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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만의한국사 Dec 23. 2020

남북이 통일되면 어떤 나라 이름이 좋을까

'고려', 아니면 '한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각자 자기 나름의 이름을 갖고 있다. 사람은 자기 이름을 달고 평생 살아간다. 내가 죽어도 이름은 역사와 함께 영원히 살아남는다. 그 이름들이 하나로 뭉쳐 생긴 것이 나라 이름이다. 나라는 없어졌을지언정 역사와 함께 나라 이름은 계속 남는다.


필자는 오랫동안 단군의 고조선부터 현재 대한민국이 되기까지 있었던 이름에 대해 연구했다. 그중에도 나라 이름 '고려'에 담긴 의미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연구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앞으로의 나라 이름, 남북통일 이후의 나라 이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됐다. 


몇 천 년 전 사용했던 이름을 다시 쓰고 있는 남한과 북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은 과거 대한제국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한'에서 유래했다. 여기서 '대한'은 더 앞선 시기, 고대 삼한의 '한'에서 비롯됐다. 북한의 정식 이름인 '조선'은 과거 이성계의 '조선', 더 거슬러 올라가면 단군, 기자, 위만의 '조선'에서 비롯됐다. 이렇게 남북한은 몇 천 년 전 사용하였던 이름을 현재에 다시 사용하고 있다.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 포스터. (고조선부터 삼한 시대까지의 상고시대를 모티프로 한 판타지 드라마. 글 내용과는 무관)

나라 이름을 지을 때 옛날에 있었던 이름을 다시 사용하는 것은 오늘의 역사가 과거의 역사와 계승관계에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나라 이름을 계승하여 역사 계승을 강조하는 것을 '국호 계승 의식'이라고 한다. 중국의 경우 원나라 이후 나라 이름을 새롭게 만들어 사용하고 있으니 우리의 국호 계승 의식은 우리나라의 특징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백제가 다시 백제로, 고려가 다시 고려로


국호 계승 의식의 출발은 '부여'에 있다. 백제 성왕은 사비로 천도한 후 나라 이름을 '남부여'라고 했다. 사실 성왕은 '부여'라고 했지만 후대 사가들이 494년에 멸망당한 북쪽의 부여와 비교해 남쪽에 위치한 부여라는 의미에서 '남'자를 붙였다. 그러나 성왕이 변경한 부여란 나라 이름은 그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고 위덕왕 때부터 백제란 나라 이름으로 환원됐다. 


진정한 국호 계승 의식의 출발은 '후삼국' 시대다. 견훤은 망한 백제를 계승한다는 의미로 나라 이름을 '백제'라 했고 궁예도 망한 고려를 다시 계승한다는 의미로 나라 이름을 '고려'라고 했다. 흔히 견훤의 백제를 '후백제'라고 하는 것은 후대에 온조의 '백제'와 구분하기 위해서다.


또, 궁예가 세운 나라를 '후고구려'라 부르지만, 이는 잘못된 나라 이름이다. '후고려'라고 해야 옳다. 고구려가 평양 천도를 전후하여 나라 이름을 '고려'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다만 고구려가 고려로 나라 이름을 바꾸었다는 확실한 기록이 없어서 문제가 없진 않다. 그러나 적어도 평양 천도 이후에는 고구려보다는 고려란 나라 이름을 압도적으로 많이 썼기 때문에 궁예가 세운 나라 이름도 고구려가 아니라 '고려'라고 봐야한다. 고려시대 기록에는 궁예가 세운 나라를 고구려라고 남긴 것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궁예가 다시 사용한 '고려'란 나라 이름은 후에 태조 왕건이 다시 사용하게 된다. 


고려가 코리아(KOREA)로


고려란 나라 이름은 현재 우리나라의 영문국호 'KOREA'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듯 '고려'란 나라 이름은 5세기 고구려가 나라 이름을 고려로 바꾼 이후 현재까지 우리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


궁예 이후 여러 나라들이 세워졌지만 그들이 세운 나라도 모두 옛 나라 이름을 다시 사용했다. 이성계의 조선이나, 고종의 대한제국이나, 대한민국의 임시정부의 대한이나, 대한민국의 대한이나, 김일성의 조선이나 모두 그렇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는 국호 계승 의식을 유독 강조했다. 특히 궁예가 세운 '고려' 국호 계승 의식의 전통은 우리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음이 분명하다.

현재 남북은 서로 다른 나라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만, 장차 통일이 된다면 통일한국의 나라 이름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일어날 것이다. 우리나라의 나라 이름 짓는 선례를 참조한다면 아마도 예전 나라 이름 가운데 하나를 다시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조선, 한, 고려가 유력하다. 부여, 백제, 발해도 있지만 통일국가가 아니었고, 신라의 경우 불완전 통일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남북통일 정부의 나라 이름으로 적당하지 않다. 그런데 한과 조선의 경우 남북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국호이므로 흡수통일이 아닌 평화통일이 된다면 어느 한쪽으로 정하는데 반대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현재까지 통일 한국의 나라 이름은 고려가 유력하다고 볼 수 있다. 고려란 나라 이름은 앞서 설명한 대로 그 역사가 깊고, 영문 국호인 '코리아'와도 잘 호응되기 때문이다. 물론 고려란 나라 이름은 예전 북한에서 남북통일방안의 하나로 제시한 고려연방제가 있어 일부 반대가 있을 수 있다.


역사적 '전통'보다 역사적 '창조'가 중요하다


역사적 전통도 중요하지만 역사적 창조 또한 중요하다. 21세기 남북통일의 역사적 의의를 강조한다면 통일한국의 나라 이름은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도 있다. 남북한 이념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남북통일국가의 나라 이름은 예전 나라 이름에서 구할 것이 아니라 새롭게 짓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예를 들어 예전처럼 나라 이름을 조합하여 한국+조선의 '한조'나 조선 +한국의 '조한'보다는 아예 새롭게 짓는 것도 고려해 보자는 것이다. 아예 새롭게 나라 이름을 짓는다면 그 나라 이름은 5천 년 우리 역사와 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짓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럴 경우 '한글'로 나라 이름을 짓는 것도 고려해 볼만 하다. 그 나라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게 나라의 말과 글이기 때문이다. 


영문 국호는 KOREA? COREA?


마지막으로 통일한국의 영문국호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KOREA인가 COREA인가의 논쟁이다. 항간에는 COREA였는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자신의 영문국호인 JAPAN의 J보다 뒤에 놓기 위해 KOREA로 바꾸었다고 알려지기도 했으나 사실 그렇지 않다. 유럽에 COREA로 알려졌고, 19세기 이후 미국에 KOREA로 알려지면서부터다. 유럽과 미국에서 코리아를 알파벳으로 옮길 때 서로 다르게 표기해서 생긴 일이다. 


따라서 통일한국의 나라 이름은 COREA, KOREA 어느 쪽으로도 타당하다. 굳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COREA가 좋을 것 같다. KOREA는 분단 시절 사용한 영문 국호(SOUTH KOREA, NORTH KOREA)지만, COREA가 되면 통일국가의 영문국호로만 쓰이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도 KOREA가 COREA로 바꾼 것을 보고 남북이 통일된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남북관계가 어렵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 통일한국의 나라 이름을 왈가왈부하는 게 김칫국부터 마시는 것 아닌가 하는 소리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통일 문제를 거창하게 접근하기보다 역사 속의 나라 이름을 통해 우리 역사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해보고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하나 둘 넓혀간다면, 점점 멀어지는 통일에 대한 담론을 일깨워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름에는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



*본 글은 조경철 <나만의 한국사> 책 일부를 토대로 재편집했습니다.

브런치에 연재되는 글은 오랫동안 한국사를 공부하고 가르친 역사학자 '명협 조경철'이 쓰고, 영화 에디터(기자) 출신 편집자가 현대적인 시선을 담아 재편집, 업로드합니다.


* 필진 소개


_명협 조경철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나와 같은 대학에서 석사학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부터 연세대에서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다. 2013년 한국연구재단에서 조사한 인용지수 한국사 분야에서 2위를 했다. '나라이름역사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새로운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고자 노력 중이다.  


_편집자 부

대학에서 미디어문예창작학과를 전공했으며, 매체에서 영화 기자로 근무했다. 밀레니얼 세대의 관점으로 한국사를 쉽고 흥미롭게 편집해 업로드할 예정이다. 트위터 '한국의 맛과 멋' 계정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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