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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Anne Nov 11. 2023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치열하게 사랑하기를...

진이, 지니 - 정유정

‘우리는 모두 죽는다’ 언젠가는 반드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어떤 순간이 온다. 운명이 명령한 순간이자 사랑하는 이와 살아온 세상, 내 삶의 유일무이한 존재인 나 자신과 작별해야 하는 순간이다. 그때가 오기 전까지, 치열하게 사랑하기를, 온 힘을 다해 살아가기를… [진이, 지니] 중에서...


초록색 겉표지를 직접 손으로 만져보지는 못했지만 밀리의 서재 화면으로는 볼 수 있었다.

왠지 푸릇푸릇한 이야기를 품고 있을 것만 같던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작가 정유정 님의 [진이, 지니]. 그동안 읽었던 그녀의 이야기들은 죄다 검은색이었다. 짙다 짙다 못해 온갖 색을 다 빨아들일 것 만 같은 블랙홀처럼. 특히 [종의 기원]을 읽고 나서는 한동안 나를 짓누른 암울함에서 헤어 나오기가 힘들었던 것도 같다.


제목조차도 명랑한 냄새를 폴폴 풍기는 이번 책은 한쪽 귀에 에어팟을 끼고 밀리의 서재에서 오디오북 시작 버튼을 누른 후 대략 한 시간 반 정도가 시간이 지나기까지 명랑함을 잃지 않았다.

그런데 2장이 시작되는 순간 뭔가 느낌이 쌔했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육사가 우연히 보노보를 구출하게 되고 안전히 영장류 센터로 복귀해서 돌보다가 일어나는 좌충우돌 이야기라고 지레짐작했던 내 뒤통수를 작가는 제대로 후려갈겼다.


영장류 센터로 돌아가던 중 고라니를 피하려다 일어난 사고. 그로 인해 운전자인 장교수는 큰 부상을 당하고 함께 있던 사육사 이진이와 보노보는 사라진다? 아니, 사라진 줄만 알았던 사육사 이진이가 등장하는데 어라? 몸의 반응이 이상하다. 발을 손만큼 잘 쓰고 있고, 등이 구부정해졌으며 두발보다는 한 손을 더 보태어 걷는 것이 편하다. 이진이, 그녀는 정상일까?


그랬다. 서른다섯 살 퇴사를 하루 앞둔 사육사 이진이는 사고로 온몸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병원에서 수술 중이다. 그리고 그녀의 영혼은 마치 운명처럼 만난 보노보 지니의 몸에 난데없는 침입자가 되어 기생 중이다.

책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그녀가 수술실부터 중환자실에서 보냈던 4일 동안의 시간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동물원에서 마주친 백수건달 김민주를 우연히 다시 만나 가족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은 황당무계한 빙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도움을 요청하지만 진심은 돈으로 통한다고 했던가? 1천만 원이라는 금액으로 민주의 합의를 받아낸다.


지니의 영혼 속에서 그녀가 맞닥뜨린 진실은 결국 그녀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만 보노보 지니도 영혼이 붕괴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야기의 구성은 굉장히 짜임새 있고 탄탄했다. 작가는 잠시도 지루할 틈을 내주지 않았다.

그리고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였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진이처럼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서 모두를 지킬 수 있을까?

아니면 삶을 이어가고 싶은 욕심에 지니에게 희생을 강요했을까? 


사실 내 코앞에서 직접 마주친 현실이 아니면 어떤 마음이 진실일지는 나조차도 알 수가 없지만 상상을 해보게 됐다. 그리고 또 하나, 만약 진이처럼 사육사가 아니고 동물과 관련이 없는 직종의 사람인 내가 이런 상황을 맞닥뜨린다면 어떤 결단을 내리게 될까?


작가 정유정이 던지는 질문은 가지에 가지를 뻗어나가 책을 다 읽을 즈음에 다다르니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 진이와 지니, 진이의 엄마 그리고 김민주와 함께 들여다본 세상은 너무나도 살고 싶은 세상이었다. 삶의 어느 순간은 무의미 한 잿빛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겠지만 혹시라도 허락된다면 더 욕심을 부려보고 싶은 생이었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해야겠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었다. 지니 앞에 엎드려 애원해서라도, 살고 싶었다. 너의 생을 내게 양보해달라고 떼를 써서라도 살고 싶었다. 그것은 내 안, 가장 깊은 바닥에서 울리는 본성의 목소리였다.” [진이, 지니] 중에서...


지니에게 애원해서라도 살고 싶었다는 진이의 솔직한 고백은… 어느새 내 고백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야 나는 진이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왜 작가 정유정은 책의 마지막에 치열하게 살아가기를… 온 힘을 다해 살아가라고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었는지는 작가의 말에 나와있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진이가 머물고 있는 시간의 세계가 작가의 머릿속에 어떻게 떠올랐는지…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중환자실에서 며칠 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이 계셨다고… 그때 엄마의 영혼은 어디에 머물고 있었을지가 궁금했다는 그녀가 가엾기도 했지만 엄마는 가슴이 뻐근하도록 딸이 자랑스러웠겠구나 싶었다.


이야기가 떠오르자마자 일 년을 넘게 준비하던 소설을 접고 바로 써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는 그녀의 고백이 독자로서 마음 뜨겁게 고마웠고, 작가로서는 몸서리치게 부러웠다.

오디오북으로 읽어서 더 재미있기도 했지만, 작가 정유정의 단어들을 직접 눈으로 맞아들이고 싶어 다시 활자로 만나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내 가슴속 서재 한켠에 소중한 책으로 담아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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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밀리의 서재,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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