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H와의 산책

by blue

암튼 우리는 원래 경의선 숲길을 커피 한잔씩 들고 걸으려고 했었으나 미세먼지가 너무 심해서 카페 투어를 하기로했다. 카페 "대충유원지"찍고 "테일러커피"를 찍고 밥을 먹기로. 친구 H는 귀여운 트렌치 코트를 입고 와서 내 기분이 아주 좋았다. 한국에는 트렌치 입을 날이 얼마 안되 아쉬워.

그래도 산책이 아쉬워 우리는 연남동을 좀 걸었다. 처음 들렀는데 그곳 사는 주민들이 너무 많은 김광석과 너무 많은 전인권들의 버스킹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근데 길이 너무 짧아서 '연트럴'이라고 불리기엔 무리가 있다고 느꼈다. 그래도 강아지들이 너무 많았고 그게 참 보기 좋았다.

H와 나는 한국에서 외국을 느끼는 순간 들에 대해 감상을 나눴다. 사람들이 여유로이 순간을 공원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모습들이나, 노천 카페같은 낭만의 모습들. 그 유명한 점묘화를 둘이 같이 떠올렸는데 제목이 기억이 안났다. H가 최근 여행했던 베를린과 런던 이야기에 대해 들으며 깔깔 웃었다.

우리는 '대충유원지'라는 카페에 도착했고 그곳은 위스키 바 같은 새로 지어진 카페였다. 문신을 한 사내들이 커피를 내리고 있었고 우리는 그들이 이 카페의 인테리어를 담당한 사장일까 궁금해했다. 의자가 꼭 중세 기사들이 앉았던 의자 같았다. 음악은 얼핏 듣기에도 취향이 좋았다.

H는 수영하는 사진들이랑, 직장 동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사진들을 보여줬다. H의 위스키-흡연 여행담을 듣는것이 몹시 즐거웠다. 동시에 여행을 너무 많이 다닌 나머지 현타를 느낀 경험도 들려줬는데 내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테일러 커피로 이동하기로 했다.

테일러 커피는 만석이었고 우리는 연희동으로 가기로 했다. 내가 기분이 제일 하이했던 순간이 연남동에서 연희동으로 걸으며 수다 떨었던 순간들이다. 일년만에 만난 H와 익숙했던 곳으로 경쾌하게 걸으며 우리는 나혜석이 얼마나 힙한 코스모폴리탄이었는지,

그리고 그런 삶의 양식이 책을 읽는 것과 얼마나 차원이 다른지에 대해 대화했다. 참!! 가는 길목에 너무 예쁜 샵을 발견해서 귀여운 스카프를 샀다. 연희동! H는 그 곳에서 10년을 살았다. 나에게도 추억이 많은 동네. 그대로인 것들도 많았고 새 것들도 많았다.

H가 담배를 한대 태우는데 맞은 편에 아주 근사한 샵이 하나 또 있었다. 우리는 그 곳에 들어갔는데 봄에 어울리는 화사한 색들의 고급스런 옷들과 구두가 아주 많았다. 기분이 정말 좋았고... H는 두벌을 샀다. 초록색 구두가 눈에 밟혔다. H는 옷을 샀고 나는 세일중인 스카프를 샀고 뭔가 뿌듯했다.

여섯시 즈음 중식당엘 갔다. 목란에 가보고 싶었지만 차선을 선택. 칠리가지와 멘보샤를 처음 먹어보았는데 맛있었다. 지금생각해보니 칠리를 소스 처럼 찍어 먹게 했을 때 농도를 조절할 수 있으니까 풍미가 더 살지 않을까 한다. 멘보샤는 역사가 짧은 음식 같았는데 독특했다.

연희동 거리를 사진을 못찍은게 아쉽네. 조용하고 담 낮은 길. 끄아아. 감각적이 까페들. 저녁을 먹은 후 카페 보스토크에 갔다. 친화력 좋은 강아지를 만질 수 있어 행복했어 ㅠㅠ. 같이 사진을 몇장 찍었고... 또 무슨 얘길 했지? 아 [더 포스트], 천재적인 메릴 스트립, 을 찬양하다가 - 약간 내가 한심해졌는데. 연남동에서부터 요즘의 이슈와 여성주의에 대해 열을 내며 말들을 쏟았었는데. 뭔가 내가 너무 하는 게 없어 한심해졌다. (어찌보면 영화 [소공녀] 미소와 상반되는 생각이었다) 나부터 잘되야 해. 잘 살고. 그리고... 후원을 하쟈. 암튼 혼자 이런 생각이 문득 스쳤다.

저녁엔 너무 추웠고 아쉬웠다. 더 자주 만나고 싶은데 각자의 생활이 있으니까 조를 수도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뭔가 담백하게 다음을 기약하고 싶었다. H랑 공통으로 아는 친구들 이야기를 나누며 웃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옴. 급 피로가 몰려왔지만 너무 기분 좋은 날이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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