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여행기_버러마켓
R로부터 버로우마켓 코 앞이라는 메시지를 받고 나도 자리를 정리하고 커피숍을 나왔다. 버로우마켓으로 통하는 출입구가 두세 개쯤 되는지 R과 나는 한참 동안 서로를 찾느라 인근을 뱅글뱅글 돌며 헤매야 했다. 마켓을 사방팔방 헤매는 동안 나는 마켓의 전체를 쭉 훑어볼 수 있었는데, 영국의 마켓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매력적이고 알차고 흥미로운 장소였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이 곳곳에 널려 감미로운 향기로 식욕을 자극했고, 다양한 종류와 좋은 품질의 온갖 식료품들 그리고 수제 생활용품들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매욕을 한껏 자극했다. 또한 마켓의 분위기는 매우 활기차고 유쾌했으며 상인들은 하나같이 모두들 친절했고, 결코 호객행위 따위로 방문객들을 불편하게 하는 일은 없었다. 더군다나 내가 런던을 방문한 12월은 어느 곳이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씬 풍기던 때였으므로 런던의 3대 마켓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 버로우마켓의 분위기가 얼마나 밝고 따스했을지는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나는 이 ‘마켓’이라는 공간과 함께하는 런더너들의 일상이 새삼 매우 부러워졌고, 나도 이곳에서 빵과 치즈, 그리고 과일을 사다가 나의 아침 식탁을 꾸리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적으로 재회한 R과 나는 만나자마자 무얼 먹을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의논하였고 결국 우리는 빠에야를 선택했다. 사실 나는 빠에야를 아주 좋아하는데 한국에서는 이상하게도 빠에야를 맛있게 먹은 적이 극히 드물어서 맛있는 빠에야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샛노란 빠에야가 노릇노릇 볶아지고 있는 커다란 무쇠팬을 보자마자 나의 미식 데이터를 토대로 한 직감이 저 빠에야는 틀림없이 맛있을 거라고 필사적으로 이끌었기에 나는 홀린 듯이 자연스레 빠에야 줄에 합류하였다. 매우 친절하고 호쾌한 직원으로부터 기분 좋게 건네받은 두 그릇의 빠에야를 각각 들고 R과 나는 마켓을 어슬렁거렸다. 아, 빠에야는 기대한 대로 정말 맛있었다! 기본에 충실한 재료로 맛깔나게 요리한 빠에야였고, 생각보다 양이 너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차마 남길 수 없는 맛이었다.
파이브가이즈에서 한바탕 햄버거와 감자튀김까지 먹고 온 터라 빠에야까지 먹고 나니 너무 배불렀지만 R은 내게 아주 유명한 크럼블 맛집이니 여기까지 온 김에 꼭 먹고 가는 게 좋지 않겠냐며 디저트 유혹의 손길을 뻗었고 결국 나는 그 손을 잡고야 말았다. ‘Humble Crumble’이라는 이곳은 오직 크럼블만 판매하는 푸드트럭인데, 다양한 베이스와 여러 가지 토핑 및 크림으로 각자의 취향에 맞게 크럼블을 즐길 수 있도록 메뉴를 구성했다. 유명하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우리는 정말 한참을 줄 서서 기다린 끝에 겨우 주문할 수 있었다. 크럼블은 정말 맛있었다. 하지만 꽤 비싼 만큼 양이 정말 많았고, 혼자서 다 먹기에는 너무 달았다. 지나치게 단 맛은 다 먹기도 전에 물리도록 하였고, 안간힘을 쓰며 퍼먹다가 끝내는 아주 약간 남긴 채로 쓰레기통에 버려야만 했다. 비록 끝까지 다 먹지는 못 했지만 그래도 한 번쯤 사 먹어볼 만한 디저트였다.
런던의 마켓은 런던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장소다. 비록 무언가를 사지 않더라도 그저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매우 즐거운 곳이며, 무언가를 사고 싶다면 더더욱 구경하는 재미가 있을 만한 곳이고, 무엇보다도 활기차게 살아가는 런더너들의 소박한 일상 속에 녹아들어 함께 걷고 웃으며 런던을 깊이, 그리고 재미있게 느껴볼 수 있기에 매우 추천한다.
런던의 3대 마켓으로는 보통 ‘버러 마켓(Borough Market)’, ‘포토벨로 마켓(Portobello Market)’, ‘캠든 마켓(Camden Market)’을 꼽는다. 각 마켓마다 저마다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 시간이 된다면 여러 마켓을 방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버러 마켓 바로 앞에는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식당 ‘플랫 아이언(Flat Iron)’이 있으며, 포토벨로 마켓에는 영화 <노팅힐>로 유명한 ‘노팅힐 서점(The Notting Hill Bookshop)’이 있다. 캠든 마켓 인근에는 일몰 명소로 사랑받는 ‘프림로즈 힐(Primrose Hill)’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