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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ia Oct 03. 2024

[20] 런던 켄싱턴가든스, 하이드파크 산책.

런던여행기_켄싱턴&켄싱턴가든스&하이드파크



빈티지 제품이 주를 이루는 포토벨로 마켓에서 결벽을 지닌 내가 실질적으로 살 수 있는 건 거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마 마켓을 떠나기 아쉬웠을 만큼 그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노팅힐 북샵에서 산 커다란 북토트백 안에 나의 짐들을 모두 쑤셔 넣고, 느리게 걷히는 안개처럼, 포토벨로 마켓을 조금씩 조금씩 서서히 빠져나와 하이드파크 방향으로 향했다.

걷기만 해도 즐거운 여행자의 시간.


런던 서부에는 걷기 좋은 예쁜 동네들이 유난히 많은 편인데, 포토벨로 마켓이 있는 이 아기자기한 ‘노팅힐’ 동네 바로 근처에는 흰색의 고급 주택들이 즐비한 ‘켄싱턴’이라는 동네가 있다. 나는 산책을 즐길 겸, 연못이 있는 켄싱턴 공원 및 하이드 파크를 통과하여 사우스켄싱턴에 있는 ‘빅토리아 앤 알버트(Victoria & Albert) 박물관’까지 걸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모든 집들이 깔끔하고 예쁜 외관을 지녔다


런던의 한겨울은 한국의 11월과 견줄 정도의 날씨라 외투만 단단히 잘 갖춰 입으면 흡사 가을과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런던의 겨울 거리에선 우수수 떨어진 은행잎들로 만들어진 노란 카펫이 깔린 길 또한 매우 흔히 볼 수 있기에, 눈 펑펑 내리고 살을 에듯이 추운 한국에서 온 나에겐 이 계절에게서 가을의 운치를 물씬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가을과 겨울 그 어디쯤…


아침에 비가 왔던 것이 무색하게 하늘은 너무나도 선명하고 맑은 푸른색을 자랑하여 마치 머리 위에 바다가 있는 것 같다고 여겨질 정도였는데, 그 아래에 줄지어 놓여있는 깨끗하고 고풍스러운 흰색 주택들과 대비를 이루어 이 순간만큼은 몹시 우아하고 평화로운 동네처럼 보였다. (단점을 꼽자면 집들이 너무 다닥다닥 붙어있다는 것. 이 정도면 옆집에서 트는 음악 소리도 다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푸른 하늘 아래 하얀 건물들.


예쁘고 조용한 켄싱턴 주택가를 지나 켄싱턴 공원 앞에 다다랐다. 아직 오후 두 시 삼십 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태양의 황금 이불이 대지를 덮으러 내려오고 있었다. 무성함과는 반대의 모습을 한 겨울나무들의 가지 틈으로 황금 이불자락이 비죽비죽 튀어나왔다. 고층 건물 없이 탁 트인 너른 녹색 들판 위에는 찬란한 금빛 노을이 눈부시게 반짝거렸으며 또한 여유로이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이 이 공원에 더욱더 아기자기한 생기를 부여했다. 나는 맑다 못해 얼음처럼 차가운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그 목가적인 오솔길을 즐거이 거닐었다.

켄싱턴 가든스.
공원 정경.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연못(Round Pond)이 나타났다. 연못답게 물살이 아주 거세지는 않았지만 겨울바람으로 인해 나름의 파도를 만들어내고 있었고, 그 위로 금빛 노을이 반짝반짝 부서지며 끊임없는 윤슬을 이루었다. 널따랗고 둥근 연못가로는 사람들과 새들이 한데 어우러져 어떠한 규칙성이 존재하는 모빌처럼 그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무언가 대단한 조형물이 있다든가 압도적인 크기의 광활한 대자연을 형성한다든가 다양한 동식물들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 공원의 소박하고도 평화로운 풍경이 그만으로도 강한 매력을 이루어 내 맘을 탁 사로잡았다. 새삼 내 취향은 참 별게 아니라 단순하고 소박한 것들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나치게 화려한 것들은 물론 아름답지만 나의 눈과 정신을 피로하게 만드는데 반해, 소박한 것들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고 마치 늘 나와 함께 했던 나의 일부인 것처럼 편안하다. 그 편안함이 주는 안정감과 고요함, 그리고 그 속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소박한 기쁨과 행복이 좋다.

연못가.
켄싱턴가든스 안의 원형 연못.


이 연못이 뭐라고 난 그리도 좋던지! :)


산책 중 본 크고 멋진 것들.


사이좋게 산책하는 노부부(?).





*켄싱턴 가든스 (Kensington Gardens) : 런던 서부의 켄싱턴 지역에 위치한 공원으로, 왕실 가족들이 거주하는 켄싱턴 궁전과 앨버트 기념관(Albert Memorial), 그리고 라운드 폰드(Round Pond)를 볼 수 있다.


*하이드 파크 (Hyde Park) : 켄싱턴 가든스와 이어지는 공원으로, 런던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공원이라 할 수 있다. 17세기 초, 제임스 1세 때 왕실 사냥터로 사용되던 공원을 18세기 이후 공공 공원으로 개방하였고, 현재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며 또한 좋아하는 공원이 되었다. 이곳에는 인공호수인 서펀타인 호수(Serpentine Lake)가 있어 사람들이 레저를 즐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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