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아플 때 마주치는 모든 순간
결국 2호는 오늘도 프리스쿨에 가지 못했다.
새벽에 갑자기 열이 급격하게 오르더니 구토를 했다. 자다 일어난 아이는 구토를 하며 놀래서 소리를 지르며 울고불고 생 난리판이었다.
남편도 나도 1호도 모두 일어나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니 더 크게 울었다.
이른 아침을 모두 함께 맞이하고 1호는 아빠와 함께 여유롭게 학교로 향했다.
2호는 오늘도 역시 나와 함께 배달과 픽업 동행에 당첨!!
프리스쿨을 가지 않아 신난 2호는(아이는 프리스쿨보다 한국 선생님이 계신 패밀리 데이케어를 더 좋아한다.) 상당히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신이 나서 따라나섰다.
오늘의 코스는 총 4군데였고, 남편이 2군데를 가고 나머지를 내가 가기로 했다.
내가 가는 코스는 첫 번째는 차로 15분 거리였고, 두 번째는 거기서부터 40분을 달려가야 하는 코스였다. 아픈 2호를 태우고 가는 마음은... 매우 무거웠다. 이럴 때는 직장인이 훨씬 나았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곤 한다.
지난 이틀 동안 나를 따라다닌 이력이 있어서 2호는 오늘도 자기가 배달 박스를 들고 베실베실 웃으며 직접 전해주었다. 낯을 많이 가리는 것 같지만 이럴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이 나오는 걸 보니 딱 내 아들이다 싶다.
첫 번째 배달을 무사히 마치고 두 번째로 가는 곳은 박스를 받아와야 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40분을 창밖 구경도 하며 신나게 달렸고, 드디어 도착.
주차할 곳이 없어 멀리 세웠는데 그것도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그나마도 없었으면 계속 빙빙 돌아야 했으니까.
2호의 손을 잡고 쫄래쫄래 거래처로 향했고, 드디어 도착! 반가운 마음에 '헬로우~'인사를 하며 문을 열었다. 나 픽업하러 왔어~ 라고 닥터에게 이야기하는데 나를 보는 닥터의 표정이 이상하다. 뭐지? 왜? 나한테 오늘 여기로(생각보다 먼) 픽업하러 오라고 자기가 얘기했는데...
그가 말했다. 쏘리.
'어? 나한테 이러면 안되는데... 나 오늘 픽업 약속 지키러 아픈 아이까지 데리고 40분 운전해서 왔는데... 쏘리면 안되는 거잖아.' 그의 표정을 보면서 이 말이 목구멍까지 솟아올랐다.
그가 말했다. '미안해. 내가 오늘 집에서 가져오는 걸 깜빡했어.'
순간 그는 내게 세계 최고의 빌런으로 둔갑했다. 나는 눈을 희번덕 뜨고 싶었지만 아이 앞이었고, 거래처 사장이었다. 하아... 이런..............
알았다고, 그럼 내가 내일 어디서 픽업할 수 있어? 라고 물으니 그가 내일 자기가 운영하는 다른 곳으로 방문해달라고 했다. 알았다고 서둘러 대답하고 연신 기침하는 아이의 손을 잡고 빠른 인사를 하고 나왔다.
만약에 오늘 내가 아픈 아이를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웃으면서 '괜찮아요. 내일 말씀하신 곳에서 픽업할게요.'라고 여유롭게 말할 수 있었다. 이건 비즈니스니까.
그런데 내 일에 아픈 아이가 끼어드니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었던 일도 가장 큰 비극이 되었으며, 사소한 실수도 천하 최고 빌런이 저지른 일이 되어버렸다.
속상한 마음이 욕지기와 울음이 동시에 올라왔지만, 꾹꾹 참아 눌렀다. 내 손을 잡은 2호가 앞에 있는 배달 오토바이를 보며 신이 나서 음식을 빨리 배달하는 오토바이 좋다고 방방 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남편에게 전화해서 하소연을 할 수도 있었지만 참았다. 이 순간을 참지 않으면 내 입에서 얼마나 심한 욕이 본능적으로 튀어나올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 와서 아이와 놀아주고 있다가 도착한 남편에게 아이가 들리지 않도록 소곤소곤 이야기하고 나니 그제야 눈물이 터졌다. 사실대로 얘기하자면 남편이 현관문을 닫기도 전에 "이** 죽여버릴까요?"로 시작했다. 하아....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알았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최고의 약점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이 약점을 가지고 강인한 사람이 되려면 나는 아직 멀은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매일 더 경험치를 쌓으며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기에 괜찮다.
나는 사소한 일에 활활 타올랐던 사람이지만 내일은 더 나아질 사람이 될 거다.
오늘도 그렇게 다짐하며 나를 다독여본다.
03.09.2025 Wednes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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