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국이면 어때, 생일을 맞이했잖아
생일이라고 무사히 지나가게 해 줄쏘냐? 열 귀신은 아이에게 들러붙어 떠날 줄을 몰랐다.
겨우 6시나 되어서야 눈을 붙였던 것 같은데… 8시 남짓 간호사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기절하듯 잠들어 있던 나는 겨우 눈을 떴는데 아이의 발가벗은 작은 몸은 타오르고 있는 장작 더미마냥 벌겋게 익고 뜨거웠다. 당장 해열제를 두 종류 모두 먹어야 한다며 간호사가 내게 약이 든 주사기 두 개를 내밀었다. 나는 몸을 세우고 간밤에 찾아온 요로 감염으로 인해 열이 끓는 아이를 품에 안아 들고 깨웠다.
한 번도 먹이기 힘든 약을 두 번이나 연타로 홈런을 쳐야 하니 울며 힘주어 고개를 돌리는 아이에게 온갖 아양을 다 떨어본다. 결국은 30분이나 지나서 내 영혼이 마지막 한 방울까지 탈탈 털린 후 성공의 나팔을 불었다.
해열제의 열일 덕분에 2호의 벌게진 얼굴은 점점 다시 제 빛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와 눈을 맞추면 제일 먼저 ‘생일 축하해~’를 속삭여주고 싶었는데 난리법석 약먹이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홀랑 날아가 버렸다.
익숙한 카카오 페이스톡 알림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통화 버튼을 누르니 엄마였다. 그리고 엄마의 모습 뒤로 남동생, 남동생의 아내와 귀염둥이 조카의 얼굴이 반짝반짝 튀어나왔다.
아, 우리 2호 오늘이 생일이지? 생각이 떠오름과 동시에 아이가 신경질 적으로 울어대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를 받을 기분이 아니라는 비명 섞인 울음이었을까? 끝끝내 아이는 울음 너머로 전화기를 밀어냈다. 그래. 병원이 아니었다면, 아프지 않았다면 가장 좋아하고 방긋방긋 웃었을 너였을 텐데… 그 마음 몰라줘서 미안했다. 때마침 의사 회진 시간이었기에 나는 가족들이 서운하지 않도록 회진을 핑계로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곧이어 정말 의사 선생님들이 들어오셨다. 아이의 상태를 체크하시고 밥을 잘 먹는지 물어보시면서 혹시라도 음식이 아이 입에 맞지 않으면 아이가 좋아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 상관없으니 무조건 먹이라고 당부하셨다. 잘 먹어야 잘 낫는다고. 이미 몸속에 배어있는 것 같은 말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들으니 나는 마치 중요한 처방전을 받은 것 마냥 고개를 주억거렸다. 모르는 것이 아닌데… 아이가 아프니 아주 기초적인 것이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 되어버렸음이 새삼스레 피부로 와닿았다.
동생의 생일인 만큼 1호는 아빠와 케이크를 사서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도착했다. 내 입에 뭔가를 챙겨 넣을 시간도 없이 나는 재빨리 집에 다녀와야 했다. 남편이 하지 못하는, 아니할 줄 모르는 집안일을 해결해야 했고, 우리가 없는 동안 1호가 먹을 된장국을 끓여놓을 예정이었다.
아이가 잠이 들면 몰래 다녀오려 했는데 오늘따라 눈은 얼마나 초롱초롱한지 ‘잠’이라는 단어는 저 멀리 다른 차원에 있는 단어인 것 같았다. 마치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한 나는 남편에게 2호를 맡겨두고 1호의 손을 잡고 병실을 나섰다. 역시 내 뒤로 이어지는 2호의 통곡소리는 입원실의 복도를 삐집고 튀어나왔지만 애써 모르는 척 1호의 손을 부여잡았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미션은 이랬다.
1. 가까운 한인슈퍼에 가서 3분 만에 먹을 수 있는 레토르트 구매(카레, 짜장, 미역국 등 참 많다.)
2. 집으로 달려가 세탁기, 건조기, 밥 하기, 된장국 끓이기, 청소기 돌리기
3. 병원으로 챙겨 와야 할 추가 물품들 챙기기
4. 다시 부리나케 병원으로 복귀
이 모든 것을 두 시간 이내에 해결하려면 순서를 미리 생각해두어야 했고, 한치의 어긋남도 없어야 했다. 그런데 이 모든 계획은 가방에서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 때문에 마치 얼음 땡을 하다 얼음 폭격을 맞은 것처럼 멈춰버렸다. 전화벨 너머에 기다리고 있던 목소리는 2호 어린이집 선생님이셨다. 오늘 아이의 생일이라고 예쁜 케이크와 함께 병문안을 오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마치 처음부터 선생님을 마중 나오려고 했던 것처럼 선생님을 모시고 다시 병실로 들어갔다.
아이는 엄마처럼 따르는 선생님이라 보고 싶었는지 엉엉 울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입가에는 어느새 미소가 가득했다. 깜짝 선물 같았던 선생님의 방문이 끝나고 1호와 나는 다시 미션 도전 모드를 장착하며 병실을 나섰다.
하나도 빠짐없이 해결해놓고 나니 어느덧 2시간이 흘러있었다. 이제는 다시 병실로 돌아갈 시간.
마치 차원을 통과하는 문처럼 병실 문을 열고 다시 들어가니 아이는 온몸이 벌게져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마치 참았던 폭포수가 터져 나오는 것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안고 등을 토닥이니 금세 진정되는 모습을 보고 이제 남편의 얼굴에서 울음이 터져 나오려 했다.
2호는 엄마와 떨어져 있었던 2시간 동안 얼마나 울었는지 병실을 지나가는 간호사들마다 들어와서 무슨 일 있냐, 진통제 눌러 줄까?, 필요한 거 있냐 등등 들여다보고 갔단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청소하시는 분의 발걸음까지도 붙들어 아이가 너무 울어대니 혹시라도 자기가 도와줄 게 있는지 물어보고 가시도록 만들었다.
심지어는 너무 힘을 주고 울어 혈압도 올라가서 모니터는 경보음을 뿜어대고, 간호사들은 몇 번이고 혈압을 측정하고 가야만 했단다. 여기까지 마치 토해내듯 이야기하는 남편의 모습 뒤로 병실 문이 빼꼼히 열렸다. 담당 간호사였다. 아이가 아직도 우는지 확인하러 왔나 싶었는데 그녀 뒤로 열댓 명의 간호사들이 알록달록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놓여있는 테이블을 밀고 들어왔다. 그러고는 이내 “Happy birthday to you”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르르 몰려온 천사 군단의 모습에 놀랐을까? 2호는 마치 겁에 질린 새끼 사자처럼 내 품으로 기어오르며 울음을 토해냈다. 비록 아이는 울어재꼈지만 남편과 나 그리고 우리 1호에게는 감동과 고마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그간의 힘들었던 마음, 생일을 병원에서 보내야 해서 오늘 태어난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온돌처럼 따뜻한 마음.
가슴속이 뻐근했다. 울고 있는 2호를 안고 있는 나는 고마워서 눈물이 나려 했다. 노래가 끝나고 생일 축하한다며, 잘 낫고 건강하게 퇴원하길 바란다며 속삭여 준 응원의 한마디는 여전히 내 귀에 노래처럼 들리는 듯하다.
이날 우리는 고마운 분들에게 아빠와 1호가 함께 사가지고 온 케이크를 모두 나눠드렸고, 고마운 분들 덕분에 잔뜩 우울했던 2호의 생일이 활짝 개어 반짝반짝 빛나는 추억으로 남았다.
그날 저녁 아이는 미역국 대신 된장국으로 생일밥을 먹어야 했지만 된장국이면 어떤가?
또 아파서 병원에 있으면 어떤가? 우리가 이 순간 서로 숨 쉬며 살아있다는 것을 감사함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제 알고 있는데…
앞으로 잊지 말길… 지난 힘들었던 시간들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것을…
그날 밤 우리 2호는 병원에 입원한 지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밤에 아무 일도 없이 평온하게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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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