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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박 Jan 14. 2022

술의 노예 파업 선언

금주합니다

니가 뭔데


술과 나와의 역사는 참으로 길다.

처음 술을 접한 건 19살, 엄마 친구들 모임에 따라가서 마신 복분자주.

내 주량이 어쩐지 저쩐지도 모른 채 주시는 족족 받아먹던 결과, 그다음 날 나는 검정 비닐봉지를 덮어쓰고 자고 있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토사 광란의 밤을 지내고 나서 내가 느낀 건.


아 나는 술을 많이 마시면 안 되겠구나


였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존재다.

그 후로 무려 8년의 시간 동안 나는, 술의 노예로 지냈다.

대학교 때는 물론이 거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회식에 필참.

친한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퍼마시고 놀았던 과거의 나.


술을 끊지 못한 이유는

마시면 기분이 너무 좋아졌기 때문이다.

또 내성적인 평소 성격이 싫었던 나는

술의 힘을 빌려 외향적인 인싸가 될 수 있다는 점. 그 마약 같은 유혹란!


불면증이 심했던 것도 술의 힘을 빌리면 잠들 수 있다.

하루 한 캔의 맥주가 주는 희열은 두 캔이 되고 세 캔이 되고..

자연스럽게 알코올 의존증 말기 환자가 된 나는.

몸이 주는 신호는 가볍게 무시하고 잠깐의 쾌락에 의존하며 살게 되었다.



그러다가 최근 얼마 전 아주 무시무한 일이 터져버렸다.




술에 절여진 나와 너


사실 그전부터 전조 증상이 있었다.

28살이 되고 갑자기 늘 마시던 주량대로 음주하면 몸에서 이상 반응이 오기 시작한 것.

얼마 마시지도 않았는데 숙취는 가시지 않고 회복하는데 시간이 수일이 걸리는..

여기서 깨닫고 멈췄어야 했는데.



최근 회식자리에서 나는 얼마 마시지도 않았는데 만취했다.

그냥 만취면 다행이겠지만..

들어가지 얼마 되지 않은 직장에서 필름이 끊겨버린 나는. 같이 마신 선임에게 반말을 지껄이고 길바닥에서 드러눕는 바람에 상사가 부모님을 호출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눈떠보니 집이고 아무 기억이 나지 않을 때의 그 소름이란. 느껴본 사람만 알 것이다.



등줄기가 오싹한 불쾌한 소름
그리고 자책감



엄마의 등짝 스매싱이 문제가 아니다.

그 일로 나의 직장에서의 이미지와 입지는 바닥을 쳤고, 망가진 몸과 정신을 되돌리기까지 열흘이라는 시간이 걸렸으며.

정신을 가다듬고 강철 멘탈로 출근을 결심하기까지의 마음고생.

또한 부모님께는 희대의 불효자식이 되어버린.

웃지 못할 끔찍한 야기.



이젠 정말로 금주합니다. 차마 절주를 할 의지가 안 되는 나약한 인간이기에..



인간답게 살고 싶어요.


나는 내가 싫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노하셨을 때 인간들을 미치광이로 만들었다는 믿지 못할 신화를

내가 경험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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