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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만의한국사 Mar 08. 2021

여자도 부처, 왕이 될 수 있던 시대

일본 - 신라 - 중국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여왕 시대

[세계여성의날 특집]

신라에 여왕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


여왕이 왕위에 오른 이유를 흔히 '성골남진', 즉 성골 남성이 모두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보지만 진성여왕의 경우 진골이 많은데도 왕위에 오른 것을 보면 골품제도가 가장 큰 원인인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진성여왕의 경우 소위 '아버지와 오빠들의 뒷배경'으로 여왕이 되었다고 한다.


진성여왕의 아버지는 경문왕이었고 오빠는 헌강왕과 정강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뒷배경이 좋아도 고려나 조선시대에는 감히 여자가 왕이 될 수 없었다. 소위 '뒷배경'으로 보는 것은 여왕 자신의 의지보다 모두 어쩌다 보니 여왕이 되었다는 남성적 시각이 반영된 것이다.


신라에 여왕이 등장한 배경에는 불교가 있었다. 불교에는 여성도 성불할 수 있다여성성불론이 있다. 여자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진덕여왕의 이름인 승만은 <승만경> 주인공인 여성 부처 승만에서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여자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정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왕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덕여왕을 두고 정치다운 정치는 못해보고 절만 짓다가 끝났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대 불교 국가에서 절의 창건은 정치와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선덕여왕은 김춘추, 김유신 등 새로운 세력을 중용하고, 황룡사 구층탑을 만들어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았다. 새로운 인재와 하나 된 마음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동아시아 여왕 시대와 원측


일체 평등을 주장하는 불교에서 '여인은 성불할 수 없다'는 여인성불불가설을 주장했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불교는 모두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였으나 그것을 담당하는 자들은 신분제와 여성차별을 당연히 여기는 세속의 사람들이었다. 물론 이것은 불교 본래의 가르침은 아니었으며,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된 이론 중 하나였다. 신라의 선덕과 진덕, 중국의 측천 등 여성이 지배하는 사회가 오랫동안 지속됐다면 아마 여인성불불가설은 불교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일본의 추고천황, 드라마 <선덕여왕>의 선덕, 드라마 <무미랑전기>의 측천


동아시아 최초의 여왕은 일본의 추고천황이었다. 일본에서 시작된 여왕 바람은 신라에 전해졌고, 신라에서 여왕의 시대가 끝나자, 측천 여황 시대가 중국에서 시작됐다. 측천은 미륵과 전륜성왕을 자처하고 명당을 세웠다.


<서유기> 주인공이기도 한 삼장법사 현장이 인도에서 새로운 불교 경전을 가져오자 당나라 불교계에 모든 중생이 성불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이 다시 시작됐다. 선천적으로 성불할 수 없는 일천제가 존재한다는 성불불가론이 대세였다. 그러나 신라시대 승려 원측은 모두가 성불할 수 있다는 입장에 섰다. 


원측이 살았던 시대는 여성이 통치하던 때였다. 원측은 15세 중국으로 건너가 일생을 중국에서 보냈지만 신라 두 여왕의 존재를 알았다. 또한 진덕여왕 어머니와 같은 모량부 출신이었다. 원측은 중국에서 측천 소생의 황태자를 위해 세운 서명사에 머물렀으며 측천의 측근이 세운 불수기사에 입적하기도 했다.


원측은 <보우경>의 역경에 참여했다. <보우경>에는 여성도 전륜성왕이 되어 염부제를 다스릴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불경의 역사에서 <보우경> 같은 몇몇 위경은 어떤 경우에 정본 불경보다 당대 큰 영향력을 끼쳤다. 위경이라고 폄하할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반영했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보우경>에 나오는 일부의 내용이 원전에는 없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일체평등을 주장하는 부처의 가르침에 부합한다면 적극적으로 평가를 해야 한다. 여성 성불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신라의 두 여왕과 중국의 측천 시대를 마감하면서 그 맥이 끊어졌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원측은 동아시아 여왕 시대를 대변하는 역할을 한 셈이다. 


* 본 글은 조경철 <나만의 한국사> 책 일부를 토대로 재편집했습니다.

(책 <나만의 한국사>에서 '원측'의 저술과 성불론에 관한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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