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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만의한국사 Feb 09. 2021

국보 1호… 문화재 지정 번호가 드디어 사라진다

국보 1호 논쟁, 숭례문과 훈민정음

지난 8일, 문화재청이 문화재의 지정 번호를 공문서 및 보도자료, 교과서, 도로 표지판, 안내판 등에 사용을 중지할 것을 발표했다. 기존의 지정 번호는 내부 관리용으로만 남겨질 예정이라고 한다. 필자 역시 오랫동안 지정번호를 없앨 것을 제안해 왔고 <나만의 한국사> 책에서도 이에 대해 서술한 바 있다. 이 글을 통해 문화재에 일련번호가 매겨진 역사를 살펴보고, 이번에 문화재의 지정 번호를 없앤 것에 대한 의미를 공유하고자 한다. 

 



언제부터? 왜? 
문화재에 일련번호를 매겼나


2008년 2월 10일 숭례문이 불탔다. 지금은 복원되었지만 왠지 예전 같지가 않다. 숭례문이 불탄 이후 국보 1호 논쟁이 더 불거졌다. 숭례문이 국보 1호로 지정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일제 저항기 일본은 1934년부터 조선의 유물과 유적에 일련번호를 매기기 시작했는데 보물 1호가 남대문이었고 보물 2호가 동대문이었다. 이때 남대문이 국보 아닌 보물로 지정된 이유는 당시 본토 일본에 있는 것만 국보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제헌 헌법이 제정되었지만 유물 유적에 관한 법률은 일제 저항기의 것을 그대로 계승했다. 따라서 해방 이후에도 보물 1호는 숭례문이었고 보물 2호는 흥인문이었다. 해방이 됐어도 왜 숭례문이 보물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2015년 숭례문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보물을 국보로,
우리나라는 국보만 있고 보물은 없는 나라?


일본에 있는 유물들은 국보인데 왜 우리나라 유물들은 보물인가라는 자격지심이 들었는지 1955년 일괄적으로 보물을 국보로 바꾸었다. 남대문이 국보 1호가 됐고 동대문은 국보 2호가 됐다. 그런데 모든 보물을 국보로 명칭만 바꾸었으니 이제 우리나라는 국보만 있고 보물은 없는 국보 나라가 되었다. 1962년다시 국보 가운데 일부를 보물로 재배치했다. 이때 국보 2호였던 흥인문은 보물 1호가 되었다. 흥인문은 보물 2호였다가, 국보 2호였고, 보물 1호가 됐다. 해방 국가의 기준 없는 문화재 정책 편의에 따라 국보와 보물을 왔다갔다한 셈이다. 


1934년 일제가 처음 일련번호를 매길 때 어떤 기준 또는 어떤 목적에 의해 매겼는지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번호는 서울, 경기 등 지방 순서여서 특별히 번호 순서에 의미를 두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만 1938년 추가로 지정할 때 모 신문기사가 "금번 지정되려는 것은 내선일체의 관념을 적확히 표명하는 것이라 하여 주목을 끌고 있다"라고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에서 보물 지정이 단순히 문화재의 행정적 관리를 위한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포석정은 어쩌다 사적 1호가 됐나


한편 포석정은 고적 1호로 지정되었는데 이곳은 신라 경애왕이 술판을 벌이다 후백제 견훤에게 죽임을 당한 곳이다. 과거 신라가 어떻게 망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조선도 그렇게 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은연중에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포석정은 현재 고적에서 사적으로 이름만 바뀌어 사적 1호가 됐다.

경주 포석정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일제강점기의 문화재 정책이 식민지 정책의 효율이란 측면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일제강점기의 일련번호를 매겨 문화재를 관리했던 관행은 해방 후 어떻게 해서든지 고쳤어야 마땅했다. 더구나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불타고 복원된 상황에서도 여전히 국보 1호를 고집한다면 어불성설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보 1호를 훈민정음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선 생각을 달리한다. 한글이 국보 1호의 자격이 없어서가 아니다. 나는 통일한국의 나라 이름을 '한글'로 주장할 만큼 한글에 대해서 누구보다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가치가 다른 유물과의 우열 비교에서 나오는 가치여서는 안 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1등'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국보나 보물 등의 문화재에 번호를 매기는 것은 불필요한 오해를 낳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국보 1호를 남대문에서 훈민정음으로 바꿀 것이 아니라 국보나 보물 등의 일련번호를 없애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국보 숭례문', '국보 훈민정음(해례본)'이라고 하면 충분하다. 굳이 행정관리가 불편하다면 일련번호는 내부적으로 사용하면 그만이다.


*본 글은 조경철 <나만의 한국사> 책 일부를 토대로 재편집했습니다.

브런치에 연재되는 글은 오랫동안 한국사를 공부하고 가르친 역사학자 '명협 조경철'이 쓰고, 콘텐츠 에디터 편집자가 현대적인 시선을 담아 재편집, 업로드합니다.


* 필진 소개


_명협 조경철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나와 같은 대학에서 석사학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부터 연세대에서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다. 2013년 한국연구재단에서 조사한 인용지수 한국사 분야에서 2위를 했다. '나라이름역사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새로운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고자 노력 중이다.  


_편집자 부

대학에서 미디어문예창작학과를 전공했으며, 매체에서 영화 기자로 근무했다. 밀레니얼 세대의 관점으로 한국사를 쉽고 흥미롭게 편집해 업로드할 예정이다. 트위터 '한국의 맛과 멋' 계정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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