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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박 Jan 16. 2022

즐거운 나의 작은 집

소파 없애면 저도 집 나가요


심통난 어린이

 

가난이 뭔지 몰랐던 어린 시절의 나는, 반지하에 살면서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반지하에서 계속 애를 키우긴 싫다던

부모님 갖은 노력 끝에 다세대 주택 2층에 셋방을 얻었다. 당시 유치원생이었던 나는, 작 단지 내 방이 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행복했다.


어렴풋이 우리 집이 다른 집보다 넉넉지 않은 사정이란 걸 제대로 알게 된 건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 당시 살던 우리 집은 아주 작았다.

거실도 없는, 작은 부엌과 두 개의 방.

부엌부터 현관문까지 그 좁은 공간에 TV를 들여놓고, 조금이나마 앉을 수 있던 그 자리를 나는 속으로 혼자 거실이라고 불렀다.


그 당시 방영했던 '매직키드 마수리'를 봐도, 드라마를  봐도, 거기서 나오는 집들은 크고 웅장한데.

거실에 소파가 당연히 있는 그런 집은 TV 속에나 볼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친구들 집에 놀러 갔을 때 우리 집흔치 않은 거실도 소파도 없는 집이었다는 걸 그때서야 깨달았고, 실체를 알 수 없던 '가난'이라는 게 와닿았다.


우리가 못 먹고 살 정도로 빚에 허덕이는 그런 집은 아니었지만, 어렸을 때의 나는 구들을 감히 집에 초대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부끄러움에 처음 마주하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뭐 어때서? 집이 작다고 다 가난한 것도 아니고 행복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싶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속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어린이가 아니었다.


엄마에게 '우린 언제 이사가?'를 물어봤을 때 대답 없이 웃기만 하던 그 모습.

이사 가면 아까우니까

전에 살던 사람들이 쓰던 벽지를 그대로 쓰자고 했던 엄마가 기어이 벽지를 바꿔줬을 때.

그마저도 업체를 부르지 않고 땀 흘려가며 손도배를 하던 엄마 모습에.

 다시는 집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말자고 속으로 되뇌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필통을 바꾸고 싶어도, 유행하는 뭔가를 사고 싶어도 먼저 사달라는 말은 절대 부모님께 하지 않았다.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성인이 되기만을 기다렸던 어린 시절의 나.



그리고 언젠간 소파가 들어서 있는 거실 있는 집에 살겠지라고 희망을 가져보면서 살다 보니 내 나이는 22살.


작은 방이 생겨 좋아하던 6살의 내가 살던 그 방에 22살의 나도 살게 될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낮과 밤 가리지 않고 일하던 아빠와

알뜰살뜰히 돈을 모으던 엄마의 노력이 빛을 발했는지 우리는 결국 이사를 갔다.


지금까지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 집은 여전히 크다고 할 수 없는 작은 집이다.

하지만 작아도 '우리 집'이고, 드디어 거실이란 게 생겼고 소파를 놓았다.

엄마는 작은 집에 굳이 소파를 놔야겠냐고 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나의 로망이던 '소파'. 그게 뭐라고 나는 집착했고 여전하다.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소파에 앉아 창문 밖을 바라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 지가 어언 6년.


여전히 행복하고 벅차다.

부모님의 고생과 눈물이 스며든

작아도 즐거운 우리 집. 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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