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병원에 입원하다-part 4

그러니까 있을 때 잘해야지

by YJ Anne

몇 시쯤 됐지? 하며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고 있는데 반가운 얼굴 둘이 사이좋게 병실 문을 빼꼼히 열었다. 아… 보고 싶고 또 보고 싶던 내 보물 1호. 얼굴을 보는 순간 눈물이 울컥했다. 그런데 1호의 얼굴 뒤로 이미 눈물 폭포가 쏟아지는 이 있었으니 바로 남편이었다. 내 남편 맞나 싶을 정도로 요즘 부쩍 눈물이 많아진 것 같은 건 그저 느낌일까?


1호는 동생의 얼굴을 보니 반가워 방긋 웃다가 이내 시선이 동생의 왼쪽 옆구리로 향했다. 연결되어 있는 호스를 쭈욱 쳐다보더니 내심 놀랬나 보다. 동그랗게 놀란 눈이 찡찡거리는 동생 주변을 맴돌면서 계속 걱정스레 쳐다보고 있었다. 행여 아이가 더 불안해할까 걱정이 되었다. 나는 많이 아팠는데 수술하고 나서 이제는 괜찮다고, 저 호스는 몸에 머무르면 안 되는 물을 빼내는 호스인데 동생 몸에서 모두 빠지고 나면 다시 제거할 거라고 차근차근 설명했다.


본래 눈앞에서 볼 수 없을 때 더 걱정이 되고 무서운 상상력은 배가 되는 법이다. 1호의 입장에서 보자면 어느 날 아침 아무렇지도 않게 학교에 등교했다가 집에 오니 엄마도 동생도 없었다. 그리고 보지 못하고 걱정만 하는 날이 이미 3일이나 지났다. 그동안 얼마나 걱정이 되고 무서웠을까. 다행히 동생과 엄마를 만나고 돌아간 이 날밤은 조금 더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고 하니 동생을 확인하고 나서 안심이 되었을 1호가 안쓰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형제자매들이 그러지 않을까 싶은데 우리 집 장난꾸러기들의 관계도 별다를 바는 없다. 옆에 없으면 애틋하고 같이 있으면 피 터지게 싸우는 이름 하야 처절한 애증 관계. 병원에서 보내는 동안 엄마와 떨어져 있었던 1호와 늘 형과 함께 엄마의 관심을 나눠 갖다가 생애 처음 온연히 아스팔트 위에 껌처럼 엄마와 딱 붙어 지내는 시간을 알아버린 2호. 서로 애틋했던 순간은 5분이나 채 됐을까? 형이 옆에 있으니 아픈 2호의 미친 떼쟁이 모드는 초강력 부스터를 달았다.


보고픈 마음을 꾹꾹 누르고 있을 때는 졸음이 쏟아지는 나무늘보 마냥 가질 않던 시간이 왜 함께 있는 순간에는 전투기가 날아가듯 쏜살같이 사라지는지… 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는데 우리도 데려가 달라며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엉엉 울며 떼를 쓰고 싶은 마음이 목젖까지 올라왔다. 함께 있으면 끝날 것 같지 않은 이 악몽도 지나갈 때까지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넷이 함께 한 공간에 있다가 이 끈끈함을 잠깐이지만 놓으려 하니 현실을 거부하고 싶어 몸서리가 쳐졌다. 2호도 이제껏 형을 쳐다보지도 않다가 빠빠이 인사를 하니 갑자기 얼굴이 벌게지며 핏줄이 튀어나오도록 온몸에 힘을 주어 대성통곡하며 울기 시작했다.


야속하게도 이때 내 머릿속에 불현듯 고개를 쳐든 이성은 ‘그러니까 있을 때 잘하지. 사람은 잃어봐야 그 중요성을 안다니까. 지나고 후회해 봐야 소용없어.’ 라며 얄궂게 속으로 속삭였다. 냉정하고 야속한 이성 같으니라고. 서글프게 우는 아픈 아이를 보니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내 모습조차 짜증이 났다. 다 맞는 말인데 정말 짜증이 났다.


다행히도 아이의 울음이 조금 진정되고 나니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폐로 연결된 호스에 약품을 주입해서 조금 더 수월하게 차있는 물이 빠져나올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처치를 해주신다고 하셨다. 한참 약을 주입하고 있는데 2호의 옆구리 쪽에 큰 얼룩이 보였다.


안 그래도 이날 오후에 아이가 답답한지 침대에서 몸을 꾸물꾸물 댔다. 아이의 움직임에 자꾸 호스가 앞뒤로 들썩이니 체액이 조금씩 밀려 나와 등 뒤에 깔아놓은 매트에 피얼룩이 져있었다. 그래서인지 큰 얼룩에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 처치하고 계신 의사 선생님께 물었다.


‘이거 폐로 연결된 구멍에서 호스로 말고 옆으로 줄줄 새고 있는 것 아닌가요?’


내 말에 의사 선생님도 주입하시던 약품을 마저 다 넣으신 후에 아이의 몸을 이래저래 살피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이어지는 선생님 표정이 조금 어리둥절하셨다.


‘이 얼룩이 좀 이상한데요? 너무 브라운인 것 같지 않나요?’


브라운? 갈색? 응? 그렇다면 엉덩이? 하는 생각이 들어 아이의 등 뒤를 들고 담요를 들춰내어 확인하려는 순간 내 눈에 아주 큰 갈색 얼룩을 품고 있는 매트리스 커버가 확 들어왔다.

‘어라? 이게 뭐지?’ 하며 자세히 들여다보려 고개를 숙여 아이의 엉덩이를 들어 올리는 순간.


아뿔싸. 나는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다.


매트리스를 뒤덮은 그것은 응가였다. 아주 묽은 갈색 액체가 아이의 내복 바지와 침대 커버를 하나로 붙여버렸다.


되짚어 보면 사연은 이랬다. 아이의 몸에 호스로 연결된 부분으로 인해 아이는 하루 종일 통증을 느끼기 때문에 진통제를 주사함으로 통증을 조절했다. 그렇기에 간호사는 아이가 변비에 걸려 힘들어하지 않도록 하루에 한 번 변을 보지 못하면 변비약을 먹여야 한다고 했다. 우리 2호는 평상시에도 변비가 좀 있는 편이라 예의 주시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첫 입원한 이틀은 변을 잘 보았지만 어제부터 오늘 아침까지 아이에게 신호가 오지 않아 오전에 변비약을 먹였다.


다행히 약을 주입하던 의사는 늘 있었던 일인 것처럼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퇴장하신 듯 보였지만 내 얼굴은 화끈거렸다. 나는 서둘러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아이의 침대 시트를 갈고 옷을 갈아입혔다. 당장은 드레인 때문에 샤워를 할 수 없으니 수건을 물에 적셔 닦아 주는 것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최대한 꼼꼼하게 닦아 주었는데 마음은 계속 께름칙했다.


이때 기저귀를 갈고도 자기 전까지 세 번이나 더 갈아야만 했고, 아이의 물똥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수시로 기저귀를 채우는 큰 볼일 때문에 아이의 똥꼬는 벌겋게 헐었고 기저귀를 갈고 연고를 발라 주는 내 손은 자정이 넘어가도록 쉴 틈이 없었다.


자정이 넘어가고 12시 반쯤 되었을까? 병실 안에 있는 모니터가 시끄러운 알람을 울리기 시작했다. 지난번처럼 아이의 심박수는 떨어지고 있었고, 간호사는 알람 소리를 듣고 달려온 이후로도 수시로 찾아와서 모니터의 숫자를 확인하고 갔다.


그러다 담당 간호사가 갑자기 병실 안으로 큰 트롤리를 밀면서 들어왔다. 내가 당황한 눈빛으로 쳐다보니 아이의 심박수가 너무 낮아서 심전도를 체크하라는 담당의사의 지시가 있었다고 알려주었다. 아이가 자고 있을 때 몸에 20개 정도의 전선을 연결해서 정상인지 체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자고 있는 아이의 옆에서 간호사가 조심조심 전선에 붙어있는 테이프를 떼서 아이의 몸에 붙이는 순간, 아이가 눈을 번쩍 떴다. 그러고는 당황하고 겁을 먹어서 인지 온몸으로 발버둥 치며 울었다.


이미 장비를 확인한 아이는 쉽사리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결국 간호사는 아이가 잠들 때까지 기다려야겠다며 병실을 떠났다. 몸에 전선을 붙이지 않겠다고 엉엉 우는 아이를 간신히 달래서 재웠다. 내 작은 움직임에도 아이의 속눈썹이 떨리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간호사를 호출했다.


지금이라고, 바로 지금 아이가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을 때 측정하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우리는 마치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훔치는 도둑들처럼 아이의 몸에 전선에 연결된 테이프를 마치 다이너마이트를 연결하듯이 붙이기 시작했다. 간신히 성공한 우리는 심전도를 체크했고, 간호사는 별 이상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나를 향해 웃어 보였다.


나는 아이의 심전도 결과가 괜찮아서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반면에 자지러지게 울던 아이의 모습이 겹쳐 올라와 기분이 이상해졌다. 아… 모르겠다. 아이의 심전도가 괜찮다니 이보다 더 다행인 게 어디 있을까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굳이 지금 이 새벽에 아이를 대성통곡하게 만들어야 할 일이었나 싶은 어리석은 생각도 들었다. 위급하다면 이보다 더 위급한 일도 없을 텐데… 조금 잘 된다 싶으면 고개를 쳐들고 올라오는 경솔한 내 머릿속 생각들이 지금 떠올려보니 정말 어리석었다.


아이의 안전보다 중한 것이 어디 있다고. 마치 내가 아직도 철들지 않은 어른인 것처럼 느껴졌다.


#감기 #폐렴 #독감 #아이입원기 #호주어린이병원 #호주병원

#앤크작 #나크작 #작가앤

매거진의 이전글어린이 병원에 입원하다-part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