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랭키 앤 쟈니], 그리고 돌로레스 단튼을 추억하며
[프랭키 앤 쟈니(Frankie and Johnny)] 는 게리 마샬이 1991년에 연출하고, 미셸 파이퍼와 알파치노가 출연한 영화이다. 한 레스토랑이 나오는 이 영화는... 정말로 슬픔속에서도 반짝인다. 어른들의 로맨스라고나 할까. 나는 게리 마샬의 [귀여운 여인]이란 영화를 매우 좋아하는데, 한 영화 감독이 이렇게 결이 다른 영화를 내놓을 수 있구나 깜짝 놀랬다. 줄리아 로버츠의 백만불짜리 미소만큼이나, 미셸 파이퍼의 어딘가 삶의 피로에 젖은 애달픈 미소가 내 마음을 건드렸다. 나는 줄리아 로버츠의 그 청명한 미소를 사랑하면서도, 미셸 파이퍼의 생활연기에 깊이 매혹되었다.
내가 웨이트리스를 생업으로 삼게 된 전반적인 이유는 생계이지 단순히 영화에 이끌려서는 아니다. 그렇지만 '웨이트리스'를 소재로 삼은 수많은 이야기들이 날 즐겁게 한다. 인생은 영화와 달라서, 나는 [프랭키 앤 쟈니]처럼 셰프와 연애를 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우리 레스토랑은 단지 인류애와 동료애로만으로만 묶여져 있을 따름이다) 나는 옛애인을 그리워하는 상태이니까. 각설하고, 웨이트리스란 직업 이야기로 돌아가자. 웨이트리스는 서양에서는 꽤 전문적인 직업이다. 캐나다 이민시에는 가산점이 주어지는 직업이라고도 알고 있다. 그런데 왜인지 우리 나라에서 만큼은 잘 대우받지 못하는 것 같다. 서비스직 종사자들이 조금 더 대우 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나는 성남의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다. 대게 마감조로 일하지만, 가끔 오픈부터 마감까지 풀타임으로 일한다. 오픈조의 일은 이렇다. 레스토랑에 들어서면 조명(불)을 키고, 음악을 틀고, 커피 머신기를 켜고, 피클을 뜨고, 오일과 발사믹 식초를 냉장실에서 꺼내놓는다. 주전자에 물을 채우고, 빈 자리에 테이블 세팅을 한다. 간단하게 아점을 먹고, 손님들이 들어오면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한다. 순서가 중요하다. 손님이 오시면 물과 메뉴판을 가져다 드리고, 식전빵이 나가는 순서다. 어느 테이블이 먼저 들어왔는지가 중요하고, 최대한 민첩하되 부산스럽지 않아야 한다. 나는 바리스타 일도 같이 해서 디저트 커피를 내리거나, 커피 주문을 받아 메뉴얼 대로 커피를 만든다.
이렇게 노동하고 있노라면, 잡지 <좋은 생각>에 실렸던 글이 떠오른다 - 그 칼럼에는, 미국에서 웨이트리스로 몇십년간 일한 돌로레스 단튼이 나온다. 돌로레스 단튼의 직업적 자부심은 대단해서, 스스로를 (레스토랑의) 발레리나 라고 생각한다. 테이블 사이를 사뿐사뿐히 날아다니는 발레리나. 자신이 맡은 테이블에 책임감을 갖고 일해온 웨이트리스 발레리나. 웨이트리스 경력 석달인 나는, 돌로레스 단튼의 그런 직업적 자부심이 대단히 좋으면서도 그녀만큼 능숙하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러나 그녀의 그런 밝은 심성을 닮고 싶어졌다.
나는 실제로 몸을 움직이며 하는 단순하고도 어려운 이 노동에 꽤 애정을 갖게 된 것 같다. 가끔은 지루하기도 하고, 심심할 때도 있고, 바쁠 때면 너무 정신이 없기도 하다. 하지만 내 일상의 루틴을 밝고 바르게 해주는 이 노동을 통해 나는 그 어떤 공부보다도 더 많은 것을 배운 것 같다. 노동은 정직하다는 것. 예를 들어 까페모카를 만들면 눈 앞에 결과물이 나타나고, 청소한 만큼 티가 나고, 일한 만큼 임금을 받고... 또한 혼자서 잘해야 하는 일도 있지만 코워커들과의 협동심이 중요할 때도 있다는 것.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일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을 몸과 마음과 머리로 깨우쳐 나가는 중이다. '체득'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나는 요즘 딴에 재취업 준비를 한다고 토익이니 국어시험이니를 준비 중이다. 하지만 내 마음은 조금씩 이 웨이트리스 일에 기울어져 가고 있는 것 같다. 집에서는 내가 조금 더 안정적인 일을 하기를 바란다. 나의 미래가 걱정되서 하는 부모님의 걱정도 일리는 있다. 미래엔 내가 지금 처럼 건강하지 않을 수도 있고, 육체 노동이 힘들어 질 수도 있으며, 더 많은 임금을 받는 일자리가 내 미래를 위한 경제 계획(내집 마련과 결혼 및 육아 자금 마련) 에 더 훌륭할 수 도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창 밖을 우연히 보았다. 동이 터온다. 푸르스름한 새벽 빛. 영화 [프랭키 앤 쟈니]의 미셸 파이퍼의 피로한 미소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돌로레스 단튼의 건강한 숨결 같기도 하고.
하지만 내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건, 내가 일에 익숙해져 갈수록 나는 행복한 하루 하루를 보낸다는 것이다. 나는 행복한 웨이트리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