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언젠가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는 박효신의 ‘눈의 꽃’이라는 음악이 나를 적시고 있었고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대로 죽어도 참 좋겠구나.’
그의 음악이 내 죽는 순간에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흠칫 흠칫 공포에 떨던 ‘죽음’이라는 단어가 덜 무섭게 느껴지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신기한 느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엄마에게 아빠가 쓰러지셔서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가고 있으니 회사가 마치는 대로 병원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일을 어떻게 마무리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지하철 역으로 달려가는 버스 안에서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옴짝달싹 못했던 내 엉덩이와, 지하철을 타고 병원 근처 역까지 가는 가는 동안 종종 대던 내 두 발과,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창 밖을 바라볼 때 동그란 손잡이를 잡고 있던 내 손만 마치 어떤 모호한 연기처럼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급성 심근경색으로 멈췄던 심장을 다시 살려냈던 것은 뒤로하고 아빠의 신장은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상태로 망가져 있었습니다. 망가진 신장은 아빠의 얼굴을 두 배로 부풀려 놓았습니다. 몸속의 노폐물을 빼내지 못해서 부은 거라고 옆에 있던 누군지 모를 의사가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날 밤 엄마와 남동생과 함께 보호자 대기실에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엄마의 입속에서는 그녀가 믿는 신의 이름이 달싹거렸고, 남동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그저 모든 것을 상실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날 밤의 저는 실질적인 가장이었습니다. 아니, 그날만이 아니었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순간부터 아, 아닙니다. 내 나이가 성인이 되어 제2 금융권에서 대출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아빠가 알았던 순간부터 저는 가장이었습니다.
밑 빠진 독에 하염없이 물을 부어야 하는 고된 노동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질기고 질긴 가죽처럼 단단히 묶여있었습니다. 더 이상 못하겠다고 집을 뒤집는 파업을 하고 도망치듯이 독립했지만 질긴 피의 인연은 도무지 끊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아빠가 쓰러지던 그해는 제가 독립을 하고 난 후에 열심히 그의 빚을 갚아나가던 고된 인생이 맵고도 매운 해였습니다. 언젠가 빚이 끝나고 나면 내 인생을 살아야지 한숨 섞인 다짐을 내뱉던 해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아빠의 소식은 다시 숨통을 짓누르는 압박이었습니다.
보호자 대기실에 앉아 이제 어떡하냐며, 어떻게 좀 해보라며 나를 쳐다보는 엄마와 아직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남동생. 둘 중 어느 누구도 아빠의 수술비를 감당하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날 밤 잠을 청해보려 셋이 나란히 대기실에 누워있을 때 간절히 정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내일 아침에 눈을 뜨지 않게 해 달라고… 제발 나에게 더 이상 이런 악몽을 손에 쥐어주지 말아 달라고 제가 믿는 신에게 온 마음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당신이 살아 있다면 나의 절규를 제발 들어달라고. 제발 이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죽음으로 도피하게 해 달라고… 내 의지로 죽을 용기는 없었습니다. 그냥 그저 신이 제 외침을 들어주셨으면 하는 바램이었습니다.
신은 제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고 다음날 아침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꺼풀은 떠졌습니다. 마치 꿈에서 깨지 않으려 다시 눈을 질끈 감아봐도 변한 건 없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어김없이 살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약이었을까요? 자고 일어나니 그저 현실을 도피하고 싶었던 마음보다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더 강했습니다. 안 하고 싶었던 일을 다시 떠안아야만 했는데 부담감의 무게는 지난밤 보다 가벼워졌습니다.
지금 눈앞에 닥친 그 무엇이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겁게 만 느껴져도 다시 질끈 눈을 감고 하루를 살아보면 또 살아진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습니다.
[살다 보면]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혼자라 슬퍼하진 않아
돌아가신 엄마 말하길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그 말 무슨 뜻인진 몰라도
기분이 좋아지는 주문 같아
너도 해봐 눈을 감고 중얼거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노랫말의 가사처럼 그날의 저도 살아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느껴졌습니다.
그 후로도 여러 날의 매운맛을 맛보는 제 삶이지만 지금은 알고 있습니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것을.
오늘 하루 너무 힘이 드셨다면 제 어깨를 한 켠 내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손을 가지런히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속삭여드리고 싶습니다.
살다 보면 살아진다고… 그러니 우리 그저 살아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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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