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에 우정을 담다.
분주한 주말 아침. 찌뿌둥한 날씨에 마냥 늘어지고 싶은 마음을 채찍질하며 아침을 맞이했지요. 커피 한 잔이 생각나지만 차 한 잔의 여유는 오후로 유예시켜 놓습니다.
오전 집안일을 마치고 염색방 문을 두드려봅니다. 운좋게도 오전내 붐비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때라고 하네요. 시간의 추이를 짐작하게 해주는 머리에 세월을 덧칠하고 나이를 선물 받습니다.
유예시킨 차 한잔의 행복이 생각났지만 몰려드는 피로감에 서둘러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부지런히 집으로 향했지요
웬만해서는 낮잠을 자지 않습니다. 아프거나 임신 중이었을 때를 제외하고 낮잠을 자는 일은 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낮잠을 자면 왠지 시간이 아깝다는 기분이 듭니다. 저녁 수면에 방해 될거 같아 염려되기도 하구요. 하지만 오늘은 중력이 눈꺼풀로 집중하는지 스르르 눈이 감기네요.
소파에 잠깐 누웠던 거 같은데 1시간 남짓 잠이 들었나 봅니다. 꿀잠을 자고 나니 이제서야 오늘의 커피가 떠오릅니다. 나를 위해 유예시킨 오늘의 행복 버튼 하나를 챙기러 나가보자고 마음을 재촉였지요.
그때 걸려온 전화 한 통.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갑니다. 집에 있으면 차 한잔하자는 깜짝 제안을 합니다.
십여 년을 한동네에서 살다가 몇 해 전 이사를 갔지만 주말이면 종종 들릅니다. 함께 마시던 단골 커피숍의 향이 그리워 찾아오는 벗입니다.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 불역낙호(不亦樂乎)’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논어의 한 구절>
한걸음에 달려가니 때맞춰 커피를 시켜놓았더군요. 커피 한 잔을 선물해 주고 싶어 왔노라고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합니다. 저에게 매일 글쓰기를 추천해 준 좋은 벗. 오늘의 글감도 덤으로 주러 왔다고 완주까지 힘내라고 격려해줍니다.
<책만 보는 바보>라는 책에서 나오는 유득공을 닮은 그녀입니다. 그 책을 읽으며 서로에게 그런 좋은 벗이 되자고 얘기했었지요.
유득공의 마음 속에는 우물 하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떤 근심 걱정도 한 번 담갔다 하면 사뿐하게 걸려져 밝은 웃음으로 올라오게 하는 우물 말입니다.
<책만 보는 바보 中(박제가가 유득공에 대해 했던 얘기)>
오늘도 해맑은 웃음으로 폭풍 수다를 선물해 줍니다. 아들과 함께 입시 설명회를 다녀오는 길이랍니다. 수시로 대학을 진학하길 바라는 엄마와 정시를 고집하는 아들의 팽팽한 긴장 구도를 안주 삼은 날입니다.
술을 마시는 기분으로 커피 한 모금을 마십니다.
이렇게 차 한 잔을 마주하고도 내밀한 얘기를 하게 되는 관계가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의 무게감과 책임과 부모로서의 힘듦. 울림있는 책에 대한 나눔 등 함께 풀어온 이야기 보따리가 많습니다. 혼자 끙끙거리던 무거운 얘기지만 도마위에 올려지면 울고 웃다가 종국엔 간결하게 다듬어지지요. 입담 좋은 그녀의 수다에 피로가심까지 선물 받았습니다.
무료한 주말 회색빛 오후에 색을 입혀주고 바삐 가는 그녀. 선물 같은 그녀가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