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주부가 탐낸 토끼 간은 1,500년 된 불로초?
대한민국 홍보영상, '범 내려온다'로 단번에 스타덤에 오른 이날치 밴드와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가 최근 <1박 2일>에 출연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이날치의 첫 정규 앨범 <수궁가>에는 익히 알려진 '범 내려온다'를 포함해 총 11곡이 수록돼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콘텐츠로 변주됐던 <별주부전>. 그러나 이토록 흥 나고 세련된 버전은 처음이다.
이번 글에서는 <별주부전> 속 토끼의 사연을 엿볼 수 있는 역사 속 그림, 5세기 고구려인이 그린 고구려 고분 벽화 하나를 소개해 보려 한다. 이날치의 <수궁가> 수록곡 중 하나인 '별주부가 울며 여쫘오되'를 들으면서 함께 읽어보시길.
그 많은 동물 가운데 왜 하필 토끼 간일까
<별주부전>은 자라가 용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토끼 간을 구해온다는 이야기다. 자라가 토끼를 꼬드겨 용궁까지 데리고 가 배를 갈라 간을 꺼내려고 하자 토끼가 손사래를 친다.
"내 간은 신비한 효험이 있어 많은 이들이 탐을 냅니다. 그래서 간을 가지고 다니지 않고 아무도 모르는 깊은 곳에 숨겨 놓습니다. 용왕의 병이 위중하다 하니 내가 돌아가서 간을 가져오겠습니다."
별주부는 간을 몸속이 아닌 다른 곳에 둘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토끼 간이 그렇게 신비한 영약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용왕의 병을 고쳐야 하므로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별주부가 다시 토끼를 육지로 데려다 주자 토끼는 깔깔대면서 말하기를.
"내가 살다 살다 너 같이 미련한 놈은 처음 보았다. 세상천지에 어떤 동물이 간을 몸밖에 내놓고 다니냐. 하하 잘 가게나."
토끼에게 당해 버린 별주부는 그저 멍하니 하늘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별주부전>에는 용왕의 불치병을 고치는 특효약으로 토끼 간이 등장한다. 하필이면 그 많은 동물 가운데 왜 토끼 간일까. 어린이들에게 물었다. "똑똑해 보여서요." "잘 달리니까요" "귀가 쫑긋해서요"라고 답한다. 한 번은 의대생인 제자에게 토끼 간을 분석해 오라고 했다. 제자는 "토끼 간이 영양가가 있기는 하지만, 다른 동물의 간에 비해서 특별히 약효가 뛰어나지는 않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왜 하필 토끼 간이어야만 했을까.
별주부가 탐낸 토끼 간은 1,500년 된 불로초?
우리는 오래전부터 보름달이 뜨면 소원을 빌어왔다. 필자도 중학교 때 이런 소원을 빌어본 적이 있다. 옥상에서 개를 키웠는데 개 이름은 당시 유행한 홍콩 무술 배우 성룡의 이름을 반쯤 따와 아룡이라고 했다. 아룡의 앞발을 잡고 들어 올려 보름달 안에 담고 소원을 빌었다. "우리 아룡이 내년에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해 주세요."라고.
보름달 하면 어떤 동물이 떠오르나. 달에서 떡방아를 찧는 토끼가 떠오른다. 그런데 실은 토끼가 빻는 것은 떡이 아니라 늙지도 않고 모든 병을 고친다는 '불로초'였다. 토끼가 불로초를 빻고 있는 장면은 5세기 고구려인이 그린 '개마총 고분벽화'에도 보인다. 꽉 찬 달 안에 토끼는 불로초를 빻고 있고, 토끼 옆을 두꺼비가 지키고 있다. 두꺼비가 눈을 뜨고 지킬 때도 있겠지만, 언젠가 잠을 잘 것이고 그때 토끼가 불로초를 그냥 놔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개마총의 토끼는 지금으로부터 1,500년 동안 불로초를 야금야금 먹었을 테다. 그럼 토끼 간은 1,500년 된 불로초가 되는 셈이다.
옛날 사람들은 달을 바라보며 가족의 건강을 빌었다. 고구려 아니 그 이전 고조선 시대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고전 소설 <별주부전> 속에서 만병통치약으로 '토끼 간'이 뚝딱 등장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달을 보며 사람들이 건강을 빌었던 시간이 100년, 500년, 1000년 이렇게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용왕의 병을 고치는 약으로 토끼 간이 된 것이 아닐까.
이제 토끼를 놓친 우리 불쌍한 별주부는 어떻게 할까. 이날치의 노래를 들어보면 21세기에도 별주부의 한은 여전한 것 같다. 그런데 잠깐. 별주부가 이 글을 읽는다면 희망이 생겼을 것이다. 이제 토끼를 잡으러 달나라로 가면 되니까.
올해 그 어느 때보다 보름달에 '건강'이라는 소원을 빌었을 독자 여러분께. 불로초가 한가득 담긴 보름달을 선사합니다. 내년에도 온 가족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