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여행기_V&A
런던에는 훌륭한 컬렉션을 자랑하는 미술관들이 많아서 나와 같은 미술 덕후 여행자에게는 참 매력적인 도시이다. 한정된 짧은 여행 기간 동안 방문할 미술관들을 열심히 고심하여 추려냈는데, 오늘은 그중 V&A Museum (Victoria and Albert Museum)을 가는 날이다. 사실 V&A 박물관은 전시 관람보다는 박물관 안에 있는 ‘The V&A Cafe’에 가보고 싶어서 방문하는, 염불보다는 잿밥에의 지대한 관심으로 택한 곳이다. 언급한 V&A 카페는 빅토리아풍 인테리어와 맛있는 스콘으로 유명한 곳인데, 더구나 박물관 안에 위치해 있으므로 예술품도 관람하고 티타임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더 사람들을 매료시키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아름답고 평화로웠지만 몹시 추웠던 공원 산책을 거쳐 드디어 V&A 박물관을 만났을 때의 그 반가움은 정말이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고풍스러운 건물 외관과 이지적인 매력을 풍기는 뜰, 로비의 풍경도 물론 반갑고 좋았지만, 무엇보다 더 이상 춥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그리고 드디어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블라인드북을 뜯어볼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안도감과 반가움으로 벅차오르도록 했다.
들어가자마자 로비 양편으로 줄지어 서 있는, 그야말로 “오~ 멋지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장식적이고 화려한 조각품들을 찬미하며 차근차근 살펴보는 와중에도 나의 관심은 카페의 위치를 찾는데 쏠려 있었다. 물론 머릿속에 카페 생각으로만 가득차있던 것은 절대 아니다.
마치 “우리 카페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예술적 소양을 갖추고 오셔야 합니다.”라고 돌려 말하는 듯, (자의 반, 타의 반으로) 1층의 전시를 모두 둘러보고 미감 게이지를 한껏 채우고 난 후에야 카페의 입구는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 주었다. 휴우, 여기까지 오는 데 몹시도 힘든 여정이었다!
나는 스콘과 에스프레소 한 잔, 그리고 생수 한 병을 주문하여 받아들고는, 홀 한가운데에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놓여있는 Gamble Room 안에 착석했다. V&A 카페는 Gamble Room, Morris Room, Poynter Room 총 세 개의 주요 홀로 구성되어 있는데, Gamble Room은 셋 중 특히 빅토리아풍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인테리어와 샹들리에, 스테인드글라스, 벽을 채운 예술 작품들로 특색을 이루며 매우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홀이기도 하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였는지 피아노 라이브 연주를 들을 수 없었는데, 가끔 방문객들을 위해 멋진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기도 한단다.
클로티드크림 그리고 딸기잼과 함께 놓인 따뜻한 스콘에서 포슬포슬 포근한 향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스콘은 비교적 만들기가 쉽고 한 번에 많이 만들어둘 수 있어서 종종 집에서 구워 먹는 편인데, 그 담백한 맛에 반하여 구워지는 냄새는 여느 달콤한 페이스트리 못지않게 아주 기가 막힌다. 반전매력이랄까? 뜨거운 오븐 안에서 고소한 밀가루 내음과 버터 내음이 어우러져, 그 향기를 맡는 것만으로도 마치 엄청나게 두껍고 푸근한 이불속에 포옥 싸인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스콘을 굽는 날은 마음이 포근하니 참 기분이 좋다. 아무튼, 이렇듯 스콘은 집에서도 심심찮게 구워 먹는 빵인지라 밖에서 사 먹는 스콘은 웬만해선 집에서 갓 구운 스콘만 못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 잘 사 먹지 않게 됐다. 그렇지만 스콘의 고장, 영국의 스콘은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 그리고 여긴 스콘 맛집이라고까지 했으니 분명히 다르겠지 하는 마음에 평소와는 달리 기대하며 스콘을 샀다.
나는 칼로 가른 스콘 위에 먼저 클로티드 크림을 얹어 입 안에 넣었다. 기본에 아주 충실한 식감과 맛이었는데 스콘 맛집이라는 칭호에 어울리는 맛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무난하게 먹을만한 정도였고, 에스프레소 역시 특별한 풍미는 없는 평범한 커피였다. 그래도 예쁜 인테리어 덕에 혀는 몰라도 확실히 눈은 아주 즐겁다. 한산할 때 와서 조용히 책 읽거나 그림 그리면 참 좋을 것 같은 공간이다.
아, 드디어 ‘Blind Date with a Book’을 개봉할 시간이다! 두근두근… 빅토리아 시대의 분위기가 가득 느껴지는 공간에서 이 블라인드북 껍데기를 뜯고 있자니, 뭐랄까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속 Gil이 밤마다 잡아 타는 마차처럼 이 책 역시 과거의 어느 찬란했던 순간 속으로 나를 순간이동시켜 줄 것만 같은 터무니없는 상상이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과연 이 누런 종이 포장지 안에는 무슨 책이 들어있을까? 이 책은 나를 어떠한 시대로 데려가줄까?
* V&A 박물관 (Victoria & Alber Museum) : 런던의 사우스 켄싱턴 지역에 위치한 예술, 장식미술 및 디자인 박물관이다. 조각, 도자기, 가구, 회화 및 판화, 직물, 패션, 유리공예, 사진, 공연예술자료, 아시아컬렉션 등 방대한 주제와 소장품들을 선보이고 있어 미술관보다는 박물관이라고 부르는 것이 걸맞을 것이다. 1852년에 설립된 이 박물관은 당시 영국의 여왕이었던 빅토리아(Queen Victoria)와 그의 남편이었던 앨버트 공작(Prince Albert)의 이름을 따 명명하게 되었다.
* 빅토리아 시대 (1837~1901)의 인테리어와 건축 양식 특징 : 풍부하고 화려한 색채 및 장식적 요소와 다양한 스타일이 혼합된 복잡한 형태가 두드러지며, 그뿐만 아니라 건축물에서는 첨탑이나 스테인드 글라스와 같은 고딕 양식이 부활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에 동양으로부터 영감 받은 오리엔탈리즘 요소까지 가세하며 매우 화려하고도 복잡한 스타일이 만들어졌다.
* The V&A Cafe : V&A 박물관 안에 있는 카페로, 빅토리아 시대풍의 아름다운 인테리어와 역사적인 특징으로 유명하다. Gamble Room, Morris Room, Poynter Room 총 세 개의 주요 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홀마다 약간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다. 각 방의 명칭 역시 후원자의 이름(James Gamble, William Morris, Edward Poynter)을 따서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