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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런던일상 - 축구 보러 펍, 해리포터굿즈 쇼핑

by Daria




오늘의 아침 식사는 비빔밥, 소고기 뭇국이다. 다양한 종류의 여러 가지 나물이 들어가진 않았지만 얼추 구색은 갖추어져 아주 맛있었다. 게다가 붉은색 주요리와 잘 어울리는 맑은 국물 요리! 환상적인 아침 식사였다.




간식으로 서양배를 꺼냈는데 어째 생긴 게 조금 그렇다. 후숙이 적당히 잘 되어 맛은 아주 괜찮았다. 달콤하고 아삭한 우리나라의 배와 달리 서양배는 조금 더 시고 떫은맛이 있으며 식감 또한 무른 편이라 보통 생으로 먹기보다는 요리용으로 쓰이는 편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난 생으로 먹어도 충분히 맛있는 것 같다.




부지런히 오전 일과를 마친 후 점심으로 치즈와 꿀을 듬뿍 얹은 내 사랑 치즈 브레드를 먹었다. 쿰쿰한 고르곤졸라 치즈와 달콤한 꿀의 조화는 역시 최고다. 빵 위에 치즈와 꿀을 올리고 데우기만 하면 되어서 만들기는 아주 간편한데 맛은 뛰어나서 정말이지 그 중독성이 어마어마하다.




런던에 오기 전에 구매해서 사용해 왔던 유심의 사용기간이 만료되어 새로운 SIM이 필요하여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는 통신사 매장을 방문했다. (지도 앱을 이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없다 보니) 헤매고 헤매다 겨우 찾아왔는데 단기용 SIM 카드 금액대가 생각보다 터무니없이 높았다. 적당히 비싸면 그냥 샀을 텐데 수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싸서 도로 나왔다.




그 길로 쭉 빠져나와 소호로 온 나는 지나가다 에그타르트 가게를 보고 홀린 듯 들어갔다. 진짜 필요한 유심을 사는 데 쓰는 돈은 아깝지만 배 고프지도 않으면서 에그타르트 따위를 사 먹는데 쓰는 돈은 별로 아깝다고 느끼지 않는 먹보 같은 나 자신이 조금 웃기다.




에그타르트 전문점이었지만 커스터드 필링이 들어간 도넛도 판매하고 있었다. 둘 다 먹어보고 싶었지만 오늘은 가볍게 에그타르트만 먹어보기로 했다. 에그타르트를 먹어보고 맛이 있으면 다음에 도넛도 사 먹어야지.




Santa Nata는 바삭바삭한 결이 살아있는 페이스트리 크러스트의 포르투갈식 에그타르트를 판매한다. 난 포르투갈식, 홍콩식 모두 다 좋아하는지라 이 집 에그타르트 또한 아주 맛있게 먹었다. 사실 처음 입에 넣었을 때는 필링이 물컹하고 너무 달다고 느껴졌는데 먹다 보니 혀가 적응했는지 이내 곧 맛있었다.




사자마자 그 자리에서 곧바로 에그타르트를 순식간에 먹어 치우고는 헬스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토트넘과 맨체스터의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라 경기 시간에 맞춰 친구와 함께 저녁때 펍에 가기로 약속한 날인데, 펍에 갔다 오면 운동 가기 어려울 것 같아 그전에 미리 운동을 다녀오기로 했다.

화장실에 갔는데 문에 쓰인 문구가 재미있어서 찍어 봤다. "Every Squat Counts"




오늘 갈 펍은 전부터 지나가면서 항상 궁금했던 'Silver Cross'라는 곳이다. 규모도 좀 큰 편이고 분위기도 비교적 점잖아 보여서 내향적인 여자 단 둘이서 가기에 다른 왁자지껄한 스포츠펍보다는 더 괜찮아 보였다.




사실 우리가 펍을 조금 잘못 선택했는데, 이곳은 방문자들 대개가 축구 경기에 관심이 없어서 우리 역시 도무지 흥이 나기 힘든 분위기였다.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경기는 송출되고 있었지만 다들 화면 쪽에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음식을 먹으며 점잖게 대화만 나눌 뿐이었다. 지하 공간에서 젊은 남성들 몇 명이 모여 다소 신나게 경기를 즐기고 있기는 했지만 거기엔 별로 끼고 싶지 않았다. 때마침 친구와 나도 축구에 별 관심이 없던 터라 그냥 술과 안주를 즐기며 대화나 하기로 했다. 술은 늘 주문하던 대로 기네스 흑맥주, 안주로는 피시앤칩스를 주문했다. 영국에서 마시는 기네스 흑맥주는 두 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맛있고, 피시앤칩스 역시 맛있어서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부드러운 생선살을 감싸고 있는 바삭한 튀김옷과 식감 좋은 감자튀김, 거기에 고열량의 소스까지!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친구가 가족들에게 줄 영국 여행 기념품을 사야 한다고 해서 펍을 나와 함께 소호 거리를 돌아다녔다. 방문한 여러 상점들 중 해리포터 굿즈 상점도 있었는데, 나 역시 이곳에 전부터 눈독을 들이던 제품들이 몇 개 있던 참이라 친구와 함께 신나게 구경했다.




파란색의 티컵&소서 세트, 그리고 검은색의 머그컵 둘 중에 매우 고민하다가 조금 더 활용도가 높고 한국까지 무사히 옮기기에도 더 용이할 것 같은 머그를 골랐다. 게다가 검은색의 두꺼운 소재에 음각으로 금박 장식이 되어 있어 내구성도 좋아 보였고, 무엇보다 예뻤다! 스웨트셔츠와 목도리도 너무 사고 싶었는데 품질 대비 가격대가 높아서 선뜻 구매하기에 망설여졌다. 좀 더 저렴한 목도리도 있었지만 색깔이나 재질 등이 다소 아쉬워, 돈을 좀 더 아끼겠다고 굳이 그걸 사고 싶지는 않았다. 이러나저러나 어쨌든 다 폴리 재질의 목도리라 보온성이 그리 뛰어나 보이진 않는다. 굿즈는 실용보다는 원래 감성으로, 아니, 욕심으로 사는 거다. 이걸 사서 소장하면 나한테 배 이상의 행복을 가져다줄 거라고 마치 스스로를 세뇌시키듯 생각하며 사는 것인데, 솔직히 인간의 욕구란 것이 늘 그러하듯 일단 소장하고 나면 그토록 불타오르던 열망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시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리 굿즈일지라도 실용성이 없는, 그저 예쁜(데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이면 사지 않는다. 소장 후 그 물건에 대한 애정은 점차 하강할 것이고, 실용적인 가치마저 없다면 그 물건은 애물단지와 같은 존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서론이 길었는데, 어쨌든 오늘은 심사숙고 끝에 머그 하나만 구매했다. 머그를 사 들고 신이 난 내 모습을 친구가 찍어 주었다. (이 머그잔은 남은 영국생활 동안은 물론이고 현재까지도 아주 유용하게 잘 쓰고 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곧장 새 머그를 개시했다. 잔이 두꺼워서인지 보온력도 좋고, 무엇보다 "예쁘다"! 이거야말로 가격 그 이상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아주 '잘산템'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 초콜릿은 룸메이트에게 부탁해서 공수받은 Dark Sugars의 두바이초콜릿인데, 지난번에 갔다가 너무 맛있었지만 멀어서 재방문은 못하고 있던 Dark Sugars를 오늘 룸메이트가 간다고 하여서 가는 김에 내 것도 사다 달라 부탁한 것이다. 전에 사 먹었던 초콜릿들도 맛있었지만 이 두바이초콜릿 역시 정말 맛있었다. 사실 난 초콜릿이나 사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여기 초콜릿은 앉은자리에서 열개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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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영국 생활 처음으로 펍에서 축구 경기를 보았고(사실 경기에 관심도 없었지만), 귀중한 해리포터 굿즈를 하나 산, 의미 있는 날이었다. 비록 펍을 잘못 골랐고, 경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지도 못했지만, 친구와 함께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영국 생활에서의 좋은 추억거리 하나를 쌓은 것 같아서 내겐 충분히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뿐만 아니라, 예쁜 데다가 실용적이기까지 한 물건을 사서 차 마시는 매 순간순간에 소소한 행복이 한 스푼 더해지게 되었으니 이 역시 매우 의미 있는 소비였다 말할 수 있겠다.


이 모든 경험과 시간들이 그냥 스쳐 지나가는 한 순간순간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아도, 순간의 조각들이 쌓이고 쌓여 마치 내 행복 저금통을 채우는 일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경기가 중계되는 텔레비전 화면을 보거나 펍을 보면 친구와 함께 피시앤칩스를 먹으며 보냈던 즐거운 시간이 떠오르고, 머그잔에 차를 마시면 해리포터에 울고 웃으며 즐거워하던 순간이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도 런던에서 나의 저금통에 행복의 조각들을 차곡차곡 채워 나갈 생각에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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