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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경 Oct 11. 2023

아이스라임티를 마시면서 하는 회고와 상상

몇가지 일에 대해 회고하고 앞으로의 날들을 꾸려나가 보고싶어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오랜만의 일기다. 손이 굳어서 잘 쓸 수 있을지 걱정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온 친척일가가 대구에 모여서 장례를 치루었다. 흩어졌던 유년기를 회상도 해보고, 시간이 참 빠르구나 느꼈다. 내복을 입고 같이 추석 송편을 빚던 사촌 언니와 오빠들이 각자의 배우자들을 데리고 장례식을 도우는 모습이 어색하고 신기했다. 새언니와 진경언니 그리고 나는 검은 상복을 입고 장례식장 음식들을 먹으면서 맥주를 마셨는데, 가정과 일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그 여성분들이 참 행복해보였고 좋았다. 

더불어 종교의 중요성도 깨닫게 되었다. 할아버지 장례미사를 대구 두산성당에서 치뤘다. 지역 신자분들이 참여해서 우리 가족과 할아버지 안드레를 위해 기도해주셨다. 성수와 기도의 축복이 가득했다. 우리 친척일가는 대부분 가톨릭인데, 내가 왜 하필 이 종교를 가진 집안에서 태어났는지 단순한 우연인지 운명인지 궁금하다. 네이비컬러가 잘 어울리는, 무셰뜨가 생각나는, 소박하고 소탈한 우리의 종교. 천사와 성모 마리아가 계시는 가톨릭 종교의 믿음과 그 문화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는 한국인인데 한국에 정착하여 발전한 가톨릭 제례의식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죽음을 받아 들였다. 신부님 수녀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사람들의 아무 이유없는 도움에 대해서도 너무나 감사했다. 지역 신자들은 우리를 모르는데 가톨릭 커뮤니티,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를 위해 시간과 마음을 들여 기도를 해주셨다. 내가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하니 슬퍼지는 것이었다. 내가 너무 오래 신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에 부끄러워 눈물이 흘렀다. 신은 우리 가족이 제일 힘들 때 반겨주시는데. 나는 나의 지성과 인간성을 좋아하지만, 가끔 신께 진실된 마음으로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성과 인간성, 그리고 신성은 서로 겨루는 주체들이 아니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장례미사가 끝나고 납골당에서 마지막으로 우리 가족들을 위해 기도해주신 신부님은 우리 가족을 이렇게 혼내셨다. “이 집의 주인은 돈인가?” 그 말씀이 내내 가슴에 맴돌았다. 우리의 주인이 돈이 아니라 우리가 돈의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      

두 번째로 친구들과 있었던 약간의 불화를 생각해본다. 정은이가 내가 원주여행에서 너무 핸드폰을 해서 불만이었다고 털어놓은 것을 떠올렸다. 그런데 내가 생각할 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닌 것 같다. 나는 내 직업을 찾았고 커리어를 쌓는 중이다. 커리어는 단순히 직업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생애주기에 따라 변화와 삶의 질을 발전시켜주는 중요한 실천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직 길을 찾지 못한 친구들과 나는 조금 다른 삶의 태도를 갖게 됬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이 얼른 자기 길을 찾길 바란다. 나는 조금씩 성장하고 발전해서, 오년후, 그리고 또 오년후, 그렇게 시간의 흐름에 걸맞는 나 자신이고 싶다. 그것은 경제력을 갖게되는 것 이전에 인간 삶의 모습의 문제다. 우리는 나이를 먹어도 서핑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친구들이 도피성이거나 회피성 여행으로 서핑으로 도망친다면 그건 싫다. 그래도 나는 내 친구들이 소중하고... 가는 길이 달라도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둔다면 계속 함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     

가을학기와 더불어 겨울학기 북클럽을 맡게 되었다. 늘 배려해주시고 기회를 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다. 내가 새로운 길을 걷게 해주시는 타인들이 많다. 그 분들의 종교가 나와 달라도 내게는 천사같은, 귀인같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가 성과물이 있고 성실하게 준비했기에 주어진 기회이기도 하지만, 담당자분들(출판사 관계자분들이나 문화센터 관계자분들)이 마음을 여시지 않았다면 할 수 없었을 거다. 늘 겸손하고 열심히 일해야겠다. 

새로운 동료들과 단편소설 앤솔로지 작업을 시작했다. 내가 시작하고 완성하는 작업을 통해 한 계단 오르거나 높이 뛰어올라 점프하거나 아무튼 나아지기를. 소설가란, 소설을 쓰는 사람. 소설을 통해 무언가를 만들고 드러내는 사람. 앞으로도 현명하게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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