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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Anne Dec 23. 2023

할머니의 '내 아가'

두 해를 마주 보는 슬픔

2022년, 5년 만에 한국에 가서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1호는 태어나고 100일에 맞춰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고, 한 살이 갓 넘었을 무렵에는 외할머니도 만날 수 있었는데 코로나 베이비였던 우리 2호는 태어나서 두 살이 넘어가도록 어느 가족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 애틋하고 쏜살같이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던 여행이었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주 간의 일정 속에 잊지 말고 꼭 만나야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집으로 찾아가서 손을 잡고, 잘 왔다는 인사를 받고 싶었던 분이었는데… 이제는 납골당에서만 뵐 수 있었기에 그곳에서 만이라도 왔다고 안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분은 나의 엄마의 언니, 제게는 큰 이모입니다. 2021년 12월에 시장 골목으로 마구 내달리던 자동차 한 대가 나의 큰 이모와 유모차에 타고 있던 두 살도 채 되지 않은 조카를 덮쳤습니다. 우리 이모는 그곳에서 천국에 가시고, 조카는 같은 날 병원 응급실에서 천국으로 갔습니다.


많은 이들이 서로를 축복 속에서 마주 보는 12월이 그해부터 우리에게는 짙은 슬픔의 기억으로 뒤덮이는 달이 되어버렸습니다. 웃어도 웃는 것이 아니고, 또 마음껏 울 수도 없는 그런 날 말입니다.


저는 멀리 있어 장례식장에도 참석하지 못했고, 한국을 방문하는 그날까지 찾아가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멀리 있어 미안한 마음으로 울며, 가족들을 위해 기도만 할 수 있었습니다.


미안함이 켜켜이 쌓이고 쌓여 이제는 꺼내기조차 힘겨워질 때쯤 우리는 한국에 갈 수 있었습니다. 엄마를 만나고 나서 가장 먼저 함께 가고 싶었던 곳, 이모의 납골당. 사실은 엄마와 동생네와 우리, 이렇게 세 가족이 가고자 했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어렵게 얘기를 꺼내셨어요. 할머니가… 아직 못 가보셨다고… 실은 힘겹게 말을 꺼낸 엄마조차도 이모를 모셔놓을 때 가보시곤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하셨다고 했습니다. 도무지 그곳에서 이모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하시며 눈시울을 붉히셨어요.


그래서 남동생과 저는 단단히 마음을 먹고 할머니와 엄마를 모시고 한국에 도착해서 시 부모님 일정 외에 엄마와의 첫 일정으로 이모를 뵈러 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약속했던 그날, 엄마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은 채로 납골당으로 함께 들어갔습니다.


이모와 함께 계신 여러 분들을 지나 드디어 이모의 사진이 놓여있는 곳에 다다랐을 때…


할머니께서 잡고 계셨던 엄마의 손을 놓으시고

‘내 아가… 니가 왜 여기 있노. 아이고… 내 아기… 사랑하는 내 아기가 왜 여기 있노…’ 하면서 이모의 얼굴을 주름 가득한 손으로 연신 쓸어내리셨습니다.


팔순이 넘으신, 치매로 기억이 왔다 갔다 하시다 이제는 증손주들을 보시며 어렸을 적 손자 손녀인 줄 아시는 우리 할머니에게… 그 순간만큼은 예순이 넘은 이모가 할머니가 품에 처음 안았을 그 어여쁜 아이로 보이셨나 봅니다.


그날, 그곳에서 어느 누구도 소리 내어 울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를 잃은 엄마의 슬픔이 우리가 숨을 쉬고 있던 그 공간을 무겁게 가득 채우고 있어 작은 신음조차도 새어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내 조카를 잃은 사촌 동생 부부의 마음을 가장 잘 알고 위로할 수 있는 이도 할머니겠구나… 숨죽여 울고 있는 그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의 나로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그 짙고도 무거운 슬픔을… 할머니는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치매조차 이겨낼 정도로 알고 계셨습니다.


‘내를 보내달라 기도했는데… 왜 니가 거기 있노…’하시며 이모의 사진 앞에서 서글피 우시던 고개 숙인 할머니의 뒷모습이 제 머릿속에 슬픔과 함께 아주 오래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흐르지 않을 것만 같던 시간은 벌써 2년이나 흘러서 우리에게 두 번째 기일이 찾아왔습니다.


오늘은 그저… 딸을 잃은 할머니와 엄마와 딸을 한꺼번에 잃어버려야만 했던 사촌 동생 부부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어떤 위로를 전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 입에서 떨어지지 않아서…

그저 상처 입은 가족들을 위해 기도만 하고 있는 제 모습이 너무도 미안해지는 하루가 제게는 한 해만큼 또 그렇게 쌓여갑니다.


#30년후의그대에게

#두해 #기일 #애도 #슬픔 #미안해 #아이를잃은슬픔

#작가앤 #나크작 #앤크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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