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호주는 10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다는 우기의 늪에 빠져있다.
지난 두 달 동안 매일이다 시피 비가 내렸다. 호주의 여름은 햇빛이 뜨거워 화상 환자가 속출하는 계절이다. 한데 구름에 포위된 태양이 나오질 못하니 물에 들어가서 놀기엔 온도가 어중띠다. 시즌권을 끊어놓은 워터파크에서 물놀이가 아닌 모래놀이로 본전을 건졌다고 하면 이해가 빠르겠지. 또한 고습도인 날씨가 오래가니 온몸의 관절들이 난리 부르스다. 이렇게 꿉꿉한 날씨가 이어지는 시기마다 허리 디스크 환자인 남편과 애 둘을 출산한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다. 바로 한국을 향한 그리움 파트 No.1 ‘찜질방’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호주살이에 많은 게 바뀌었지만 유독 변하지 않은 건 입맛이었다. 그래서일까? 우리 부부는 고국이 그리울 때면 입맛 당기는 추억의 메뉴를 티키타카 주고받는다.
아… 얼마나 맛있을까? 생각만 해도 입안에 가득히 침이 고인다. 전화만 하면 번개처럼 배달되는 동네 중국집 짜장면의 소중함을 그때는 몰랐다. 집에서 짜파게티로 대리만족을 하는 이민자로 탈바꿈한 지금, 동네 중국집이 눈물겹도록 그립다.
호주에서 두 번의 출산을 겪은 이후 내 머릿속 그리움 1위는 음식과 찜질방으로 쟁탈전이 치열하다.
내가 살고 있는 여기, 호주에도 당연히 사우나는 있다. 하지만 찜질방은 없다. 나의 경험으로 비추어봐서 호주에서 당신의 몸에 뜨끈함을 선사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두 가지다. 따뜻한 물에 친구들과 함께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서 즐기는 핫 워터, 그리고 뜨거운 기운을 마구마구 뿜어대는 건식 사우나. 아직 나는 호주에서 습식 사우나를 만나보지 못했는데, 혹시 이 글을 보는 누군가가 알고 있다면 꼭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아… 코끝부터 발끝까지 뜨거운 수증기가 가득 차는 그 느낌이 가끔 정말 그립다.
두 아이를 출산하고 나니 그 뜨끈함이 사무칠 때가 참 많다. 온몸이 뜨거운 불에 올린 오징어마냥 뒤 뒤 꼬일 것 같은 뜨거움이, 그 강렬한 지짐 뒤에 휘몰아치는 관절과 근육들의 노곤함이 육아로 지친 나의 몸을 조물조물 만져주었으면 하는 욕구가 간절하다.
나의 이 찜질방 사랑은 처음으로 혼자 여행한 제주도로도 이어졌다. 설레는 마음으로 홀로 여행은 하고 싶은데 밤의 공간은 거부할 수 없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어두컴컴한 낯선 공간에 나를 무방비 상태로 내어놓는 그 공포감은 지금도 혼자 하는 여행을 생각할 때마다 나를 멈칫하게 한다. ‘찜질방’은 이런 나를 위한 최적의 선택이었다.
찜질방이 혼 여행자였던 나에게 매력으로 다가온 이유를 들어보겠다.
1. 불안, 두려움 해소 : 혼자 하는 여행은 신경 쓸 동행인이 없어서 마음이 편하기도 하지만 모든 걸 내려놓고 잠을 자는 순간에 어떤 나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 한데 찜질방에서는 누군가가 밤새 눈을 뜨고 지켜주지 않는가? 겁보 쫄보인 나에게 불침번이 있다는 것은 가장 큰 걱정을 덜어내는 부분이었다. 물론 가끔 이상한 분들도 있지만 문제가 일어나면 제지를 해주거나 적어도 경찰을 불러주니 나에게 그다지 걱정거리가 되지는 않았다.
2. 숙박업 소보다 저렴한 이용료 : 많은 것을 젊음이라는 열정 하나로 값을 치러야 하는 20대 청년들의 주머니는 생각보다 가볍다. 물론 부모님께 용돈을 두둑이 받을 수 있는 친구들과는 비교하지 말자. 20대 사회 초년생의 연봉은 뻔했고, 동행인도 없이 혼자 하는 여행에 호텔, 펜션 등은 가격적인 부담이 만만치 않다. 게스트하우스가 있지 않냐고? 그건 요즘 얘기다. 15년 전에는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 제주도에도 게스트하우스가 흔하지 않았다. 그러니 만원 언저리로 해결할 수 있는 숙소는 주머니 가벼운 혼 여행족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러했다.
하루의 일정을 마친 내 몸은 무척이나 지쳐있었다. 여행에 대한 설렘으로 신이 나서 시작했던 아침이 지나고 뜨거운 태양 아래서 하루 종일 돌아다녔던 그날 나의 피부는 보란 듯이 빨갛게 익어버렸다. 찜질방을 찾아봐야 하는 저녁 시간이 되었을 때엔 축 처진 미역처럼 말 그대로 녹초가 되었다. 다음날 여행지인 우도의 교통편도 알아봐야 하는데 그날따라 눈에 들어오는 나만의 숙소가 없었다. 이미 하늘도 어둑어둑해지고 마음은 초조해져만 갔다. 그러다 마치 한줄기 햇살처럼 현지인분이 추천해주셔서 찾아가게 된 찜질방은 성산항 바로 근처에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우도를 가는 배를 타야 했기에 항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그곳을 알게 된 건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었다.
도착한 버스 정류장은 이미 어두움이 점령하고 있었지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까만 하늘을 하얗게 수놓는 달빛과 별빛이었다. 환한 도심지의 야경도 아름답지만 새카만 천에 수놓듯이 어우러지는 별들의 하모니는 제주의 또 다른 매력이었다.
이런 황홀함이라니.
조금 과장하자면 그날의 별빛은 마치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안내해주는 오즈의 마법사가 다니던 길이랄까? 아주 잠깐 나는 동화 속 앨리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골목길 한켠에 보이는 하얀 간판이 오늘 내가 머물 곳임을 안내하듯이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곳은 평범한 가정집처럼 보였는데 어엿이 프런트까지 갖춰진 진짜 찜질방이었다. 호출벨이 보이지 않아 안을 향해 조심스레 인사했다. 1분도 채 되지 않아 연세 지긋하신 할머니께서 고개를 빼꼼히 내미셨다. 입장 가능한지 여부를 물으니 몇 가지 질문을 하셨다. 혼자 왔는지, 술을 마셨는지와 혹시 마실 예정인지를 물으셨는데 술과 함께라면 미안하지만 다른 곳을 찾아보라 하셨다. 나는 꽤나 술을 즐기는 애주가지만 혼자 여행하면서 술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었는데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그리고 술을 마신 사람은 입장하지 못한다니 손님들 간의 불미스러운 일은 없겠구나 싶어 굉장히 안도했다.
계산을 하고 들어서니 작게 보이던 집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입구에 정렬된 락커를 지나서 거실 한가운데에 황토 습식 사우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머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이 들고 씻고픈 마음이 간절했다. 그렇게 온몸에 차곡차곡 쌓였던 먼지를 다 씻어내니 강렬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잠시 쉬어볼까 하여 담요 한 장을 깔고 엎드리니 그제야 내가 머물고 있는 방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안으로 발을 들인 순간부터 느낀 건데 이곳은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집과 닮아있었다. 하얀 머리를 늘 정갈하게 빗으며 아침을 맞이하시던 우리 할머니의 하루는 시작과 끝이 늘 정리정돈이었다. 한참 기운차실 때에는 안 계신 할아버지의 몫까지 다 하시려 앞마당과 뒷마당까지 언제나 깔끔했다.
어느 할머니 집에나 있을 것 같은 장식장이 한켠에 자리하고 바닥엔 머리카락 한 올, 먼지 한 톨 없었다. 여기가 찜질방이 맞나 착각이 들 정도로 은은한 ‘집 향기’가 났는데 이 좋은 냄새는 뭘까 살펴보니 나무에서 묵진 하게 베어 나오는 냄새였다. 심신을 평안하게 해주는 단정한 냄새였다.
이 나무 냄새에 취해 스멀스멀 잠이 몰려오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주인 할머니께서 ‘아가씨’하고 노크하며 부르시는 게 아닌가. 혹시 저녁식사가 아직이면 같이 먹겠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재빨리 감사합니다를 외치고 속으로 에헤라디야 춤을 추며 한달음에 뛰쳐나갔다. 주인 할머니의 발걸음을 따라 부엌으로 가는 길에 나는 그분의 발걸음에서 살짝 반가움을 엿보았다.
식사 준비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작된 대화에서 나는 혼 여행 중에 제주에서 더 사람 냄새를 진하게 맡으며 여행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할머니도 할아버지께서 일 때문에 자리를 비우실 때면 혼자 오신 손님과 숟가락 하나 더 놓고 함께 식사를 하신다는 말씀을 하셨다. 아… 이런 게 ‘베풂’이구나. 내가 앉아있는 이 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배고픈 여행자들이 이분들의 선한 마음으로 몸과 마음을 위로받았을지 생각하자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 시간 나는 라면 한 그릇과 따뜻한 밥 한 공기를 할머니표 홈메이드 김치와 함께 맛있게 먹었다. 제주도 여행 중에 최고로 따뜻하고 맛있는 한 끼 식사를 대접받았다. 얼마나 감동을 받았던지 꼭 보답을 하고 싶었다. 감사한 마음을 내 손끝에 실어 집에서보다 더 신경 써서 뒷 마무리까지 깨끗하게 설거지를 했다.
식사 후 자연스레 티타임이 이어졌다. 스몰토크 정도였던 그날의 수다는 이러했다.
왜 혼자 여행을 오게 되었는지, 특히 지금 살고 있는 도시에서의 삶이 어떠한지를 이야기할 때는 본인의 자녀들도 다 서울에 나가 있다며 공감하시며 진지하게 들어주셨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도 누군가가 곁에서 자신들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 것을 매우 기뻐하셨다. 해서 이 순간 내가 말벗이 되어 드려야 할 것 같은 사명감이 들었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달리 할머니께서는 테이블을 서둘러 정리하셨다. 여행지에서의 이야기는 가벼운 듯이 나눠야 피로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씀과 함께 푹 쉬라는 말을 넌지시 건네시고는 조용히 방으로 사부작사부작 들어가시는 게 아닌가.
사실 할머니의 옷차림새나 어떻게 생기셨는지 등은 자세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주인 할머니에게서 받은 그 정겨움이 나의 할머니를 떠올리게 해서 인 것 같다. 낯선 이 가 아닌 가족 같은 느낌 말이다.
자려고 누웠던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소설이 있었다. 일본 작가 구리 료헤이의 ‘우동 한 그릇’ 이 생각이 났다. 한때 대한민국에서도 이슈화 된 적이 있었던 소설이라 나도 어릴 적에 감동에 젖어가며 읽었던 책이었다. 스토리 속에 나오는 엄마와 아들처럼 특별한 사연이 나에겐 없다. 하지만 오늘 대접받은 한 끼의 식사가 내 인생에 진한 감동으로 남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여행에 대한 설렘도, 낯선 장소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도 공존하는 나의 혼 여행에 이 순간만큼은 적어도 소설 속에 나오는 우동 한 그릇의 감동 그 이상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주인 할머니께서 뭔가 시시콜콜 내 인생에 얽혀 있는 사연들을 캐묻고 부러 조언까지 하려 하셨다면 고맙고 따스한 기억으로 남았을까?
어지러운 세상에서 힘겹게 적응하는 20대들에게 조언하는 어른들을 어떤 이들은 ‘꼰대’라고 부르며 그들에게 대항한다. 어른들은 조언으로 하시지만 듣는 이들에게는 ‘오지랖’으로 다가가는 경우가 적지는 않다. 세상을 향해 반항하던 나의 20대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과한 오지랖’을 온몸으로 거부하던 시절이었다. 만약 할머니께서 여느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내 인생에 조언이라도 하시려 했으면 얼굴은 웃고 있지만 속으론 차갑고 냉랭하게 언제 자리를 떠야 하나 계산하고 있었겠지. 그랬다면 그 찜질방은 내 기억 속에 사람내음 나는 따뜻한 순간으로 남지 않고 그냥 잊혔을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가끔 마주하는 과한 친절들이 있다. 때로는 베풀어주고도 되로 더 받아야 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고, 그때의 피로감은 말로 하기 힘들었다. 아니 그 관계를 벗어나고만 싶게 만들었다. 종종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면 베풂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달리해야 하는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고, 친절도 적당히, 오지랖도 적당히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는 배움을 새기는 시간도 있었다.
나는 그날 그 주인 할머니로부터 연륜의 미덕을 보았다. 과하지 않아 받는 이가 부담스럽지 않고 고마움만 남을 수 있게 베풀어지는 친절이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배우고 싶었다. 그 과하지 않은 선함을 배워 내 인생에서 만나는 누군가에게 적절하게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상냥하고 착한 것은 멀리 간다’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내가 받은 고마운 선의를 나는 여기 호주에서 나누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과한 오지랖을 부리지 않고 나의 선함을 나누며 살아가는 시간은 마치 행복한 빚을 안고 사는 것과 같은 마음이랄까?
그분은 알까? 그 작은 친절함에 감동한 마음이 비행기 직항으로도 10시간 걸리는 이 먼 호주까지 와서 지난 10년 동안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나눠지고 있다는 것을?
내가 오늘 베푼 아주 조그마한 친절이 누군가에게는 눈물의 한 끼가 될 수도 있고, 차갑게만 바라보던 세상을 향한 눈에 따스함이라는 렌즈를 씌워줄 수 있음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런 마음으로 바라보는 나의 공간은 그 어떤 곳보다 따뜻하게 밝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그분을 떠올리며 해본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여전히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아… 온몸의 관절이 욱신욱신하다 보니 그 찜질방 생각이 간절하다. 주인 할머니처럼 나도 한번 차려버릴까? 하는 생각도 우스개 삼아 잠시 해보며 웃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