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아기에게
아기야, 세상의 일은 70%의 노력과 30%의 운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빠는 중,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까지 사실 열심히 살지 않았단다.
그렇지만 그때그때 소위 말하는 '운'이 좋았었단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운'들은 그냥 지나갈 수도 있었던 것들이었다.
우연이 생각지도 못했던 대학교 '어학연수 장학생'에 신청을 했고, 뽑혀서 미국을 다녀온 일.
대학교 처음 생긴 어학연수 장학생이라는 것은 토익을 보고, 다녀왔을 때 토익 점수가 더 높아지지 않으면 돈을 그대로 다시 뱉어내야 하는 독소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때문에 신청자수가 많지 않았지. 지방대에 누가 토익점수를 연연하며 몇 백만 원의 돈을 지불해야 될지도 모를 연수에 신청하겠니? 그런데 말이다. 아빠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았단다. 그 결과 미국 연수에서 그 학교의 엘리트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친구도 될 수 있었지. 실패할 걸 두려워해 도전하지 않았다면 '운'은 도망쳤을 거란다.
학점도 학과 변경을 하기에는 부족했지만, 교수님을 찾아가 운 좋게 설득하여 높은 점수의 학과로 전과 성공한 일.
내가 지방대를 갈 때는 워낙 수능 점수가 낮아서 제일 점수가 낮은 학과로 들어갔단다. 미래가 없었지. 전과는 학점이 3.0 이상되는 학생만 가능했는데, 나는 2.5도 되지 않아 불가능했었단다. 그럼에도 나는 신청서를 냈고, 신청 학과 교수님께 도장을 받으러 지방에 있는 캠퍼스로 버스를 타고 무작정 내려갔다. 교수님께서는 당연히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으셨고, 나를 쳐다보지도 않으셨지. 그렇지만 나는 나오면서 "저를 뽑지 않으시면 후회하실 겁니다" "저는 신생학과에 꼭 필요한 군대를 다녀온 유일한 선배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결과 신청한 사람 중 나만 합격했단다. 아빠 이후로는 그 학과에 전과로 들어온 사람은 없었고,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었다. 뻔했던 실패를 예상하고 교수님께 가지 않았다면, 아빠의 서류는 당연히 탈락했을 거란다.
운 좋게 사람인 사이트에서 발견한 인도 IT 인턴쉽을, 프로그래밍을 1도 모르면서 면접을 통과해 가게 된 일.
아빠는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취업에 대한 걱정이 많았단다. 당시 기업 지원의 커트라인이 토익 700점에 학점이 3.5점 이상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빠는 모두 미달이었다. 더욱이 지방대생이라는 것은 졸업을 앞두고는 더 크게 상실로 찾아왔단다. 졸업을 하고 나서 취업 사이트를 돌며 100군데 이상 이력서를 냈지만 모두 서류 탈락이라는 결과를 받았지. 사회는 냉혹했고, 저 스펙자 인간이 설 수 있는 곳은 별로 없었단다. 그러다가 우연이 사람인 사이트에서 인도라는 나라에서 일할 수 있는 IT 인턴쉽 프로그램을 뽑는다는 것을 보았다. 지원자격은 당연히 프로그래밍 전공자, 전공학과를 나온 사람이었지만, 나는 지원했다. 인도라는 특별한 나라에서 경험을 쌓고, 영어를 배우며 프로그래밍까지 배울 수 있다는 점은 너무 큰 메리트였다.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지원했고, 면접에서 최선을 다했다. 나는 면접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저는 프로그래밍은 많이 부족하여 배워야 합니다. 하지만 영어는 다른 학생들보다 잘합니다. 저는 인도인과 한국인의 사이에서 코디네이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인턴으로 채용되었고, 약 2년 정도 인도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경험은 남들과 차별이 될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단다. 전공만 보고 지원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면접에서 차별점을 설명할 수 없었다면 아빠는 이 경험을 얻지 못했을 거란다.
운이란 것이 세상에 정말로 존재한다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단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는 남들의 '운'이 되어버릴 거야.
'운'도 경쟁이다. 네가 스스로 노력해서 쟁취해야 너의 '운'이 되어준단다.
열심히 하지 않고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면 그건 올바르지 않단다.
인내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면 분명 조금씩 '운'이라는 것이 너에게 와줄 거야.
아기야, 네가 힘들 때 꼭 기억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