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랑 강릉

(취뽀에 도움될것같아 공모전에 내는 글... 너무 못쓴것 같아 부끄)

by blue


몇 년 단위로 내 마음의 고향들이 바뀌는 것 같다. 재작년에는 베트남 하노이가 내 마음의 고향이었다. 그리고 지난해부터는 강릉이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독일어 단어 중에 ‘먼 곳을 향한 그리움’이란 합성어가 있어 발음해보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그렇게 내 마음의 고향은 먼 곳에 있다. 그건 내 마음이 지금 살고 있는 곳과 완전하게 부합하지 않는 다는 뜻인 것 같고, 곰곰 생각해보면 내 마음의 상태가 항상 그리움의 결을 띄고 있다는 반증인 것 같다. 나는 항상 자신과 어울리는 곳에 살기를 바랐었다.

사실 강릉을 처음 접했던 건,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였다. 여자 주인공(이영애 분)이 사는 푸르른 새벽의 아파트가 있는 곳, 이 바로 강릉이었다. 새벽에 술에 취한 남자주인공(유지태 분)이 가게 앞에 쪼그리고 앉아 전화통화를 하다가, 애틋함을 못 이겨 택시를 잡아 타고 서울에서부터 강릉까지 연인을 보러 달려가는 바로 그 영화. 그 영화를 보고 나는 강릉이란 해변을 낀 도시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 영화는 영화제목처럼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여자주인공은 서울로 이사오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우연히 마주친 남자를 보고 한때의 습관을 기억해 낼 뿐. 어렸을 적엔 이 영화가 꽤 아팠으나, 지금은 그냥 곱게 바랜 사진 한 장을 바라 보는 듯한 기분이랄까... 아무튼 각설하고,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내가 강릉을 좋아하게 된 연유다. 이 영화로 인해, 나는 마치 영화 속 이야기가 내 기억 속 한 뿌연 조각인 양 반추하게 된다.

몇 달전에 가족여행으로 강릉을 다녀왔다. 나는 무척 흥이 나 연신 콧노래를 불러댔다. 꺄르륵 웃음을 터뜨리고 “여행 최고!”를 냅다 외쳤다.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에 신이 난 것이었다. 그런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강릉이 참 아련하게 생각된다. 강릉은 왠지 그렇다. 차디찬 동해의 색깔과 온도, 눈부신 모래사장, 키가 작은 오래된 아파트들, 쾌활한 아지매들이 닭강정을 파시는 중앙시장... 뭐랄까, 강릉은 멀어질수록 좋다. 강릉에 있을 때는 산뜻하게 행복했다면, 강릉과 멀어져 집에서 이 글을 쓸 때의 나는 약간의 멜랑꼴리에 빠진다. 강릉은 푸른 새벽에 연인을 보러 차를 몰고 달려가고 싶은 곳인데, 가족 여행으로 여행을 가버린 나는 그게 너무 아쉬운 것이다.

장거리 연애를 할 때에 전화기에 불이 나도록 애틋한 것처럼, 강릉은 멀어서 사랑스러운 곳이다. 내 마음의 고향이 강릉이라니, 너무 좋다. 나는 지금 나와 어울리는 곳에 살고 있지 않지만, 최소한 내 마음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는지, 이 애틋함과 그리움이 어떤 모습을 띄고 있는지 알 것 만 기분이 든다. 그건 바로 강릉의 한 장면. 오징어순대의 짭쪼름한 맛-한 지방을 대표하는 음식이 있다니 너무 멋지지 않은가-과, 버려진 배가 멋진 갈대숲, 가슴이 썰렁해지는 등대, 호객행위가 한창인 횟집들... 낮은 인구밀도의 한적한 곳만이 가질 수 있는 정취. 그리고 입을 벌린 해변을 낀 도시만이 가질 수 있는 호쾌함. 나는 강릉의 사랑스러운 점을 백개는 더 들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해주고 싶은 기분이다.

언젠가는 차를 몰고 진짜 내 연인과 함께 강릉에 가고 싶다. 재미없는 오죽헌도 근사하게 느껴지겠지. 소나무숲을 보며 “우리 어렸을 적에 사회교과서에서 방풍림 배웠잖아” 하고 유년기의 한 추억을 되새기기도 하고,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연인과의 미래를 이야기 하고 싶다. 이제 강릉은, 영화속 아련함이 아니라 내 마음을 지켜주는 부적같은 곳이다. 언젠가 내가 행복해진다면, 강릉에 가서 그 행복을 더 잘 빌어보겠어. 멀리 떨어져 있지만, 내 마음은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강릉을 닮았으니, 나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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