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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박 Oct 23. 2020

이제 내가 아빠의 '보호자'래요

이번 생에 간병은 처음이라

이제 너는 어린애가 아니야


 아빠가 갑자기 호흡곤란으로 쓰러지셨다.

출근해서 일하는 와중에 갑자기 연락을 받았고, 살면서 처음 있는 일이 정신이 멍해졌다.

아빠는 혼자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는 중.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정말 당황했다.

엄마는 연락이 아예 안 되고 내가 아니면 아빠는 병원에 혼자다. 보호자 없이 혼자.

순간 일이라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

양해를 급히 구하긴 했지만, 그만 둘 각오로 뛰쳐나와 택시를 잡았다.


아빠의 병명은 폐 기흉.

폐에 공기가 차 호흡곤란이 온 것인데, 증상이 코로나 19와 겹치는 게 있어 우리는 격리되었다.

폐에 삽관을 꽂아 공기를 빼보고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

엑스레이도 찍었지만 코로나 검사로 인해 결과가 나올 때 까지는 CT를 찍을 수도 없다. 또한 오랜 흡연으로 인해 폐 상태가 좋지 않고, 여름에 폐렴을 앓고 지나간 터라 수술이 진행될 수도 있다고 한다.

결국 기약 없는 입원 생활이 시작되었고, 나는 아빠의 보호자로 같이 격리되어 아빠를 간병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19로 인해 보호자 교대도, 면회도 안되기에

병원에서의 아빠의 유일한 보호자는 나뿐인 게 된 것이다.


불완전한 나일지라도


아빠는 내가 어릴 때부터 나를 극진히 아끼셨다.

모든 부모가 그러겠지만, 아빠의 사랑은 항상 내가 느낄 정도로 커다랐고 뜨거웠다.

아빠는 마흔이 다 되는 나이에 어렵게 나를 본 것이라 외동딸 사랑이 남른 편이었다.

엄마는 7년 만에 태어난 딸이 혹여나 버릇없게 자랄까 엄격하게 키웠고, 아빠는 그 엄격함이 독이 될까 다 받아주고 사랑으로 키웠다.

엄마 아빠의 적절한 교육과 훈육 덕에 나는 평범 크게 모나지 않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런 사랑 속에서,

단 한 번도 엄마 아빠의 타리에서 벗어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경제적인 독립은 이미 한지 오래지만,

부모님이랑 같이 살고 부모님의 케어를 계속 받고 있었기에 정신적인 독립을 하지 못한, 나는 아직 마냥 어린애였다.


언젠가는 부모님이 내 곁을 떠날 거라는 생각

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먼 미래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더 이상 마냥 어린애로만 지낼 순 없다.


이제 조금이라도 철들어야 돼!



모든 게 처음이라 어렵다.

입원 수속을 밟는 것도, 주치의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의 설명을 듣는 것도, 생전 처음 격리 생활을 하는 것도.

간병인 침대가 좁고 추운 것도 처음인지라 적응하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다행 건

아빠의 식사와 화장실을 챙기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아빠가 조금이라도 어딘가 불편한지 지켜보는 건, 

다행히 나 스스로 어렵지 않게 당연스럽게 하고 있는 중이 나 자신에게 감사하다.


아 부모님이 날 키울 때 이런 마음으로 키우신 건가?



엄마 아빠의 마음을 전부 이해하기엔 내 그릇이 작지만 이제 조금이라도 알 것만 같다.


자식으로서 잘해드린 것도 없는데.

아플 때 힘이 돼주지 못할까 봐 걱정만 된다.

아빠는 나에게 자꾸만 고맙다고 하는데, 당연히 해야 할 일에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이제는 내가 부모님의 보호자이자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나는 이제 나 스스로 강해지고 무뎌질 필요가 있다.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


강해지자. 울지 말고! 지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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