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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Anne Jan 12. 2024

도피하고픈 인생도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언젠가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는 박효신의 ‘눈의 꽃’이라는 음악이 나를 적시고 있었고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대로 죽어도 참 좋겠구나.’

그의 음악이 내 죽는 순간에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흠칫 흠칫 공포에 떨던 ‘죽음’이라는 단어가 덜 무섭게 느껴지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신기한 느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엄마에게 아빠가 쓰러지셔서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가고 있으니 회사가 마치는 대로 병원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일을 어떻게 마무리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지하철 역으로 달려가는 버스 안에서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옴짝달싹 못했던 내 엉덩이와, 지하철을 타고 병원 근처 역까지 가는 가는 동안 종종 대던 내 두 발과,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창 밖을 바라볼 때 동그란 손잡이를 잡고 있던 내 손만 마치 어떤 모호한 연기처럼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급성 심근경색으로 멈췄던 심장을 다시 살려냈던 것은 뒤로하고 아빠의 신장은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상태로 망가져 있었습니다. 망가진 신장은 아빠의 얼굴을 두 배로 부풀려 놓았습니다. 몸속의 노폐물을 빼내지 못해서 부은 거라고 옆에 있던 누군지 모를 의사가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날 밤 엄마와 남동생과 함께 보호자 대기실에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엄마의 입속에서는 그녀가 믿는 신의 이름이 달싹거렸고, 남동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그저 모든 것을 상실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날 밤의 저는 실질적인 가장이었습니다. 아니, 그날만이 아니었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순간부터 아, 아닙니다. 내 나이가 성인이 되어 제2 금융권에서 대출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아빠가 알았던 순간부터 저는 가장이었습니다.


밑 빠진 독에 하염없이 물을 부어야 하는 고된 노동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질기고 질긴 가죽처럼 단단히 묶여있었습니다. 더 이상 못하겠다고 집을 뒤집는 파업을 하고 도망치듯이 독립했지만 질긴 피의 인연은 도무지 끊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아빠가 쓰러지던 그해는 제가 독립을 하고 난 후에 열심히 그의 빚을 갚아나가던 고된 인생이 맵고도 매운 해였습니다. 언젠가 빚이 끝나고 나면 내 인생을 살아야지 한숨 섞인 다짐을 내뱉던 해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아빠의 소식은 다시 숨통을 짓누르는 압박이었습니다.


보호자 대기실에 앉아 이제 어떡하냐며, 어떻게 좀 해보라며 나를 쳐다보는 엄마와 아직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남동생. 둘 중 어느 누구도 아빠의 수술비를 감당하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날 밤 잠을 청해보려 셋이 나란히 대기실에 누워있을 때 간절히 정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내일 아침에 눈을 뜨지 않게 해 달라고… 제발 나에게 더 이상 이런 악몽을 손에 쥐어주지 말아 달라고 제가 믿는 신에게 온 마음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당신이 살아 있다면 나의 절규를 제발 들어달라고. 제발 이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죽음으로 도피하게 해 달라고… 내 의지로 죽을 용기는 없었습니다. 그냥 그저 신이 제 외침을 들어주셨으면 하는 바램이었습니다.


신은 제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고 다음날 아침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꺼풀은 떠졌습니다. 마치 꿈에서 깨지 않으려 다시 눈을 질끈 감아봐도 변한 건 없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어김없이 살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약이었을까요? 자고 일어나니 그저 현실을 도피하고 싶었던 마음보다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더 강했습니다. 안 하고 싶었던 일을 다시 떠안아야만 했는데 부담감의 무게는 지난밤 보다 가벼워졌습니다.


지금 눈앞에 닥친 그 무엇이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겁게 만 느껴져도 다시 질끈 눈을 감고 하루를 살아보면 또 살아진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습니다.


[살다 보면]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혼자라 슬퍼하진 않아
돌아가신 엄마 말하길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그 말 무슨 뜻인진 몰라도
기분이 좋아지는 주문 같아
너도 해봐 눈을 감고 중얼거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노랫말의 가사처럼 그날의 저도 살아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느껴졌습니다.

그 후로도 여러 날의 매운맛을 맛보는 제 삶이지만 지금은 알고 있습니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것을.

오늘 하루 너무 힘이 드셨다면 제 어깨를 한 켠 내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손을 가지런히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속삭여드리고 싶습니다.

살다 보면 살아진다고… 그러니 우리 그저 살아보자고…


#30년후의그대에게

#도피 #살다보면 #살아진다  

#작가앤 #나크작 #앤크작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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