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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ia Jun 28. 2024

[14] 오늘의 감자는요,

런던여행기_파이브가이즈&프레타망제



떠나기 못내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빠져나온 아름다운 세인트폴 대성당 앞에서 솜사탕처럼 맑고 파란 하늘과 성당 전면을 배경으로 셀카를 한 장 남겼다. 내게 있어 셀카는 왠지 좀 낯간지러운 행위라 잘 찍지 않는 편인데, 그 때문인지 사진 속에 담긴 나의 얼굴이 한없이 어정쩡하고 어색하기만 하다. 이 우스운 사진은 평생 나 혼자서만 봐야겠다.


계단으로 한바탕 전망대를 오르내리고 났더니 몹시 배고프다. 나는 아까 점찍어두었던 햄버거를 먹기 위해 성당 맞은편의 파이브가이즈로 달려갔다. 나의 주문을 받는 직원이 어찌나 친절하던지, 성당 앞이라고 천사들을 고용하여 운영하는 건가 싶은 터무니없는 상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말이 나온 김에 이야기하자면, 런던에 와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들 중 하나는 사람들이 어쩜 모두 다 친절하고 상냥하다는 것이다. 런던에 오래 머무른 것이 아니라 속단하기에는 이르지만 적어도 내가 마주친 사람들은 모두 그러했다. 상점의 직원들은 물론이고 정신없는 출퇴근길의 지하철 역에서 만난 행인들조차도 내게 친절했으니 이 정도면 런던 시민들의 성향은 대체적으로 젠틀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나는 스파이시 감자튀김과 햄버거 세트를 주문했고 (정확히 무슨 메뉴를 주문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케첩과 마요네즈, 그리고 땅콩까지 룰루랄라 야무지게 챙긴 후 때마침 빈 명당에 운 좋게 자리를 잡았다. 탁자와 맞닿은 통유리창 너머로 세인트폴 대성당의 전면을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자리였다.


세인트폴 대성당 앞 파이브가이즈.



이윽고 내가 주문한 메뉴가 나왔는데 햄버거와 감자튀김의 푸짐한 양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특히 감자튀김은 보기와 달리 먹어도 먹어도 영 줄지 않는 것 같은 양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는데, 심지어 맛있기까지 하여서 나중에는 이미 부른 뱃속에도 꾸역꾸역 밀어 넣다시피 했다. 두툼하게 썰린 감자는 대충 씹어봐도 좋은 감자를 썼음을 알 수 있을 만큼 인상적인 식감을 자랑하였고, 마치 속옷처럼 감자에 위화감 없이 착 달라붙은 기름 냄새와 종이봉투 냄새가 감자튀김의 풍미를 더욱 돋워 주었다. 감자튀김을 씹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맞은편 벽에 “Today’s Potatoes Are From : Cheshire. UK Wood Farm”이라고 쓰인 보드가 붙어 있었다. 어쩐지 감자튀김이 맛있다 했더니 이 패스트푸드점은 감자의 출처만 따로 공표해 놓을 만큼 본디 자신들의 감자튀김(정확히 말하자면 그 재료인 감자)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한 가지 단점을 꼽자면, 나는 분명 예의 그 친절한 직원을 통해 스파이시 감자튀김으로 주문을 했으나 내가 받은 것은 전혀 스파이시하지 않은 기본 감자튀김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겨우 감자튀김을 교환하러 가기 위해 짐을 또 바리바리 챙겨서 일어나기란 참으로 성가신 일이고, 이 감자튀김도 짭짤하니 충분히 먹을만하기에 그냥 군말 않고 먹었다.


감자의 나라 영국답게 감자튀김 인심이 남다르다.



겉보기엔 그저 평범해 보이기만 하는 이 햄버거 역시 한 입 베어 물고 나니 좀 전에 감자튀김을 먹었을 때 못지않게 감동적인 맛이 입 안에 확 퍼졌다. 특별할 것 없는 재료들로 구성된 버거인데 왜 이렇게 맛있는 걸까. 역시 시장이 반찬인 건가?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 나는 햄버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고 감자튀김은 더더욱 좋아하지 않지만 이 집 햄버거와 감자튀김은 너무 맛있어서 배가 부른데도 또 시켜 먹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R과의 약속에 늦지 않으려면 슬슬 이동해야만 했고 무엇보다 버로우마켓의 맛있는 음식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당장의 치솟아 오르는 식욕을 꾹꾹 억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햄버거와 감자튀김, 그리고 땅콩. 사진으로 보기엔 평범해 보이는데 막상 먹어보면 양이 많다.



아, 우리 엄마가 햄버거를 정말 좋아하시는데 때마침 파이브가이즈가 작년 여름에 한국에도 입점을 했단다. 이 글을 쓰는, 한국 입점 후 1년이나 지난 지금도 여전히 대기줄이 길다고 하는데 인기가 사그라들고 나면 엄마와 함께 한국 파이브가이즈 햄버거를 꼭 사 먹겠노라 다짐했다. 이제 우리 엄마도 장거리 비행이 슬슬 버겁게 느껴지는 연세를 맞이하셨는데 머나먼 외국의 여러 브랜드들이 한국에도 입점을 하여 굳이 멀리 찾아가지 않아도 많은 것들을 편히 누릴 수 있으니 새삼 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세인트폴대성당에서 버로우마켓까지 도보로 이동하기에 나쁘지 않은 거리라 나는 먹은 것을 소화시킬 겸 걸어갔다. 고풍스러운 건물들, 그리고 마를 일 잘 없는 촉촉한 바닥 위로 노란 나뭇잎들이 얼굴에 붙어버린 젖은 머리카락처럼 우수수 떨어져 있는 풍경을 보며 걷고 있자니 마냥 즐겁기만 했다.


어디를 걸어도 세인트폴 대성당이 보인다.
버로우마켓으로 가는 길에 바라본 이모저모.



혹여나 약속에 늦을까 봐 서둘렀더니 R보다 훨씬 일찍 도착해 버린 나는 마켓 인근의 커피숍 ‘프레타망제’에서 따뜻한 카페라테를 한 잔 시켜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였다. 나와는 조금도 닮은 구석이 없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왠지 모를 해방감과 편안함을 느꼈다. 가상현실 속에 NPC처럼 들어와 있는 듯한 이 기분은 일시적으로나마 당장의 현실적인 고민들로부터 해방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었고 그저 이 순간, 흘러가는 이 시간들, 이 하루를 편안히 즐기도록 안정감이라는 쿠션을 나의 등 뒤에 받쳐주었다. 나는 따뜻한 카페라테의 포근한 우유 거품 속으로 잠시나마 사르르 빨려 들어갔다.


마켓으로 진입하는 터널 바로 앞에 놓인 프랜차이즈 카페 프레타망제에서 따뜻한 카페라떼 한 잔과 함께 R을 기다리던 시간.






*파이브 가이즈 버거즈 앤 프라이즈 (Five Guys Burgers and Fries) : 미국의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 브랜드로, 1986년에 머렐 부부(Jerry and Janie Murrell)에 의해 창업되었다. 햄버거와 감자튀김이 주 메뉴이며, 이곳의 튀김류 음식들은 땅콩기름으로 조리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프레타망제 (Pret a manger) : 1983년에 창업된 영국의 프랜차이즈 카페 브랜드로, 그랩 앤 고(Grab & Go) 방식으로 판매되는 샌드위치 및 여러 가지 음료를 이용할 수 있다. 런던에 굉장히 많은 수의 프레타망제 지점이 있어 아침마다 간단하게 카페인을 충전하기에 용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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