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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박 Oct 24. 2020

한때 당신을 미워했어요

아버지 전상서

어린 시절, 아빠와의 행복한 기억


아빠의 보호자로, 간병인으로써 지낸 지 3일째다.

현재 나의 기분과 감정과 시간은 모두 아빠에게 맞춰져 있다.

아빠의 사소한 행동, 표정이 나를 움직고,

아빠는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나에게 투정을 부린다.

기약 없는 입원 생활.

병원이 갑갑하기도 하고

딸에 대한 미안함과

성치 않은 자기 몸에 대한 자괴감 때문일까.

별거 아닌 일에도 예민하고 화를 낸다.

평상시였다면,

평소 일상 속 우리 사이였다면,

나는 버릇없이 아빠께 한마디 했을 것이다.


아빠 그만 좀 해 나도 힘들어

마치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한다는 정의 사도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절대 저런 말을 입에 담을 수도, 생각조차도 할 수가 없다.




아빠의 얼굴을 이제야 자세히 보게되요


어렸을 때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아빠 얼굴 보기가 어려웠다. 기업체 운전기사로 일하셨는데, 항상 이른 새벽에 출근해 자정 넘어 퇴근하셨다.

어린 마음에 아빠가 보고 싶어 저녁마다 전화해 울고불고 난리 쳤던 나를 생각하면.. 아빠의 억장은 매일 무너졌을 것이다.

어려운 형편, 반지하 생활에서도 아빠는 나를 부족함 없이 키우기 위해 쓴소리 없이 일만 하셨다.

그렇게 피곤하고 치열한 삶 와중에도 일요일에는 항상 나를 어린이대공원에 데려 우리 아빠. 무려 10여 년을 한결같던 우리 아빠.

싫은 소리 하나 없이 하루 종일 놀아주고 마지막에 대공원 앞 포장마차에서 소라 한 접시에 소주 한 잔 기울이던 아빠의 모습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애틋함도 잠시 나는 아빠를 미워했다.




내가 성인이 되고 아빠가 정년퇴직을 하면서 우리 사이는 묘하게 틀어졌다.

아빠는 예전처럼 살갑게 가족을 대하지 않았다.

갱년기 때문일 수도 있고,

퇴직하면서 온 우울감일 수도 있다고

지금에야 나는 생각하지만.

그 당시 철없던 나는 변한 아빠 모습이 낯설고 싫었다.

엄마와 아빠의 잦은 다툼도 한몫했다.

엄마 입장에서 많이 섰던 나는 아빠에게 항상 소리쳤다.


왜 자꾸 엄마 고생시키고 아빠 마음대로 하는 건데?


가슴에 비수를 있는 대로 꽂았던 말.


 근데 생각해보면

아빠는 엄마보다 6살이나 연세가 많으시다.

즉 아빠의 체력은 당연히 예전 같지 않을 것이며,

치열하게 살아온 약 60년의 시간을 지나

이제야 좀 쉬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여전히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을 핑계 삼아 아빠를 매몰차게 내몰았던 나는 딸로 자격이 있던 걸까?

적어도 이해는 해줄 수 있었잖아.

그마저도 못 했던 나.

왜 이제야. 이제야.

아빠가 병상에 누워서야 반성하고 죄스럽고 후회가 되는 건지.


이제야 바라본 아빠는 머리는 새하얀 흰색. 주름. 거친 피부. 너무나 고생 많이 한 얼굴.

이제야 바라봐서 죄송해요.

앞으로 아빠와 나의 마지막 그 순간까지 진심으로 온 마음 다해 최선을 다할게요.


병실에서 아빠가 그려준 나의 모습. 아빠의 첫 그림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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