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혼잣말이 내게로 왔다

그림자, 때문에, 당신/스파이글쓰기 5주차

by 슈가정원

사람은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은 어느 순간 한 사람의 모습이 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닮아버린 말투와 생각들을 발견할 때면 가끔 낯선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나의 첫 독립은 결혼이다. 집에서 대학을 다니고 직장도 집에서 출퇴근이 가능했기에 29살이 되던 해 5월, 태어나 부모님과 물리적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한 것이다. 사랑하지만 타인이던 사람과의 제2의 인생은 예측했지만 불협화음인 부분이 많았고, 그 안에서 충격적이었던 사건이 있다.



"너는 왜 항상 불만이 섞인 이야기를 혼잣말처럼 하면서 다 들리게 하는 거야? 차라리 나한테 대놓고 말을 하라고! 장모님 같아."



내가 이렇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신랑의 한마디에 얼굴이 화끈거렸던 기억이 새겨진 흉터처럼 선명하다. 언제나 설거지나 청소기를 밀면서 마음속에 찬 미움과 설움, 불만을 '들리는 혼잣말'로 내뱉으며 주변을 불편하게 하던 엄마 모습은 정말 닮고 싶지 않은 모습 중 하나이다. '당신의 이 행동으로 우리가 얼마나 눈치를 보며 지내는지 아느냐'라고 목놓아 외치고 싶었던 날이 수두룩이었는데, 내가 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소름 끼치게 싫어 최대한 자중 하려고 애쓰고 또 애쓰며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




그러나 17년의 시간이 무색하게도 밝은 달이 떠오르면 으레 나타나는 분신 같은 그림자처럼 나는 여전하다. 그리고 한 편으로 이렇게 속풀이 하는 그녀를 이해하는 경지에 이른 듯하다. 오죽 답답했으면, 얼마나 본인의 설움이나 분노를 다른 사람이 알아주고 들어주길 원했으면 그랬을까!



결코 옳은 행동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들어주는 이 하나 없이, 혼자서 그 많은 살림을 꾸리고(남편이 있지만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자 가부장적인 나의 아빠, 그러나 자식에게는 다른 모습을 보이던, 너네한테는 잘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분), 3년 터울의 자식 둘을 위해 일까지 해야 하던 상황에서 엄마가 할 수 있는 가장 손쉽고 즉각적인 해소법이 '들리는 혼잣말'이었던 것이다. 사실 성인이 된 후에는 이 푸념 같은 말을 새겨듣고 행동을 조심하거나 엄마를 위해 시간을 낸 적도 있기 때문에 이해라는 단어를 선택할 수 있다.



내가 보고 자란 뒷모습은 자연스레 나에게 다가와 흔적을 남기고, 사라지지 않고 내 삶으로 다시 침투해 나의 일부가 되어 '이해'를 불러일으켜 내 행동의 방어막이 되어 준다. 닮고 싶지 않지만 스며드는 것까지는 막지 못한 엄마의 인생은 점점 나이가 차는 딸에게 전해져 어느새 우리는 많은 부분이 닮아 간다. 가끔 거울 속에서, 혹은 무심결에 내뱉은 말투 속에서 엄마를 마주칠 때 이제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는다. 그저 '아, 내 안에 여전히 그녀라는 커다란 물줄기가 잔잔히 흐르고 있구나.' 하며 조용히 받아들일 뿐이다.



그리고 나를 통해 세상의 빛을 본 나의 아이들에게도 또 다른 흔적이 새겨지는 중이다. 우리의 시선과 생각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남을 손맛의 흔적까지 아로새겨져 더 풍성한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훗날 나의 아이들이 자라 나처럼 자기 안의 나를 발견하게 될 때, 그 흔적이 부끄러운 흉터가 아닌 그리운 온기로 남기를 바란다. 어쩌면 우리가 닮아가는 과정은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