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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만의한국사 Jan 19. 2021

고려대장경, 조선왕조실록 지킨 평범한 사람은 누구인가

김영환, 안의와 손홍록을 아시나요?

대학에서 '한국문화유산의 이해'란 강의를 하면 첫 시간에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자랑하고 싶은 문화유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대답한다. "한글이요", "직지심경이요", "불국사요", "고려대장경이요" 여러 문화유산 가운데 내가 듣고 싶은 답은 '고려대장경'이었다. 첫 번째는 아니더라도 항상 다섯 번째 안에 대장경은 꼭 들어간다. 그다음 "우리나라 왕들 가운데 가장 자랑하고 싶은 왕은 누구입니까?"라고 물으면 항상 첫째는 세종대왕이고 그 뒤를 이어 광개토왕, 정조 등의 답이 돌아왔다.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첫 번째 위기 : 고려시대


'고려대장경'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현재 경남 합천 해인사 장경각에 보관돼 있다. 역사상 대장경이 우리나라에서 없어질 뻔한 아찔한 상황이 몇 번 있었다. 고려시대에 대장경은 강화도 판당에 보관돼 있었는데, 왜구들은 판당 주변까지 들어와서 쌀 등을 약탈해 갔다. 잘못하면 이때 대장경도 없어질 뻔했는데, 이것이 첫 번째 위기였다.


두 번째 위기 : 조선시대 세종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속 세종대왕 모습

두 번째 위기는 조선시대 세종대왕 때였다. 당시 일본은 조선에 대장경 인쇄본을 자주 요구했는데, 이번에는 인쇄본이 아니라 해인사 대장경판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요구가 관철되지 않자 단식까지 불사하면서 압박했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이때 세종대왕은 대장경을 쓸모없는 물건, 무용지물이라 하면서 일본에 주자고 했다. 다행히 신하들은 반대했다. 신하들 역시 조선시대에 유교가 득세했기 때문에 대장경이 무용지물이라는 것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일본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면 그 요구가 끝이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나중에 논의해보자는 식으로 거절할 것을 세종에게 건의했다. 세종도 이를 받아들여 대장경은 다행히 해인사에 남게 됐다. 가장 위대한 문화군주로 알려진 세종이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인 '고려대장경'을 무용지물이라고 말한 것은 믿기 어렵겠지만, 세종도 성리학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불교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시대적 한계에 갇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째 위기 : 6.25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세 번째 위기는 6.25 때였다. 전세가 역전돼 국군이 북으로 진군했다. 이때 북한군 일부가 미처 북한으로 후퇴하지 못한 채 산속으로 숨어들었고, 산에 있는 절을 근거지로 게릴라전이 펼쳐졌다. 미군은 절에 숨어있는 북한군들을 몰아내고자 절을 폭격할 것을 명령했다. 가야산 해인사도 폭격 대상에 포함됐다. 폭탄을 실은 전투편대가 해인사 상공까지 날아왔고, 폭탄 한 방이면 해인사에 보관돼 있는 '고려대장경'이 이 세상에서 사라질 긴박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당시 편대장은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해인사에 폭탄을 투하하지 마라" 그러자 비행기들은 폭탄을 해인사가 아니라 그 주변에 터트렸고 그래서 오늘날까지 '고려대장경'이 남아있게 됐다. 그 편대장의 이름은 김영환 대령이다. 


<조선왕조실록>도 사라질 뻔했다!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고려대장경' 못지않게 사라질 위기를 겪은 문화유산 중의 하나는 <조선왕조실록>이다. <조선왕조실록>은 한양의 춘추관을 포함해 성주, 충주, 전주 등 4곳의 사고에 보관돼 있었다. 이성계의 어진을 어떻게 보존할까 경황이 없던 터라 전라도 관찰사는 미처 전주사고의 <조선왕조실록>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때 전주 주변 마을의 유생 안의와 손홍록이 나섰다. 노비와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을 모아 전주사고의 실록을 내장산으로 옮긴 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실록을 지켜냈다. 전쟁 와중에 국가의 녹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한 몸 피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지만, 안의와 손홍록은 자원하여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것이다. 만약 안의와 손홍록이 없었다면 임진왜란 이전 조선의 역사기록은 완전히 사라질 뻔했다.


5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는 많은 전란과 어려움을 겪었지만, 많은 문화유산을 보존해 왔다. 그 수많은 문화유산을 지켜낸 사람들 가운데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사람들도 있겠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고려대장경을 지켜낸 인물은 세종대왕이 아니라, 김영환 대령이었고, <조선왕조실록>도 안의와 손홍록이란 보통 사람들이 지켜냈다. 


역사는 누가 지켜나가는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소중히 생각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본 글은 조경철 <나만의 한국사> 책 일부를 토대로 재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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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한국사를 공부하고 가르친 역사학자 '명협 조경철'이 쓰고, 영화 에디터(기자) 출신 편집자가 현대적인 시선을 담아 재편집, 업로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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