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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오 김세미 Nov 27. 2023

안전모 쓴 아저씨

[버스 안에서]


하얀 안전모에 군복 무늬옷을 입은 아저씨가 탑승했다. 남다른 복장에 눈길이 갔다. 작업자들이 입는 조끼도 입으셨다. 바로 현장 투입이 가능한 분위기다. 흙 묻은 안전화까지. 내가 앉은 좌석에서 보면 교통카드를 찍고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모습 딱 거기까지다.


힐끔힐끔  뒤돌아 볼 순 없으니. 조금 늦어서 작업복을 입고 가시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정류장에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려 육교를 건넜다. 방금 내렸던 정류장이 보인다. 아저씨는 버스를 기다리고 계셨다. 갈아타실 모양이다.


출근길 광주 쪽을 향하는 버스를 탄다. 광주에서 분당까지 운행하는  버스는  정차역이 많다.  행선지로 가는 유일한 노선.  집에서 나오는 시간은 일정하지만  도로사정에 변수가 있다.


노선의 유일성 탓에  아침시간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거의 일정하다.  정거장마다  타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다. 이렇다 할 정서적 교류는 없지만   매번 마주하는 풍경처럼 익숙하다. 왜 이번 역에선  그 학생이 안 탔을까. 왜 그 할머니는 지팡이를 안 가져오셨을까. 뿐 아니라.   머리스타일이  바뀌었는지 등을 엿볼 수 있다.

 

안전모 아저씨는 이번 달부터 동승자로 합류했다. 지극히 주관적인  관찰자 시점에서 보면 그렇다.  뒷자리에 앉게 된 날  자리를 양보해 드리려 했더니 괜찮다 하셨다. 하얀 안전모 사이에 흰머리가 많았다. 새치 수준이 아니다. 검버섯 핀 얼굴을 다 가리지 못하는 모자다. 연세가 많으신 분이구나 했다.


오늘은 접이식 킥보드를 들고 계셨다. 무거울 거 같아 좌석 옆에 놔드렸다. 아저씨의 출근길이라는 걸 이제는 아니까. 날이 추우니 작업복을 입고 현장으로 가신다고 미루어 짐작한다.  군복 위에  깔깔이 내피도 입고 장갑도 끼셨다. 추위에 대비하신 모습에 안심이 된다. 나이를 느끼게 하는 손이 감춰졌고 마스크를 하시니 입가 주름도 보이지 않았다. 모자와 장갑과 마스크 덕분에 아저씨는 젊어지셨다. 세월의 나이를 감추게 한 효자들이다.


함께 내렸다.  육교를 건너서 바라보는데 눈이 뒤에 달린 것처럼 아저씨 모습이 생각났다. 킥보드를 옆에 내려놓아도 좋으련만 무릎에 올려놓은 채 연신 버스가 오는지 살폈다.


 아저씨가 오매불망 기다리는 버스가 안 막히고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된다.  다리 밑 버스정류장의 그늘진 자리가 따뜻하게 데워지도록 햇살이 난로가 되길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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