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번째 이야기
-오영-
“혜화역 4번 출구에서 5시 30분 오케이?”
이영이 잇몸을 드러내고 활짝 웃으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마치 빨리 나도 집으로 가라는 듯이. 자기는 큰길로 쭉 걸어 올라가면 나온다고 얘기하면서 연거푸 딸꾹질을 했다.
“집이 어딘지 모르겠지만 내가 같이 걸어갈 수 있어.” 내가 말했다.
“딸꾹, 아닙니다.” 이영은 진짜 취했는지 마치 군대에서 선임에게 보고하듯이 나에게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웃기기도 하고 기가 막혀서 이영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이상한 사람이 다가오면 제대로 줘패줄 수 있습니다. 정말 술 하나도 안 취했고, 이 큰길로 쭉 따라서 올라가면 딸꾹, 금방이야. 딸꾹.”
누가 봐도 취했다 싶을 정도로 다리를 휘청휘청하면서 뭘 믿고 혼자 걸어가겠다는 건지 나는 슬슬 짜증이 났다.
‘나보다는 술이 약한데 고집은 오지게 쎄고. 쯧쯧 골칫덩이가 되지 않으면 다행이겠네.’
나는 이영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다가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라도 술 취한 이영을 누가 해코지라도 하면 어떡하나. 자꾸만 뒤를 돌아보다가 도무지 안 되겠기에 이영 쪽으로 걸어갔다. 이영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알아채면 또 어서 가라고 나를 채근할 테니 그냥 들키지 않는 것이 속 편했다.
술에 취해 느릿느릿 걸어가는 이영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내가 아는 노래였다. 뮤지컬 렌트에 나오는 넘버 였는데 미미라는 캐릭터가 로저를 꼬실 때 부르는 노래였다.
[Out tonight]
미니스커트에 속살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옷을 입고 섹시한 춤을 추며 주인공을 향해 오늘 밤 나랑 함께 사랑을 나누자고 그린 라이트를 난사해버리는 작업송이었다. 이영은 그런 노래를 마치 국악에서나 나올 법한 장송 곡조로 흥얼거리고 있었다. 혹여라도 지나가던 나쁜 사람이 저런 노래를 듣는다면 순간적으로 착하게 마음을 고쳐먹을 만큼 무서운 음조였다. 하아…… 너무 창피해서 안전이고 뭐고 그냥 따라가지 말까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이영이 어디 살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일 잘하는 덩치 큰 흥신소 사내가 준 서류에 다 나와 있었으니까. 가까이 가기엔 너무 창피해서 아는 척하지 않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걸었다. 이영의 장송곡은 오피스텔 문을 여는 순간까지 이어졌다. 문이 닫히는 순간 나도 모르게 큰 숨을 내뱉었다. 다행이었다. 이제 더는 듣지 않아도 됐으니까.
이영이 무사히 들어가고 나는 서둘러 택시를 타고 내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내일 아침에 숙취에 괴로워하지 않으려면 해장 드링크를 마셔야 했다. 미리 총알 배송으로 시켜 놓은 해장 드링크 한 병을 꺼내 들었다.
“캬~ 한국은 이런 게 참 편해. 호주에서는 총알 배송이고 뭐고 일주일 안에 도착하면 빠른 편인데. 그나마 코로나 시국을 기점으로 배송이 가능한 곳이 많아졌으니 다행이지.”
해장 드링크를 벌컥벌컥 마시고 나니 긴장이 풀려서 졸음이 몰려왔다. 씻는 것도 옷을 갈아입는 것도 모두 귀찮았다. 뭐 어떤가. 나는 침대에 벌러덩 누워서 발가락을 까딱거리며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다음날 나는 출발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까지 자버렸다. 눈을 뜨니 이미 4시가 넘어 있었고, 화장을 지우지 못해 얼굴은 퉁퉁 부어있었다.
“아씨……………………. 번개처럼 씻어야겠다.”
이영과 혜화역 4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 약 1시간이 채 안 남았다. 가는데 30분 잡으려면 서둘러야 했다.
이영이 먼저 나와 있던 혜화역 4번 출구에 도착했을 때 나는 감쪽같이 준비되어 있었다. 부스스한 머리는 깔끔하게 묶어 버렸고, 화장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떡칠이 되어 있었으며, 이국적인 느낌을 주고 싶어 컬러 렌즈까지 장착했다.
“이야~ 오영!! 너 누가 보면 소개팅 나가는 줄 알겠다. 풀메이크업 제대로 꾸미고 나왔네? 이러면 그냥 흰 티셔츠에 청바지 입고 온 나는 완전 쭈구리 되는거 아냐?”
“쭈구리는 무슨, 하얀 티셔츠에 청바지 아무나 어울리는 거 아닌 거 몰라?”
서로 안부 아닌 아부 같은 것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극장으로 향했다. 극장 입구는 작았다. 마치 호빗족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정도의 크기랄까? 티켓을 확인한 후 우리는 몸을 한껏 웅크려서 지하에 있는 공연장 입구로 들어갔다.
“내가 여기 몇 번 와봤는데 계단이 가파르니까 조심조심 내려와야 해. 알았지?”
마치 무슨 어린애 가르치듯이 이영이 말했다. 다행히 극장 안으로 들어서니 좌석은 잘 표시되어 있어서 별 무리 없이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이영이 내게 속삭였다.
“나 화장실이 너무 급해서 얼른 다녀올게. 큰 거라서 금방 못 오니까 시작해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보고 있어.”
나는 이영에게 오케이 싸인을 주고 이영은 좌석을 떠났다.
관중들은 어둠 속에서 자기 좌석을 찾느라, 팜플렛을 들춰보느라, 배우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느라 바빴다.
“들었어? 진짜 배우들이 아니래. 자기네들끼리 돈 모아서 연습하고 무대 올린 거라던데?”
“진짜 배우가 아니라고? 설마. 아무리 소극장이라지만 이런 극장 빌리는 돈도 비싸고, 또 전공이 아니면 연습은 어디서 해? 그리고 내 친구 얘기 들어보니까 잘한다던데?”
“이따 밖에 나가서 팜플렛 자세히 읽어봐. 티켓값은 안 받고 관객들이 만족하는 만큼만 기부금으로 받을 거라고 적혀있어.”
오옷! 횡재했다. 나도 고등학교 때 뮤지컬 동아리에서 같은 뮤지컬을 무대에 올린 적이 있었다.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돈 주고도 못 살 경험을 샀다는 사실에 기분 좋은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어쩐지 티켓 값을 안 받더라니. 나는 무슨 행사인 줄 알고 신청했는데 뜻밖의 큰 성과가 아닌가.
‘끝나고 이영에게 고등학교 때 올렸던 내 무대 이야기를 해줘야지.’ 생각하는 중에 시작을 알리는 듯이 사방이 깜깜해졌다.
‘어지간히 힘을 주나 보네. 시작할 때까지 오지도 않고.’
걱정되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아쉬운 건 내가 아니라 이영이니까.
무대가 암전되고 내게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Seasons of love’ 렌트에서 이 곡을 빼놓을 순 없지. 무대 뒤에서 누군가 허밍으로 부르고 있었다. 여자 목소리였다.
‘이런 스타트, 새로운데?’
아무런 음악도 없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허스키한 목소리의 허밍 소리는 관중을 순식간에 숨도 못 쉬고 집중하게 만들었다.
허밍이 끝나고 핀 조명이 무대 중앙을 가로질렀다. 핀 조명은 무대를 휘휘 젓다가 오른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여자를 비췄다. 그녀는 청바지에 흰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누가 봐도 평범한 복장.
‘어? 청바지에 흰 셔츠? 우연인가? 오늘 이영이 입고 왔는데. 이 여자. 설마…………너, 이영?’
그날 나는 그냥 취미 생활 동호회였지만 뮤지컬 감독으로 데뷔한 이영을 보았다.
그녀가 연출한 렌트는 기존 작품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더 신이 났고, 춤 선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모두들 연기에 진심이었다. 이영은 배우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악기로 만들었다. 반주는 최대한 간결하게, 배우들의 화음은 최대한 촘촘하게. 그래서 어느 것 하나 빈틈이 느껴지지 않는 무대였다.
‘이런 무대를 네가 만들었단 말이지. 이영 당신이.’
이영이 연출한 무대를 보면서 괜히 내가 섰던 무대가 겹쳐 보였다. 그때 내가 했던 실수들.
‘너의 멋진 무대를 보면서 나는 왜 나의 창피했던 무대만 떠오르는 걸까?’
렌트에서 거의 주인공인 미미 역할을 맡았던 나는 긴장을 많이 해서 고음 처리가 고르지 못했었다. 수많은 연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총 4번의 공연 중에 2번이나 고음 파트에서 실수하는 바람에 진짜 배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대 공포증이 생길 뻔했었다.
나는 배우였고, 이영은 연출자였기에 애초부터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질투가 나서 눈자위가 화끈거렸다. 가진 것은 내가 더 많은 것 같은데도 내게는 이영이 더 우월해 보였다.
이영이 잘했으면 좋겠기도 하지만 잘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장미꽃의 가시처럼 자꾸만 내 심장에 생채기를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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