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병원에 입원하다-part 7

‘내가 할 거야’의 끝판왕

by YJ Anne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처럼 병원에서 함께 딱풀로 붙여 놓은 듯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난 후 처음으로 사건 사고 없는 밤을 보냈다. 집에 있는 내 침대만큼 편안하지는 않았지만 아이가 쌔근쌔근 내 옆구리에서 잘 자고 있는 것을 확인하며 잠들었던 지난밤은 참으로 평화로웠다.


마치 만삭까지 아이를 잘 품고 있다가 한바탕 전쟁을 치러낸 후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맞이하는 평화처럼 우리의 아침은 어제 내가 끓여 온 구수한 된장국 냄새와 함께 사뭇 평화로웠다. 우리의 일요일 아침은 오랜만에 여유를 품고 있었다.


1호와 남편은 잠을 푹 자고 점심때 즈음 병원으로 온다고 했다. 어제 친구가 집으로 온갖 음식을 정성스레 해서 바리바리 보내 준 덕에 오늘은 온 가족이 푸짐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다는 아주 작은 기대가 마치 우리의 일상을 조금 더 예전으로 돌려놓은 것만 같아 감사한 마음도 들었지만 슬슬 어서 나아 퇴원하고 싶다는 조급증도 일었다.


아직 아이의 폐에서는 조금씩 물이 나오지만 전보다는 훨씬 나아졌고, 겨우 어젯밤 큰 일 없이 잤을 뿐인데, 잘 치료받고 있는데, 여기서 더 욕심을 부리면 안 되는 걸 아는데도 되도록이면 빨리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매 순간 간절했다.


조금씩 움트던 일상을 향한 나의 갈망은 남편과 1호의 얼굴을 보고 나니 용암이 들끓는 것처럼 차올랐다. 친구가 요리해서 보내 준 음식을 사이좋게 나눠먹고 침대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핸드폰을 보고 수다를 떨던 순간에는 더욱더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제 그만 집으로 가고 싶은데 우리는 언제 갈 수 있을까? 당시에는 정말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때는 몰랐다. 내 조급한 마음을 그리도 원망하게 될 줄은.

또다시 찾아온 악몽 같던 그 일은 바로 그날 저녁에 일어났다.


남편과 1호가 오후 내내 우리와 함께 있다가 집으로 갔다. 다시 둘 만으로 돌아온 2호와 나는 슬슬 배가 고팠으므로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나는 된장국부터 챙겼다. 입맛이 없는 아이를 구수한 냄새로 유혹하고 한 그릇 뚝딱 먹였다. 아이는 전에 먹인 변비약 탓인지 아니면 장염이 온 건지 아이는 어제부터 뭔가를 먹으면 꼭 응가를 했다. 그것도 묽은 응가를. 그날 저녁도 예외는 아니었다.


무사히 된장국을 잘 먹이고 난 후 조금 있으니 어김없이 아이가 힘을 주었다. 곧이어 공기 중에 퍼지고 어느새 내 코에 도달한 구수하고 시큰한 냄새. 기저귀를 갈아야 했다. 새 기저귀를 손에 들고 아이를 눕히려는 순간 엉덩이 아래쪽에 동그랗게 펼쳐져 있는 냄비 받침 만한, 기저귀에서 새어 나왔을 갈색 얼룩을 발견했다. 혹시나 샐지도 몰라 엉덩이에 깔아 둔 담요에 우려했던 사태가 벌어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도 병원 입원 경력 일주일치의 내공을 장착한 엄마이기에 당황하지 않았다.


이런 사태를 미리 짐작해 담요 아래에는 방수 매트가 깔아 놓았으니 담요만 금세 갈아주면 그만이었다. 그것은 기저귀를 가는 것만큼이나 간단한 일이었고, 나는 이제 몇 번째 반복하는지 셀 수도 없을 만큼 능숙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아이의 흥이었다.


아이는 구수한 된장국을 맛있게 먹어서 배가 불렀다. 시원하게 큰 볼일을 본 데다 컨디션이 점점 회복세로 들어서고 있어서 기분이 상당히 ‘업’ 되어 있었다. 엄마가 침대에 깔려 있는 담요를 갈기 위해 침대 위에 잠깐 동안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말은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마치 신이 난 원숭이 한 마리가 방방 뛰는 것처럼 아이는 침대 위를 이리저리 오갔다. 한껏 흥이 오른 원숭이는 진정시키기가 어려운 법. 아이는 내 말을 듣지 않고 그 좁은 침대 위에서 제지하는 내 팔을 뿌리치며 요리조리 돌아다녔다.


아이도 나도 너무 익숙해있었다.

익숙해져서 잠깐 잊고 있었다.

아직 폐에 호스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내가 얼룩진 담요를 빼내고 깨끗한 것으로 다시 깔아 탁탁 두들기며 펴고 있던 순간, 아이는 ‘으앙’하는 울음소리와 함께 사색이 된 얼굴로 나를 보며 바들바들 떨었다. 나는 놀라서 ‘왜? 무슨 일이야? 어디 아파?’하며 아이를 안으려 했는데 순간 알아챘다. 나의 팔에 당연스레 걸려야 하는 호스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당황한 나의 눈동자는 호스가 빠져버린 아이의 옆구리를 어이없이 쳐다보았고 두 팔로 아이를 부둥켜안고 ‘Help me’를 외쳤다.


모두들 저녁을 먹고 아이를 토닥토닥 재우려 하는 저녁 8시. 하루 일과를 마친 간호사들과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간호사들이 교대하는 여유롭고 평온한 시간이어서 일까? 병실 복도를 오가는 이는 없었다. 나는 우는 아이를 침대에 앉혀놓고 병실 문을 열어젖히고 외쳤다. 도와달라고. 내 아이 좀 살려달라고. 호스가 빠졌다고. 제발 어떻게 좀 도와 달라고.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침대 바로 머리 위에는 수많은 기계들이 연결되어 있었고, 그 많은 버튼들 중에 단연 눈에 띄는 크고 빨간 동그라미 Emergency 버튼이 있었다. 위급 상황에는 이 버튼을 누르면 바로 의료진이 뛰어온다는 사실을 나의 비명을 듣고 달려온 간호사들에게 그제서야 들었다.


나의 외침을 듣고 제일 먼저 달려온 간호사는 상황을 확인하자마자 호스로 연결되었던 아이의 옆구리부터 두 손을 맞잡아 힘껏 눌렀다. 그리고는 아이가 놀라지 않게 밝게 웃으며 ‘너 정말 잘하고 있어. 걱정하지 마. 괜찮아.’라고 아이에게 조근조근 속삭였다. 곧이어 여러 간호사들이 달려왔고, 상황을 체크하고 의사를 부르는 이, 필요한 장비를 가지러 바로 뛰어가는 이, 공기라도 들어갈까 봐 최대한 밀착해서 손으로 누르고 있는 간호사가 지칠 때를 대비해 바로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이. 병실 안에 있는 여러 간호사 중 어느 누구도 우왕좌왕하지 않았다. 내 눈앞에서 펼쳐진 이 장면은 세상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나를 안심시켰을 뿐만 아니라 두고두고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곧이어 의사와 통화를 한 간호사는 내게 와서 통화 내용을 알려주었다. 아이의 회복 상태가 좋아서 어차피 내일 상황을 보고 호스를 제거하려고 했었다고. 아이가 많이 건강해졌는지 호스 제거를 의사 선생님이 해주시는 것보다 자기가 해야겠다는 의지로 잡아 뽑은 것이 아니냐며 껄껄 웃으셨다고 했다. 하지만 위급 상황을 대비해 폐로 연결되었던 부분을 밀폐하고 엑스레이를 찍어야 한다고 했다. 드레싱 한 겹으로만 감싸고 있었던 수술 부위에는 순식간에 꼼꼼히 여러 겹의 드레싱이 추가됐다. 대장 의사 선생님의 통화 내용이 알려지자 모두들 각자 자신의 위치로 돌아갔다. 우리 담당 간호사는 우리가 엑스레이를 찍기 위해 촬영실로 이동할 때도 이동 침대 옆에 딱 붙어서 모든 상황을 기록하고 체크했다.


숨이 멎을 것 같던 나의 불안감은 아이의 상태가 괜찮다는 엑스레이 촬영 결과를 듣고 난 후에야 서서히 잦아들었다. 아직도 그날 그 순간을 생각하면 심장 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내게는 아이가 아파서 수술했던 날 보다도 더 끔찍한 악몽으로 남아있는 날이기도 하다.


옆에서 상황을 보고 있던 나에게도 이토록 악몽인데 와보지도 못하고 전화 통화로만 상황을 전해 들어야 하는 남편에게는 더 지독한 악몽이었다고 한다. 이민자로 살고 있어서 가족들의 도움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순간조차 받을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는 불현듯 우리가 과연 잘하고 있는 건지라는 자괴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우리가 선택한 인생이지만 괜히 이럴 때는 신에게라도 원망을 퍼붓고 만 싶었다.


다행히 엑스레이 촬영도 잘 마치고 좋은 결과도 들었지만 벌렁거리는 나의 심장 박동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눈은 카페인을 들이부은 것 마냥 점점 더 말똥말똥해졌다. 아이는 되려 호스가 빠지고 옆구리에 혹처럼 대롱대롱 맺혀있던 통증이 사라졌는지 새근새근 곤히 잠이 들었다.


‘내가 할 거야’의 끝판왕.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고처럼 벌어진 일이었지만 나는 왠지 아이가 자기의 의지를 손끝에 불어넣어 이 상황을 끝내버리고자 행한 일이 아닐까 라는 상상을 했다.

2호를 키우면서 종종 남편과 입버릇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단어지만 오늘 만큼은 진심으로 속삭이듯 내뱉었다.


‘독한 놈’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해보자면 ‘엄마 닮아 독한 놈’이라고 해야 맞겠지.


눈을 감으면 펼쳐지는 검은 동굴 같은 어려움들은 앞으로 종종 이번과 같은 사태처럼 아이의 현관을 두드릴 것이다. 왠지 그때마다 아이가 오늘 같은 불굴의 의지로 끝판왕 미사일을 발사할 거라 상상해 보니 튀어나올 것 같았던 내 심장 소리가 점점 잦아들고 서서히 잠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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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