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의 최명길과 김상헌, 경순왕과 마의태자
지난밤 폭설이 내렸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풍경을 볼 때면 영화 <남한산성>을 떠올린다. 영화 속에서 설국의 풍경은 병자호란 시기를 더욱 혹독하게 보이게 했고, 최명길(이병헌)과 김상헌(김윤석)의 대립을 보다 장엄하게 느끼게끔 만들었다.
명나라를 몰아내고 새로 중국의 주인이 될 청나라와 화친을 맺어야 한다는 최명길의 현실론과 임진왜란 때 우리를 도와준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키고 오랑캐인 청과 싸워야 한다는 김상헌의 명분론이 부딪쳤다. 두 주인공에 대해 당신은 어떤 평가를 내리겠는가.
현실론과 명분론의 우열을 가르는 기준은 백성(국민)이다. 백성이 잘 사는 게 기준이라면 현실론이 유리한 입장에 서기 마련이다. 현실은 가까이 있고 명분은 멀리 있기 때문이다.
신라가 멸망할 때 경순왕과 마의태자는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경순왕 왈
"외롭고 위태로움이 이와 같으니 형세를 보전할 수가 없다. 이미 강해질 수도 없고 더 약해질 것도 없으니 죄 없는 백성으로 하여금 간과 뇌를 땅에 바르도록 하는 것은 내가 차마 할 수 없는 바이다."
마의태자 왈,
"나라가 존속하고 망함에는 반드시 하늘의 명이 있습니다. 단지 충성스러운 신하와 의로운 선비들과 더불어 합심하여 백성의 마음을 한데 모아 스스로 지키다가 힘이 다한 이후에 그만둘 일이지, 어찌 천년 사직을 하루아침에 가볍게 남에게 줄 수 있겠습니까."
후대의 역사가는 경순왕의 현실론에 손을 들어주었다. 고려의 공양왕이 조선에, 조선의 순종이 일본에 나라를 넘길 때도 경순왕과 같은 전철을 밟았다. 반면 고조선의 우거왕은 명분론을 택하고 나라와 함께 생을 마쳤다.
현실과 명분, 어느 길을 취할지 어려운 일이다. 분명한 것은 현실과 명분 어느 쪽이든 그것 자체로 끝나지 않고 역사가 된다는 것이다. 수나라와 당나라를 물리쳤던 고구려를 기억하고 있는 원나라는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가 항복하자 그에 대한 대우를 해주었다. 청은 옛날 고려가 원나라에 항복하고 조공을 바친 것에 빗대어 왜 자기 나라에 조공을 바치지 않느냐 하며, 조선의 왕에게 머리를 조아려 절하는 '삼배구고두례'를 행하게 했다.
최명길과 김상헌은 그들이 갈 길을 갔다. 그들의 후계자가 역사를 어떻게 이끌고 나갔느냐로 우리는 그들을 평가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평가받을 때다. 현실과 명분, 그 어느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길을 가든 '국민'과 '역사'에 떳떳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