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과 오영

두번째 이야기

by YJ Anne

-오영-


내 나이 스무 살 되던 해. 나는 큰 결심을 하고 탐정을 고용했다.


사람을 알아봐 주세요. 이 사람에 대한 것은 모두 다요. 혈연관계, 거주지, 재산까지도 모두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다 알려 주세요. 돈은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당찬 스무 살은 겁도 없이 탐정 사무소 간판이 달린 사무실에 뚜벅뚜벅 들어가 소파에 앉아서 덩치 큰 사내를 마주 보고 사건을 의뢰했다. 덩치 큰 사내가 머릿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파란 녀석이 찾아와 겁도 없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자기 앞에 앉아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의 다음 행동은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얼굴로 이어졌다.


덩치 큰 사내의 험악하게 생긴 얼굴에 달린 눈이 갑자기 반달로 확 접히고 입이 헬쭉 벌어지면서 내게 말했다.

“자~ 사건을 의뢰하러 오셨다고요? 좋습니다. 그럼 우리 차 한 잔 하면서 시작할까요? 어떤 커피 드실래요? 믹스, 원두, 다방 커피 등 원하는 걸 말씀하세요.”


나는 진심 이 상황이 더 무서웠다. 이 아저씨 뭐지? 이 얼굴로 세상 상냥하게 나를 대하니 빨리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지면서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더 소름 끼치는 사실은 반달로 접힌 눈이 반짝거리며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빨리 대답하지 않으면 레이저를 쏴버릴 테야 하는 눈빛이랄까?

“저… 믹스 커피 좋아요.” 간신히 숨을 토하듯 내뱉으며 말했다.


덩치 큰 사내는 육덕진 몸을 재빠르게 일으키고는 정수기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맥심 커피 스틱을 하나 들더니 종이컵에 촤르르 털어 넣고 뜨거운 물을 넣었다. 정수기 주변을 가만히 살펴보니 커피를 저을만한 숟가락이 보이질 않았다. 설마 저 스틱 봉지로 젓는 건 아니겠지? 했는데 나의 설마는 백 퍼센트 적중률을 자랑했다. 스틱을 세로로 반 접고 안을 휘휘 젓는 저 두꺼운 손가락을 나는 홀린 듯이 쳐다봤다. 한 세네 번 저었을까? 손가락이 갑자기 멈췄다. 왜 멈추는 거지? 나는 내 시선을 그의 손가락을 타고 얼굴로 올라가다가 멈춰 섰다. 그가 입을 살짝 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두꺼운 손가락에 잡혀 있는 커피 스틱이 번개처럼 그의 입가로 점프했다. 쓰읍 쓰읍 그가 스틱에 맺혀있는 커피 방울들을 흡입했다. 그리고 이어서 다시 그 스틱이 종이컵으로 향하는 순간 나는 숨을 멈췄다. 안…….돼.


“아….안” 나도 모르게 뿜을 뻔했다. 우주 멀리 날아가려는 정신줄을 간신히 부여잡고 그를 바라보다가 둘이 눈이 딱 마주쳤다. 그는 제정신을 차린 듯 다시 따뜻한 커피 속으로 찾아가려는 스틱을 멈췄다. 함께 제정신을 차린 스틱은 쓰레기통 안으로 탁 소리를 내며 명쾌하게 들어갔다.


덩치 큰 사내는 다시 반달눈을 되찾고 두 잔의 커피와 함께 소파에 앉았다. 앉음과 동시에 그가 입을 열었다.

“자~ 언니를 찾고 계신다고요? 수임료는 호주에 사신다고 하시니 호주 달러로 받겠습니다. 페이팔로 송금해 주시면 됩니다.” 그는 시간당 수임료와 실제 사용된 식대, 부대비용 등을 첨부해서 매주 인보이스를 이메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한국에서 송금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그가 너무 신이 나서 설명하는 바람에 말하고 싶은 욕구를 눌러 없애버렸다.


사내의 설명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커피컵으로 손을 뻗었다. 커피색이 내가 아는 색보다 조금 연해 보였지만 그래도 한 모금 정도는 마셔주는 게 예의 일 것 같아서 호로록 맛을 보았다. 커피가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가 혀에 닿는 순간 나는 그가 무슨 설명을 하는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세상천지 이렇게 맛없는 커피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또 왜 이렇게 싱거운지. 물 양은 정확했다. 그런데 싱겁다는 얘기는? 설마, 이 사람 스틱 하나를 가지고 두 잔을 탄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확신했다.

이 새끼. 커피 아꼈다. 지금 나한테. 짜디짠 새끼. 나는 매의 눈을 하고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반달눈은 여전히 나를 보고 웃으며 설명했고, 나는 그를 노려보느라 설명을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반달눈의 덩치 큰 사내는 이토록 싱거운 커피를 세상 맛있게 호로록호로록 들이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맥심 커피조차 아끼던 덩치 큰 사내는 일주일 정도 뒤에 연락이 왔다. 그에게서 받아 든 서류에는 언니에 대한 모든 것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을 쭉 시간대 별로 나열해 놓은 것처럼 내용은 아주 자세했다. 지금 현재 어느 직장에 다니고 무엇을 하며, 또 남들이 쉬는 주말에는 무얼 하는지. 심지어 친한 사람들의 대략적인 인적사항과 연락처까지.


반달눈의 사내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일을 잘 해냈다. 누가 나에 대해서 알아봐 달라고 이 사람에게 의뢰할 일이 있을까 봐 두려울 정도였다. 그가 청구한 수임료는 납득할 만한 수준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핸드폰을 열어 그가 청구한 인보이스에 적혀 있는 금액을 바로 송금해 주었다. 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연락을 주기로 하고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출입문으로 향했다. 그때 그가 나를 부르더니 말했다. 언니가 책을 많이 좋아한다고. 그동안 언니가 도서관에서 대출한 목록과 특별히 좋아하는 책도 표시해 놓았다고 말했다. 출입문을 나서며 나는 속으로 읊조렸다. 세심한 새끼. 일 진짜 잘하네. 당시의 나는 겁도 없고 싸가지도 없는 스무 살 외로운 망나니였다.



-여전히 오영-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이영에게 편지를 쓰자니 옛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영이 요양원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했을 때부터 생각했던 일이었다. 일이 바빠 차일피일 미루던 노트가 이영이 쓰러지고 나서야 내게 정신 차리라는 듯 머릿속에서 호되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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