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북클럽

by blue

이십대 중반에 '꿩달걀 북클럽'을 한 적이 있다. 그 안에서 연애도 하고, 책도 읽고, 피자도 먹고, 햇볕을 쬐며 산책도 하고 그랬다. 삼십대 초반이 되어 나는 북클럽을 다시 하고 싶었다. 그래서 사람들을 모았는데, 이번에는 전원 여자로 구성되어 사실 연애는 못했다. 그래도 해산하기 전까지 즐겁고 좋은 기억이 많아 적어보려 한다. 이번 북클럽의 이름은 ‘달걀 북클럽’이다.

북클럽 구성 멤버는 학부 동아리 시절 친하게 지냈던 동아리 멤버들이다. 영이, 효정이, 정은이 그리고 나. 각기 개성도 다르고 하는 일과 공부도 다른 친구들이지만,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반년간 꾸준하게 모임을 이루어 나갔다. 한달에 한번씩 지정 도서를 읽고, 까페에 모여 책 이야기를 하는 모임이었다. 읽었던 책을 기준으로 우리의 수다와 산책과 책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한다.


2018년 10월 13일. 책 <한낮의 연애>

첫 모임이었다. 첫 책은 모임을 만들었던 내가 정하기로 하였는데, 한국의 여성작가들을 좋아하는 내가 고른 책은 바로 <한낮의 연애>. 우리는 양재역 할리스에서 만났다. 이날 참석한 사람은 나와 효정, 그리고 정은이. 우리는 먼저 서로 안부를 묻고 잡담을 나눴다. 그리고 책 이야기로 넘어갔다. 섬세한 필치로 써내려간 연애와 운동권 사람과 특이하다고 기억했던 사람의 이야기. 우리는 이 소설에 각기 감화된 포인트가 달랐으나, 김금희 작가의 필력에는 모두 박수를 보냈다.

2018년 11월 10일. 책 <도시의 시간>

박솔뫼의 성장 소설 <도시의 시간>은 정은이가 고른 책이다. 굉장히 여린 감수성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또 한 작가에게는 다양한 면이 있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되었다. 필체, 문장, 주제가 모두 다른 소설들이 박솔뫼의 소설들에게서 느껴진다고 어림짐작하였다. 소설 <도시의 시간>은 십대 청소년 세 명이서 하나의 음반을 둘러싸고 서로를 묘사하는 소설이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감수성이었는데, 나는 이런 감수성을 '졸업해야 하는 류'로 분류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분명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내가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고, 다만 살아 지기에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정은과 나는 독서 모임전에 밤도깨비 시장을 즐겼다. 맛있는 주전부리들을 사먹고, 길을 걸으며 연애 상담을 하였다.

정은과 나, 효정 그리고 영이가 청계천 탐앤탐스에서 모였다. 이 날 나는 간단하게 후드 집업을 입고 갔는데, 모임 멤버들의 옷차림새가 너무 예뻐서 '나도 예쁘게 입고 올걸' 하고 후회를 하고 말았다. 나는 모임 멤버들이 각자의 향기를 갖고 있는 것이 너무 좋았다. 염색한 헤어 스타일, 트렌치 코트의 모양새, 어떤 가방의 질감, 그리고 마른 장미 립스틱. 정말로 멤버들과 같이 있는게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귀여운 애들이랑 내가 친구라니! 어깨가 절로 으쓱했다.

우리는 청소년기에 대한 각자의 인상을 나누었다. 서로의 청소년기 이야기를 나누고, 결국에 <도시의 시간> 감성은 졸업해야 하는 류의 감성이라고 모두가 공감하였다.

독서 감상 모임이 끝나고 우리는 청계천을 배회하였다. 시끌시끌한 시장의 느낌. 우리는 칠리 새우를 사서 나누어 먹었다. 한 서양인 아저씨가 우리 네명의 사진을 찍어 주셨다. 노상에서 정체 모를 게임도 하였다. 나는 어떤 점쟁이에게서 점을 봤는데, 헤어진 연인에 대한 상담을 하다가, 열받는 말을 듣고서 기분이 퍽 상했다. 게다가 그 점쟁이는 거금 삼만원을 복채로 요구했다. 나는 돌팔이라며 욕을 하고 씩씩 거렸다. 모임 멤버들은 그런 나를 다독여줬다.

가을이었고, 우리는 서울의 멋쟁이들이었다. (후드 집업을 걸친 나만 빼고) 나는 친구들과 함께 가을 바람을 맞아 기분이 좋았다.


2018년 12월 1일. 책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

이 모임은, 송리단 길이라고 불리우는 길의 한 까페에서 이루어 졌다. 영이가 책 후보로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를 추천했다. 나는 계속 소설만 읽은 참에 굉장히 환기가 되는 책이라 느껴 반가웠다.

우리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온상지에서 만나 키득거렸다. 힙스터 까페가 범람하는 거리에서, 우리는 힙스터들을 놀려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까페들은 사람들고 북적였고, 우리는 빈 자리가 있는 까페로 밀려 밀려 나갔다.

나는 플랫화이트를 시켰고, 정은이와 영이는 시그니처 라떼를 시켰다. 플랫화이트의 고소함에 푹 빠져있던 나는, 플랫화이트도 역시 힙스터들의 유행의 한 부분이 아닌가 싶었다.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근황 업데이트를 하였다. 그리고 책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 이 어려운 책의 내용을 다 떠올리기는 무리다. 하지만 우리는 체감할 수 있었다. 어느 거리가 뒤집어지고, 콘크리트 철근으로 뒤덮인 까페들로 넘쳐나고, 또 밀려나는지. 자본의 논리와 문화가 어떻게 공존하거나 경쟁하거나 잠식하고 잠식당하는지 눈으로 본 것들을 이 책이 차근차근 언어로 말해준 것 뿐이었다. 우리는 서울의 구석구석을 이야기하였다. 이태원, 해방촌, 경리단길, 연희동, 익선동.... 그리고 그 거리의 역사와 새로운 풍토와 이방인들을 이야기 하였다. 각기 다른 세계관을 갖고 한 거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충돌이 불가피 하기도 하고, 공존을 모색해야 하기도 하는 사람들. 다소 씁쓸하기도 한 이야기였지만, 우리는 안락한 까페 안에 있어서 그런지 즐겁게 이야기를 마무리 하였다.

정말 추운 날이었다. 까페 밖으로 나온 나는 "추워-!"하고 괴성을 지르고 말았다. 한 해의 마지막 독서 모임이였고, 나는 정은이와 영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얘들아, 메리 크리스마스, 그리고 해피 뉴이어!"


2019년 1월 19일 책 <한 때 소중했던 것들>

효정이가 정한 책은 이기주 작가의 <한 때 소중했던 것들>이라는 에세이였다. 나는 이 분홍색 책을 청계산 입구 스타벅스에서 후루룩 읽었다. 감성적인 이기주 작가의 일상의 사색들이 풍요롭게 담겨 있었다.

우리는 양재역 할리스에서 다시 만나, 이 책을 이야기 하였다. 일상을 바라보는 눈이 특별한 작가라고 입을 모아 칭찬했다. 특히나 남자가 이런 감수성을 갖고 있다니 놀랍다고 또 칭찬을 하였다. (혹시 이것도 성차별적인 생각일까?) 아무튼, 우리는 가볍게 읽힐 줄 알았던 에세이가 삶의 희노애락을 담고 있어 또 가볍지 만은 않다고 말했다.

사실 나는 한달에 책을 한권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친구들을 자주 보고 싶었다. 친구들과 맛있는 것을 먹고, 수다를 떨고 싶었다. 정은이가 대만에 가는 일정이 생겨 이것이 마지막 독서 모임이 되었다. 정은이 환송회겸 우리는 치킨집에 갔다. 떠들석한 치킨 가게였다. 우리는 대표 메뉴를 하나 시키고 미란다 음료수를 병째로 들이켰다. 술을 못하니 기분이라도 낸 것이다.


2019년 3월 9일

우리는 그냥 만났다. 서로가 보고 싶어서. 양재 아시아키친에서 맛있는 누들을 먹었다. 영이가 걸어오는데 너무 예쁘게 마른 몸이어서 깜짝 놀랐다. 패셔너블한 멋쟁이인줄만 알았던 정은이가 민낯으로 나와 귀여웠다. 효정이는 여전히 발랄했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가게를 나와 걷다가, 우연히 독립서점을 발견해 들어갔다. 귀여운 느낌의 가게였다.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와 특별한 공기. 나는 초록색깔 표지의 소설책 <랩 걸>을 집어 들었다. 트위터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그리곤 연구실에서 공부하는 영이에게 "딱 네 책이다, '살려줘어'" 하며 농담을 건넸다. 영이는 나에게 책선물을 하고 싶다며,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 된다>라는 철학 에세이를 계산하였다. 나는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아름다운 발레리나가 표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서점을 나와 걸었다. 산책하는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아무 말이나 했다.

우리는 까페 프릳츠로 향했다. 맛있는 빵들을 잔뜩 담고, 커피를 시켰다. 그리고 본격적인 수다 타임. 우리는 언젠가 같이 하와이안 훌라댄스를 추기로 하였다. 그 때는 우리가 서로 다른 인생의 일들로 연락이 뜸해질거라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즐거웠다. 잃어버린 고등학교 친구들을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우리는 까페를 나와 볼링장을 찾다가, 볼링장이 만석이어서 다시 스타벅스로 향했다. 동아리 사람들 이야기, 스타벅스 메뉴 이야기, 파우치에 든 화장품 이야기등등을 하였다. 봄이 오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모두들 바빠졌다. 언제는 안그랬냐만은. 정은이는 대만을 갈 준비로 중국어를 공부하고, 영이는 연구실에서 공부로 바쁘고, 효정이는 남편 사이에서 아이가 생겼다. 나는 나대로 까페 알바를 하였다가, 웨이트리스 알바를 하였다가, 바빴다. 바빴나? 사실 안 바쁜 시간도 많았다. 그래서 혼자 친구들을 보고 싶어했다. 그게 좀 부끄러웠다. 다들 바쁜데, 나는 안바쁘고 친구들을 그리워 한게. 그래도, 어른 답게, 친구를 대만에 보내고, 유학을 보내고, 아이가 생긴 것을 축하할 것이다. 무엇보다, 내 생계에 열심이고 혼자 바로 서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짧았지만 즐거웠던 북클럽 시간을 행복하게 추억할 수 있도록... 애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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