man' Tea Shop까지 걸어간다. 가는 길에 거리 곳곳을 둘러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특히나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런던 파리바게트'! 한국의 파리바게트가 런던에도 있다니. 파리바게트가 해외로 진출했다는 것은 진즉에 알고 있긴 했는데 실제로 마주하니 제법 신기하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어 드디어 'The Muffin Man'을 만났다. 생각보다 낡고 오래된 듯 보이는 조용한 가게였다. 가게 안에 흐르는 음악이 없어서 그런지 손님들도 대개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모습이었다.




진열장 안에 먹어보고 싶은 케이크들이 매우 많았지만 스콘 맛집이라고 추천받아 온 곳이므로 유혹을 이겨내고 크림티세트를 주문했다.




메뉴판은 이러하며 매장 안의 분위기는 화려하지 않고 제법 오래된 느낌이 물씬 풍겼다. 사진을 그럴듯하게 찍어서 그렇지 실제로 보면 휑하고 낡은 느낌이 선명한 내부이다.




크림티 세트를 주문하니 Toasted Scone 네 조각과 클로티드크림, 라즈베리잼이 차와 함께 제공되었다. 스콘을 토스트하다니 확실히 다른 찻집들과는 차별화를 꾀하긴 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빈티지한 인테리어만큼이나 빈티지한 식기를 사용한다는 것인데, 접시는 누가 봐도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큰 크기로 이곳저곳 이가 나가 있었고 흰색의 다구들은 회색에 가깝게 빛이 바랬다.




토스트한 스콘은 강한 열로 지지는 과정에서 수분을 잃었는지 퍽퍽하고 단단했으며 반죽의 맛 또한 몹시 심심한 데다가 밀가루 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클로티드크림과 쨈은 맛있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스콘은 기대한 것에 비해 실망스러운 맛이었다. 다행히 차는 아주 맛있었다. 직원들은 매우 친절했지만 전반적으로 손님들보다는 직원들 서로에게 더 많은 관심과 집중을 두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필요한 것이 있어서 그들과 눈을 마주치려고 시도하면 그들은 동료 직원과 즐겁게 이야기 나누는데 여념이 없어 한참이 지나고서야 나를 인지하곤 했다. 그래도 이에는 나름의 단점과 장점이 있었는데, 그들은 내가 다 먹어치운 후에도 접시를 가져가거나 혹은 더 필요한 것이 있느냐고 묻지 않아 덕분에 편한 마음으로 머무르며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아, 한국과 아주 다른 런던의 특징을 잠깐 짚고 넘어가 보자면, 그들은 손님이 아직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이 분명하게 없어 보이더라도 일단 접시를 비운 것 같으면 이를 치워 버린다. 그리고 식사 중에도 자주 찾아와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 식사는 잘하고 있는지 등을 물어본다. 그런데 이곳 The Muffin Man은 그렇지 않아서 덕분에 꽤 편히 머물렀다.



가게 안의 공기가 너무 썰렁하여 책 읽기를 그만두고 밖으로 나와 걸었다. 쓰고 나왔던 선글라스는 외투 앞 주머니에 꽂은 채로 사우스켄싱턴 일대를 걸어 다니며 필요한 물품들을 샀다.




불현듯 인근에 또 다른 스콘 가게를 추천받아놓은 것이 떠올라 그곳으로 향했다. 이 동네는 골목골목마다 거리가 참 예뻐서 걷는 재미가 있다.




오늘의 두 번째 스콘 가게는 바로 'Cheeky Scone'! 이곳은 다양한 종류의 스콘을 판매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나는 전부터 마음속으로 점찍어뒀던 Lemon and Poppy Scone을 구매해서 곧장 밖으로 나왔다.




원래는 더 다양한 종류의 스콘들이 있는데 내가 방문한 시간대에는 대부분의 스콘들이 다 팔리고 보이지 않았다.




포장한 스콘을 들고 내가 좋아하는 공원 'Kensington Gardens'로 향한다. 오늘은 날이 꽤 흐리고 쌀쌀하여 아쉽기는 하지만 런던에서 지내는 동안 나름 강인해진 육체로 이 정도면 스콘 피크닉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새들 무리와는 떨어진 채 들판 위에 혼자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니고 있는 새까만 까마귀가 너무 귀엽다.




켄싱턴가든스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Round Pond를 향해 걸어간다. 연못가의 벤치에 앉아서 여유롭게 백조를 구경하며 스콘을 먹을 생각이었다.


반려견의 목줄을 잘 잡고 다니라는 표지판이 인상적이다. 나도 어릴 때부터 강아지와 한 집에서 자라왔지만 길가다 심심찮게 보이는 다른 견주들의 비매너 행동은 참 이해하기 어렵다.



연못에는 흰 백조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오리들이 한가로이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이들은 수영을 하기도 하고 이따금씩 물속에 머리를 처박는가 하면 또 연못 밖으로 나와 걸어 다니기도 하며 저들만의 한가로운 시간을 즐겼다.




하지만 이들의 한가로운 시간에는 간식 시간도 포함이 되어있는 모양이다. 연못가의 사람들로부터 음식을 얻어먹겠다고 (특히 비둘기들!) 기웃거리는 통에 나는 도저히 스콘을 먹을 수가 없었다. 내 스콘을 호시탐탐 노리는 수많은 새들로 인해 결국 나는 연못가를 떠나 멀리 떨어진 벤치로 피신해야만 했다.




꺾어진 벽 뒤에서 한 쌍의 연인이 열심히 입맞춤을 하며 서로를 탐하는 가운데 나는 홀로 벤치에 앉아 주섬주섬 다시금 스콘 상을 차렸다.




다행히 스콘만 덜렁 주는 것이 아니라 클로티드크림과 쨈도 함께 제공된다. 클로티드크림은 몹시 부드럽고 깔끔하니 좋았으며 쨈도 맛있었다. 하지만 내가 구입한 레몬포피 스콘은 퍽퍽하고 그다지 특별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Lemon과 Poppy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으레 기대할 법한 맛은 나지 않아서 좀 아쉬웠다.



스콘을 먹고 책을 조금 읽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공원을 빠져나가는 길에 우연히 본, 동물들과 노는 어린 소녀의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더불어 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엄마 아빠의 모습까지도.




원래는 V&A Museum에 갈 참이었기에 그곳의 화장실을 쓸 요량이었으나 피크닉을 즐기는 동안 참았던 화장실이 급해진 바람에 하는 수 없이 (공연을 볼 건 아니지만) Royal Albert Hall 건물에 들어갔다. 우연히 들어간 공연장이었는데 매우 예뻐서 공연을 보러 한 번 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2월 동안에는 서커스 일정만 있는 모양이다. 서커스에는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는데 말이지.


아, 그리고 이곳 화장실에서 깨달은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바로 선글라스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오늘 쓰고 나간 선글라스는 작고 가느다란 선글라스인데 코트의 가슴 앞 주머니 깊이가 깊어 보통 선글라스를 꽂아두면 절대 빠지지 않으므로 누군가 물리적으로 빼간 것이 분명하다. 아까 Muffin Man에서 스콘을 먹고 나오면서 선글라스를 코트 앞 주머니에 꽂아두었고 그 상태로 Boots를 비롯한 번화가를 돌아다녔으니 아마도 그때 누군가에 의해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 뭐... 그 선글라스와 나의 인연은 여기까지인가보다.




V&A Museum에서 아름다운 조각상들에 둘러싸인 채 작은 분수대에 앉아 책을 읽었다.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한 가운데에 있으니 감수성도 더욱 풍부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무래도 V&A 박물관은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곳인 듯하다.



https://brunch.co.kr/@myhugday/107

(↑ V&A 미술관에 갔던 지난 6일차 이야기)




집으로 돌아와 빵에 오렌지잼을 발라 키위, 커피와 함께 먹고는 수다를 떨며 조금 쉬다가 운동 갈 채비를 하고 일어섰다.




헬스장 가는 길에 항상 지나치는 Big Ben (빅벤)! 오늘도 늠름하고 영롱하게 우뚝 서 있다.




날이 가면 갈수록 헬스의 맛을 느끼고 있다.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필라테스를 하게 될 텐데 헬스장이 많이 그리울 것 같다. 흠.. 필라테스와 헬스를 병행해야 하나? 괜찮은 생각인데?


오늘따라 근육에 자극이 팍팍 잘 온다.



오늘도 하루종일 잘 먹고 잘 돌아다녔다. 눈 깜짝할 새 2주가 지나버렸다니, 시간은 어찌 이리도 빠르게만 흘러가는 것일까. 하루하루 지날수록 점차 죽음의 순간과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져 가는 듯하여 매 순간이 아쉽고 귀하기 그지없다. 내게 주어지는 매 하루들에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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