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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Anne Aug 27. 2023

세상을 향한 나의 [몫]은 과연 얼마만큼 일까

<몫> 최은영, 손은경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정말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매 순간 키보드에 닿는 손가락이 길을 잃었다.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무엇에 관해 풀어내고 싶은지도 명확하지 않아서 어떤 글자를 입력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마음마저도 손가락의 브레이크가 되곤 했다.


물론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그래도 나크작 멤버로 글 벗들과 함께 2년이 다되도록 삶을 글로 나누고 나니 쓴다는 행위에 대한 두려움은 많이 사그라들었다. 부족한 나에게 늘 따뜻한 마음으로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은 나크작 글 벗들의 도움이 정말 컸다.


림크작님의 추천으로 읽게 된 최은영 작가의 단편소설 <몫>은 나에게 여러 갈래로 다가왔다.

책을 읽는 독자의 나와 글을 쓰는 작가의 나.


2인칭의 글을 읽는 것도 실로 오랜만이었다. 신경숙 작가님의 <엄마를 부탁해>가 나에게는 가장 인상적이었던 2인칭 소설이었는데 이 책도 앞으로 손에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여자로서, 글을 쓰고 싶은 사람으로서 마주한 <몫>은 마치 내가 해진이 되어 희영과 정윤을 만나고 있는 듯한 기분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래서 해진으로 낭독되는 문장 하나하나가 내 가슴에 탁! 하고 꽂히는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이 부분이었다.


[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 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그 누구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 단단하고 강한 글을, 첫 번째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글을, 그래서 이미 쓴 문장이 앞으로 올 문장의 벽이 될 수 없는 글을,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서 잠겨 있는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언어로 변화시켜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는 글을.]


내가 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던 순간들을 되짚어 보면 정말 딱 이 문장이 와닿는 순간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카르페 디엠 : 오늘을 즐겨라]는 나도 이 책을 읽기 전의 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해진이 말하는 정윤의 이 단단한 글의 이미지를 그려봤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분의 글을 읽기 전과 읽고 난 후 나의 글을 바라보는 프레임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하지만 그렇게 뒤바뀐다 한들 글은 나에게 쉽게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


[글 쓰는 일이 쉬웠다면, 타고난 재주가 있어 공들이지 않고도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당신은 쉽게 흥미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렵고, 괴롭고, 지치고, 부끄러워 때때로 제대로 쓰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밖에 느낄 수 없는 일, 그러나 그 시기를 쓰는 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당신은 마음을 빼앗겼다. 글쓰기로 자기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다시 글을 써 그 한계를 조금이나마 넘어갈 수 있다는 행복을 알기 전의 사람으로 당신은 돌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이 문단이 나에게는 가슴 절절하게 와닿기도 하면서 또 쓰고자 하는 나의 의지를 활활 불태우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 소설에서 희영의 한마디는 쓰고 싶은 사람으로서의 나를 한껏 부끄럽게 만들기도 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을 털어 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으로 사는 사람들. 편집부 할 때, 나는 어느 정도까지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아. 내가 그랬다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달랐겠지만.]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몫]은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내 몫을 하고 있는 사람일까? 하고 있다고 믿고 싶은 사람일까?

희영의 이 한마디는 쓰고 싶은 사람으로서 자꾸만 나에게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지. 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마지막 책을 덮고 나서는 노트북 앞에 앉을 때마다 자문하게 된다.

너는 어떤 사람으로 글을 쓰고 싶은지… 세상을 향한 너의 [몫]은 과연 얼마만큼 일지…


아마 내가 글을 써보겠다고 버둥대지 않았다면 독자로서의 깊은 인상만 받았겠지만 글을 쓰는 행위로써 세상을 마주하는 작가로서도 이 책은 참으로 소중하다. 글을 마주한 이로 하여금 자기 자신에게 수많은 질문을 하게 만드는 [몫]을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Q : <소설>은 현시대에 어떤 힘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A : 씻기지 않는 외로움이 느껴질 때가 있다. 돈을 써도,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봐도, 열 시간씩 인터넷을 해도 사라지지 않는 외로움 같은 것이. 그럴 때 좋은 소설을 읽으면 그런 공허감, 외로움이 얼마간은 지워지는 경험을 한다. 덜 아프다. 그런 독서 경험을 할 때면 다른 사람들도 이런 순간을 경험했으면 하는 소망을 하곤 한다. 좋은 소설을 읽고, 조금이나마 채워지고 위로받을 수 있는 순간을.]

최은영 작가님의 말씀처럼 소설이 지니고 있는 이 힘을 알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 역시도 이 책을 통해 채워지고 위로받았으니 오늘 밤은 조금 덜 외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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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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